지난 2월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이 80살을 맞이했다. 독일 언론은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 주자이자 페미니스트 1세대 감독인 폰 트로타 감독의 삶과 작품을 앞다투어 조명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 폰 트로타 감독의 삶과 작품을 그린 90분짜리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해 텔레비전 방송으로 내보냈다. 다큐멘터리는 폰 트로타 감독이 2019년 제69회 독일 영화상 공로상을 수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영화 인생은 독일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1년 제3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독일 자매>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다. <독일 자매>는 70년대 적군파 요원이었다가 체포되어 구금 생활을 하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구드룬 엔슬린과 여동생 크리스틴을 모델로 만든 영화다. 청소년기에 학교교육에서 나치 독일의 실상을 접하고 심리적 충격을 받은 자매는 각각 적군파 요원과 독일 첫 페미니스트 잡지 <엠마> 기자로 사회변혁의 길을 택한다. 테러리스트 언니 역을 연기했던 바르바라 수코바와 폰 트로타 감독의 인연은 이때 시작되어 평생 이어진다. 폰 트로타 감독의 <로자 룩셈부르크>(1986)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를 열연한 바르바라 수코바는 1987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에 이른다. 수코바는 폰 트로타 감독의 굵직한 여성 일대기 영화에 출연해 중세 수도원에서 약초 연구로 이름을 남긴 수녀의 일대기를 그린 <위대한 계시>(2009)에서 힐데가르트로,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철학자를 다룬 <한나 아렌트>(2012)에서도 철학자 한나로 분했다.
폰 트로타 감독의 영화 사랑은 파리에서 시작됐다. 미혼모였던 모친과 베를린에서 살았던 폰 트로타는 1950년대 말 파리로 가서 누벨바그 영화에 경도된 젊은 철학도들과 어울리며 책과 영화를 접했다. 당시 그녀는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 후 뮌헨으로 가서 독문학과 불문학을 공부하다가 배우 학교에 들어간다. 폰 트로타 감독이 독일영화계에 발을 들인 것은 배우를 하면서다. 라이너 파스빈더,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과 1971년에 결혼해 91년에 이혼했다. 1975년에는 슐뢴도르프 감독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만들며 함께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도 했다. 당시 보수적인 독일 사회에서 여성감독으로 우뚝 서기란 투쟁 없이 불가능했다. 남편이었던 슐뢴도르프 감독도 폰 트로타가 자신의 조력자로만 남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직접 감독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당시 여성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들은 독일 언론이나 평론계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폰 트로타 감독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폰 트로타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까? 그녀는 <쥐트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어둡고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면을 찾는다. 사람들이 나를 밖에서 보면 용감한 투사로 보이겠지만, 내 안을 들여다보면 상처받기 쉽고 의심을 품는 부분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런 비슷한 면을 찾는 게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