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 춘희(강진아)는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뒤 친척 집에서 눈치를 보며 자랐던 춘희에겐 남들과의 떠들썩한 소통이나 교류보다는 혼자 지내는 느릿하고 고요한 일상이 익숙하다.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한푼 두푼 돈을 모아 다한증 수술을 하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춘희는 벼락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는데, 그날 이후 춘희 앞에 난데없이 1998년의 어린 춘희(박혜진)가 나타난다. 고통스럽고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어린 자신과의 조우에 춘희는 혼란을 느끼고, 이를 털어놓기 위해 가입한 모임에서 말을 더듬는 남자 주황(홍상표)을 만난다. 춘희와 주황은 작은 추억들을 쌓아나간다.
“춘희야, 태어나길 잘했어.”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는 극이 끝나갈 때 즈음에서야 비로소 제목의 진의와 무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눅진한 온기를 지녔다. 최근 몇년간 주목받았던 젊은 한국 여성감독들의 독립영화의 소재와 배경, 무드를 얼마간 공유하면서도, 시대와 사회가 개인에게 새겨놓은 해묵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미덕이 돋보인다. 2019년 전주영상위원회의 장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제작된 영화는 전주의 소박한 풍경을 배경 삼아 춘희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포착해낸다. <마리와 레티> <낙원동> <뼈> 등의 단편을 만들어온 최진영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맑은 인상의 배우 강진아가 영화의 메시지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제16회 오사카아시안영화제에서 재능상을 수상했고,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