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전설>은 중국의 전통 인형극 포대희(布袋戱)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인형의 정지동작을 연속 촬영해 섬세한 동작을 보여주는 스톱모션 인형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손으로 인형을 움직이고 이를 다양한 앵글과 카메라 액션을 이용해 보여주는, 굳이 말하자면 ‘인형 실사영화’다. 인형들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따분하거나 유치하지만은 않다. 햇수로 3년 동안 125억원의 제작비를 들였고, 1천여평의 공간에 꾸며진 정교한 대형세트를 배경으로 타이트하게 촬영한 실사화면과 컴퓨터그래픽의 다양한 특수효과를 곁들인 덕에 이 작품은 박진감 넘치고 환상적인 대작무협영화로 태어날 수 있었다. 인형들이 펼치는 액션은 정교한 맛은 덜하지만 화려하기 그지없다. 인형들은 빙빙 돌며 공중으로 차오르거나 발을 이용해 상대방의 검을 차내는 등 홍콩 무협영화의 액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스케일면에서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보다 한수 위의 세계를 만끽하게 해준다. 칼을 휘두르는 기세에 집채가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이나 아찔한 화염곡의 구름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액션신 등은 사람이 펼치는 액션보다 규모가 크며 일반 애니메이션보다 현실감이 난다는 점에서 인형 액션의 장점이 극대화된 장면. 또 SFX를 시종일관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풍운>이나 <중화영웅> 같은 작품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인 조화라는 측면에서는 진일보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인형극이라는 방법론을 택했지만 <성석전설>은 신세대 취향에 부합하려는 전략도 구사한다. 빠른 장면 연결과 곳곳의 스톱모션은 다소 어색한 인형들의 동작을 메울 뿐 아니라 현대 액션영화의 흐름에 익숙한 젊은 관객의 눈을 붙잡을 수 있는 무기가 되고, 가공할 내공의 무협객들이 펼치는 ‘군자풍’, ‘천지근’과 같은 기공은 <파이널 판타지> 같은 게임에서 익히 봐왔던 소환술 마법과 유사하다. 또 목각으로 만들어진 인형의 외양은 3D그래픽으로 창조된 게임 캐릭터와 유사한 느낌을 주며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는 판타지 게임을 연상시킨다. 특히 우주인 기지와도 같은 화염곡의 동굴 장면에서는 테크노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야기면에서도 <성석전설>은 기존의 무협극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 이 영화에는 절대선이나 절대강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비뚤어진 성격의 검상경은 말할 나위 없고, 홍진은 지긋한 연배에도 불구하고 여빙에 대한 연모의 감정에 휩싸여 소환진을 헐뜯곤 하며 소환진은 검상경이 흑골귀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몰락했을 때 이를 외면해버렸던 과거사를 갖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희생을 자처하는 여빙조차 검상경을 파멸시키는 단초가 되기로 작정할 정도다. 이처럼 역동적이며 다면적인 캐릭터 덕분에 이 영화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며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물론 “제 아무리 뛰어난 무공이라도 의가 아니면 소용없거늘”이라는 대사로 마무리짓는 평이한 결론을 택했지만, 이 영화는 다양한 장르의 혼합과 역동적인 구성으로 기존 무협극의 상투성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통적인 공연예술을 현대에 맞게 발전시킨 주역은 대만의 황강화, 황문택 형제. 이들은 포대희의 명인인 부친 황준웅의 영향을 받아 <벽력TV>라는 위성방송을 통해 인형극을 선보여왔다. 각각 연출과 더빙감독을 맡은 황강화, 황문택 형제는 좀더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영화를 위해 목각인형의 눈을 수정으로 만들고 사람의 머리카락을 붙여 사실성을 높였다. 각 캐릭터의 신발장을 따로 둘 정도로 의상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으며 인형의 무기는 금속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황문택은 더빙할 때 각 캐릭터마다 별도의 음을 부여해 개성이 드러나도록 했다. 이같은 노력 덕분인지 이 영화는 지난해 초 대만에서 개봉할 당시 디즈니의 <토이스토리2>를 누르고 박스오피스의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주술, 인형극을 낳다...중국 인형극 ‘포대희’의 기원
<성석전설>의 바탕이 된 중국 인형극 포대희의 역사는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학자들은 인형극은 주술에서부터 시작, 서사시, 전설 등의 내용을 담아왔다고 주장한다. 포대희의 조종법은 매우 단순하다. 한 사람이 작은 단 위에 서서 파란 색 포대를 뒤집어쓴 채 내부구조가 장갑과 비슷한 인형 안에 양손을 집어넣은 채 인형을 움직인다. 즉 무대 아래에 사람이 들어가 인형을 조종하는 것이다. <성석전설>의 촬영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인형 조종자들은 세트 바닥 아래로 들어가 인형을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했다. 인형들이 대화를 나누는 등 평상적인 동작은 그대로 촬영하면 그만이었지만 공중에서 펼치는 액션이나 격렬한 격투신은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려야 했다. 홍진과 소환진의 격투 장면의 경우, 푸른 색으로 온통 몸을 둘러싼 두명의 인형 조종자가 블루스크린 앞에 선 채로 인형을 조종해 격투 장면을 연출한 뒤 CG를 통해 인형의 움직임만 살려낸 것이다. 실제로 <성석전설>을 보면 인형이 공중을 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같은 경우엔 별다른 특수효과 없이 그냥 인형을 던져버리는 식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같은 인형극은 곽독(郭禿)이라는 사람이 시작했다 하여 ‘곽독’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우리 ‘꼭두각시극’의 ‘꼭두’와 일본의 ‘구구쓰’(クグツ)의 어원이 되었다고 학계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포대희는 매우 대중적이어서 주로 거리에서 공연이 이뤄졌다고 한다. 또 후궁들을 위한 인형극이 존재하기도 했다는 역사 기록도 남아 있다. 하지만 현대에 오면서 포대희의 존재는 차츰 잊혀져 갔는데, 1969년 대만의 TV를 통해 인형극이 방송되면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엔 이들 작품이 비디오로 출시돼 대만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포대희는 허우샤오시엔의 <희몽인생>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인형극의 대가인 이천록의 운명을 다룬 이 영화에서 인형은 그의 분신, 또는 삶 그 자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