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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섯명의 여성 요원이 선보이는 액션 블록버스터 '355'
김철홍(평론가) 2022-02-16

‘355.’ 아주 오래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 ‘007’이 활동을 시작하기 200년도 더 전인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이름을 떨쳤던 한 여성 스파이의 코드명이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지만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007을 비롯한 남성 스파이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지금. 영화 <355>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그 상징적인 이름을 스크린을 통해 불러보는 영화다.

CIA 요원 메이스(제시카 채스테인)는 임무를 위해 파리로 향한다. 메이스가 탈취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시스템을 컨트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담긴 드라이브. 클릭 한번으로 비행기를 추락시키거나 도시 전체를 정전시킬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이 악당 손에 들어가면 3차 세계대전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파트너 닉(세바스티안 스탄)이 그녀와 동행한다. 둘은 오랜 친구 사이이지만, 닉의 끈질긴 구애로 메이스는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작전에서 메이스는 임무를 성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닉까지 잃게 되는데, 심지어 본부로부터 이중첩자로 의심받아 더이상 추적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에 메이스는 독자적으로 특별한 팀을 꾸려 범죄 조직의 뒤를 쫓는다.

제시카 채스테인의 기획으로 2018년부터 제작된 <355>는 여성 요원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팀 ‘355’의 활약을 담은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다. 영화는 122분간 지루할 틈 없이 영국, 중국, 모로코 등을 오가며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다섯명의 배우들이다. 제시카 채스테인(미국), 디아네 크루거(독일), 페넬로페 크루스(스페인), 루피타 뇽오(케냐·멕시코), 판빙빙(중국)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톱배우 다섯명이 한팀을 이뤄 ‘어셈블’하는 장면은 역시 희귀한 구경거리다.

뿐만 아니라 감독은 개별 캐릭터들의 개성과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지음으로써 반복적인 임무 수행 과정에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먼저 제작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제시카 채스테인은 팀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그가 연기한 메이스는 <미스 슬로운> <몰리스 게임> <에이바> 등 최근 작품에서 꾸준히 보여줬던 주도적이고 능력 있는 여성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배우는 독일 정보기관 BND의 요원 마리를 연기한 디아네 크루거다. 영화 내내 압도적이고 거친 맨몸 액션을 선보이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유명 여배우 역할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영국 MI6 요원 카디자 역을 맡은 루피타 뇽오는 첩보물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능형 캐릭터를 연기한다. 뛰어난 정보력과 해킹 스킬을 활용하여 현장 액션 요원들을 후방 지원한다. 페넬로페 크루스는 콜롬비아 출신의 심리학자 역을 맡아 다소 무겁게 진행될 수 있는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유일한 동양인 캐릭터인 판빙빙 또한 자신의 매력을 십분 활용하여 극적 긴장감 조성에 한몫한다.

이처럼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펼치는 화려한 합동 작전을 온전히 즐길 수만 있다면, <355>는 꽤 유의미한 액션 시리즈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도적인 여성들이 남성의 도움 없이, 아니 오히려 남성을 구출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피 흘려가며 보여주는 액션은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나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팀이 되는 과정’ 등이 그 결과만큼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게 아쉽지만, “꼭 돌아올게. 약속할게”와 같은 대사들이 집에서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남성에게로 향하는 장면은 꽤나 상징적이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사이먼 킨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CHECK POINT

355

‘355’는 실존했던 한 여성 스파이의 코드명이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 조지 워싱턴의 첩보 조직 ‘컬퍼 스파이 링’의 핵심 인물이었던 그의 실제 이름은 지금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영화에 그 존재가 서사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로서 극 전체에 형성하는 특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이먼 킨버그 감독

<355>는 2019년 <엑스맨: 다크 피닉스>로 감독 데뷔를 한 사이먼 킨버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그는 제작자 제시카 채스테인의 제안으로 연출을 맡았는데, 둘은 <마션>에서는 제작자와 배우로, <엑스맨: 다크 피닉스>에서는 감독과 메인 빌런 역을 맡은 배우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여성팀이 주인공인 영화들

<355>처럼 오직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팀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있다. 맥지 감독의 <미녀 삼총사>와 폴 피그 감독이 젠더를 뒤집으며 리부트한 <고스트버스터즈>, 그리고 <355>만큼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오션스8>까지, 공통점은 모두 시리즈라는 것이다. <355>의 속편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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