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게 죽음을 맞은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구청 공무원이 망자의 역사를 더듬어가는 영화 <스틸 라이프>. 이 작품으로 삶의 끝에서부터 그 의미를 다시 길어올린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는 신작 <노웨어 스페셜>에서도 비슷하지만 더욱 천진한 감성으로 죽음 주변의 생의 끄트머리를 조명한다. 머지않아 자신이 세상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싱글 대디 존(제임스 노턴)은 네살배기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에게 새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강아지를 키우고 싶을 뿐인 마이클은 아빠의 손에 붙들려 각기 다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른들을 마주한다. 존에겐 그 눈빛 모두가 성에 차지 않지만 입양 기관에서도 존을 내버려둘 수만은 없다. 영화는 감정의 파고를 무릎께로 유지한 채 부자의 일상을 잔잔히 비춘다. 첨벙이는 마음을 인물 안에 묻어둔 채, 좋은 가족이란 아이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묻는 동시에 죽음을 기다리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어른이 아이에 대해 잘 몰랐다고 자각하게 만들고, 정상가족이 행복의 기반이 되리라는 믿음에 반문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배우 제임스 노턴의 호연도 빛난다.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되었고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