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 개봉하는 <묻지마 패밀리>는 적어도 제작비에서 만큼은 충무로에서 ‘기적’같은 영화다. 신하균, 유승범, 임원희, 정재영, 이문식, 정규수, 방은진, 박선영, 임하룡… 제법 한 몸값하는 이런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의 순제작비가 2억7천만원이라니 말이다. 출연료 없이 참여한 건 배우 뿐 아니다. 편집, 컴퓨터그래픽, 사운드 등 대부분의 스탭들이 돈을 안 받았다. 놀라운 것은 제작비만이 아니다. 신인 감독 세명의 단편 세편을 모아 극장에 내거는 ‘배짱’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아마 문화창작집단 ‘필름있수다’(줄여서 ‘수다’) 아니곤 생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99년 <간첩 리철진> 제작 이후 혜화동에 달랑 간판 하나 내걸고 출범한 ‘수다’는, 다양한 문화분야에 손을 뻗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 영화 <킬러들의 수다><디지털 삼인삼색>, 가수 김종국의 뮤직비디오 등이 그 가시적 성과물이다. 물론 이제 ‘수다’도 체계를 갖추고 장사를 하는 회사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젝트마다 게릴라 집단처럼 몰려다니며 과시하는 ‘맨 파워’의 비밀은 사람들에게 항상 관심거리다. 이 괴이한 집단의 정체를 밝혀보기 위해, 장진 감독과 배우 임원희, 정재영 등 수다스런 세 남자를 만나봤다.-편집자장진 감독과 두 배우는 서울예대 1년 선후배 사이로 처음부터 ‘수다’에 참여했다. 장 감독은 “이들 둘만 있으면 든든하다”고 말한다. 정재영 장 감독과 전 같은 동아리에 있었지만, 원희는 ‘정극’을 하는 동아리였어요. 우리가 민족극할 때 번역극을 하던 친구죠. 그래서 대사가 아직도 ‘문어체’에요. 임원희 또 2:1로 공격하는군.장진 그런데 원희는 내 군대 고참이에요. 우리가 사단 연극대회에서 공연한 2인극 <오해>가 있었는데, 정말 내 3대 작품중 하나라니까요. 재영이는 내가 95년 처음 연출한 <허탕>에 출연했고 한동안 슬럼프 끝에 돌아온 작품도 제 연출이었어요. 이 나이, 이 가격대에 이만한 배우는 없어요. 임원희 이 가격대에 없다는 말이 중요하죠. ‘수다’가 벌이는 일들의 규모가 커졌지만, ‘동인들의 모임’이란 성격엔 변함이 없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임씨는 “우리에게 ‘도장(정식계약)’은 별 의미없어요. 서로 필요할 때 달려갈 수 있는 친구이고 동지”라고 말했다. <묻지마 패밀리>도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졌다. “좋은 신인감독을 발굴하자”는 취지에 흔쾌히 동의한 배우들은, 애초 이 영화가 개봉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진 만들 땐 우리끼리 극장 하나 빌려 음식차려 놓고 파티하며 틀자, 이런 생각이었어요. 예상보다 일이 커져 부담스러워요. 초심을 잃을까 싶어서. 정재영 누구한테 비판받을 생각 않고 참여했기 때문에 당혹스러웠어요. 다른 상업영화와 달리 봐줬으면 하고요. 하지만 단편영화를 상업적으로 개봉한다는 사실은 후발주자들이나, 배우들이나, 힘없는 감독들에게나 매우 고무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장진 후반작업, 컴퓨터 그래픽, 편집 이런 사람들한테 ‘장사 신경쓰지 말고 우리 하고 싶은대로 한번 해보자’ 하니까 모두 오케이 하고 정말 신나게 일하더라고요. 그들 모두 원래는 아티스트에요. 근데 평소 오퍼레이터 기능만 하고 있었던 거죠.임원희 사실 영화 한편 계약하는 건 힘든 일이죠. 돈 뿐 아니라, 자기인지도나 이미지 모두 고려해야 하고요. 그런 제약 없이 영화를 찍어서 행복했어요. 개봉할 줄 알았으면 좀 좋은 역을 맡는건데…. ‘수다’표 영화의 대표는 역시 코미디다. 세 사나이의 수다는 코미디 이야기가 나오자, 좀더 진지해진다. 임원희 쉬운 코드 같지만 코미디 만큼 어려운 게 없어요. 게다가 한국에선 코미디가 대접받는 장르도 아니잖아요. 웃다가 나와선 비난하는 관객들 하며…. 피에로의 비애 같아요. 정재영 억지 웃음을 끌어내는 작품들이 있는데, 그런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요. 갈수록 헷갈려요. 장진 시나리오 쓰고 있을 때 누가 전화해서 뭐하냐고 물으면 “나는 지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해요. 누군가 <묻지마 패밀리>를 보고 잊었던 친구에게 전화 한 통 걸 마음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묻지마 패밀리>는 영화 제목이자 ‘수다’의 장기 프로젝트명이다. 올해는 영화였지만, 내년엔 퍼포먼스가 될 수도, 그 다음엔 뮤직비디오나 인디밴드의 록 콘서트가 될 수도… 이렇게 어디로 튈 지 몰라 영어제목으론 ‘노 코멘트’이다. 이들은 이 프로젝트가 “중심에 충격을 주는 작은 ‘진동’이 되길” 바랐다.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