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무드를 만들어서 주제를 전달한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국제시장> <암살> <아가씨> 등의 프로덕션디자인을 책임진 류성희 미술감독은 영화미술의 임무를 이렇게 정의했다. 색감과 질감, 공간과 배치 등 각종 시각 요소를 동원해 한편의 영화가 품은 분위기를 구현하는 것. 영화미술은 프레임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율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까지 표현해내는 역할을 한다. 이토록 매력적인 작업을 통해 영화를 만들어가고 싶은 이들이 전문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학교가 생겼다. 2022년 새롭게 문을 여는 PaTI 프로덕션디자인 아카데미(PaPA, 이하 파파)다.

디자인 학교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 이하 파티)과 한국영화미술감독조합(이하 미술감독조합)이 함께 세운 파파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활약할 프로덕션디자인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이포그래퍼이자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가 날개(교장을 칭하는 파티의 순우리말 직함.-편집자)로 있으며 4년제 디자인 전문과정을 운영해오고 있는 파티가 미술감독조합과 손을 잡고 프로덕션디자인 특별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파티의 안상수 날개는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가 르네상스를 맞이해 세계인의 주목을 듬뿍 받고 있다”며 프로덕션디자인 전문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술감독조합 김민오 대표 또한 플랫폼 다변화로 인해 늘어난 프로젝트들 덕에 “현장에 미술 스탭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을 짚었다. 몇몇 대학을 중심으로 영상미술 관련 커리큘럼이 운영되고는 있지만 현장과 기술의 급속한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영상미술 전문가로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 용기를 낼 때”라는 것이다. 파파는 영화·드라마 제작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영상미술 인력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1기 학생 20명을 만날 준비 중이다.

파파의 구상부터 교과목 개설까지 담당한 황인준 미술감독에 따르면 파파의 커리큘럼은 학생들이 영화미술의 이론과 실기를 두루 익혀 바로 현장에 투입될 실력을 갖추도록 구성되었다. 수업은 1년 2학기제로 봄·가을 학기 각각 12주씩 진행하고, 방학에는 인턴 및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파파는 미술감독조합,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등과 교류해 학생들이 방학 중 장편상업영화 현장의 실무를 경험하거나,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에 참가하도록 할 계획이다.

개설 강의도 다양하다. 프로덕션디자인의 역사와 개념, 프로덕션디자인 조형의 원리와 색채, 캐릭터 디자인, 컨셉아트 디자인, 세트 디자인과 같이 영화미술 작업의 토대를 다지는 수업은 물론 텍스트분석, 촬영 및 조명의 이해 등 영상언어 전반을 공부할 수 있는 수업들도 마련돼 있다. 강사로는 파파의 마루(원장 및 소장을 칭하는 파티만의 순우리말 직함.-편집자)이자 <해운대> <항거: 유관순 이야기> 등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았던 황인준 미술감독, 파티영상연구소 마루인 <구미호 가족> 이형곤 감독을 비롯해 <증인> 강소영 미술감독, <우리 손자 베스트> 황비긴 미술감독, <마더> <차우> 등의 컨셉아트를 담당한 공윤택 작가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이준익 감독, 이현승 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등도 특강이나 멘토링에 참여하는 등 자문위원으로서 힘을 합칠 예정이다. 한편 학생들은 2학기 과정이 마무리되면 수료하는데, 수료와 함께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한다. 파파는 미술감독조합 소속 미술감독들을 초청해 학생들의 포트폴리오 발표회를 열고, 이 자리가 학생들의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파파는 한국영화·드라마 미술의 허브가 되어 아시아 최고의 프로덕션디자인 전문 아카데미로 거듭나길 꿈꾼다. 유수의 미술감독과 영화인들이 뜻을 모은 만큼 첫 학생을 맞이하는 기대도 크다. 황인준 미술감독은 “영화판에서는 학력과 학벌 대신 능력을, 미술 자체보다도 영화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니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갖고 도전해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