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론(율리우스 펠드마이어)과 그의 연인 노라(사스키아 로젠달)의 평온한 일상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산산 조각 나버린다. 아론이 은행 강도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된 것. 죽어가는 순간, 아론이 유언처럼 남긴 말은 “나의 끝은 너의 시작이야.”
아론의 죽음 이후 노라는 상실감과 절망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채 점차 메말라가고, 과거의 파편들은 환상처럼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한편 영화의 또 다른 세계에는 딸의 치료비와 실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나탄(에딘 하사노비치)이 존재한다. 노라와 나탄의 세계가 겹쳐 교집합을 만들어낼 때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노라는 데자뷔를 겪듯 나탄에게서 낯설지만 익숙한 감정을 느낀다.
독일의 신인감독 마리코 미노구치의 장편 데뷔작 <나의 끝, 당신의 시작>은 제목에서부터 암시하듯 ‘끝 이후의 시작’을 동력으로 삼는 다. 젊은 연인의 사랑은 비극적인 사고로 허무하게 끝나버리지만,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생과 죽음, 만남과 이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 영화는 세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들의 인연과 운명을 탐구한다. 특별히 새롭다거나 신선하다고 할 순 없는 주제의 미스터리 드라마지만, 몽환적인 무드를 조성하는 안정적인 연출과 사스키아 로젠달의 처연한 얼굴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