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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퍼스트 카우' 이 땅의 주인은 차라리 자연
이주현 2021-11-03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퍼스트 카우>를 만든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미니멀리스트이자 리얼리스트이고, 여성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 미국 독립영화계의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1994년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초원의 강>으로 데뷔, 이후 <올드 조이>(2006), <웬디와 루시>(2008), <믹의 지름길>(2010), <어둠 속에서>(2013), <어떤 여자들>(2016)을 만들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다져왔다. 주로 영화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감독이기에, 국내에선 그녀의 경력과 명성이 무색하게 이름이 덜 알려진 감독이기도 하다. <퍼스트 카우>엔 그런 켈리 라이카트의 영화적 관심사와 정수가 녹아 있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 속 한 문장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자 영화가 끝나면 뜨겁게 곱씹게 되는 문장이다. 1820년대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야만의 시대이자 가능성의 시대. 풍요와 번영을 꿈꾸며 모두가 길을 떠났던 시대가 영화의 배경이다. 사냥꾼들의 식량 담당인 쿠키(존 마가로)는 밤중의 숲속에서 식량이 될 만한 것들을 채취하다 러시아인들에게 쫓기는 신세인 중국인 킹루(오리온 리)를 만난다. 알몸으로 나무 덤불 사이에 숨어 있던 킹루에게 쿠키는 옷과 먹을 것과 숨을 곳을 제공한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어느 마을에서 재회한다. 이번엔 킹루가 쿠키를 자신의 거처로 초대해 술과 머물 곳을 제공한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꿈을 이야기한다. 농장과 호텔을 여는 게 꿈이라고 고백한 가난한 두 사람의 사업 구상은 빵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발전하고, 쿠키의 빵은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먹을 만큼 인기를 끌게 된다. 마을의 영향력 있는 인물 팩터 대령(토비 존스)도 쿠키의 빵에서 고향의 맛을 느끼는데, 문제는 쿠키의 빵이 마을의 유일한 젖소인 팩터 대령의 암소에게서 몰래 짠 우유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퍼스트 카우! 마을에 도착한 첫 번째 소이자 유일한 소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뜻밖의 스릴을 자아내는 범죄영화의 모양새를 취한다. 그런데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범죄영화라는 말은 <퍼스트 카우>를 설명하기에 적잖이 부족하다. <퍼스트 카우>를 비롯한 켈리 라이카트의 영화에서 이야기보다 중요한 것은 풍경과 감각이고, 인물의 말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시공간에 대한 정보를 친절히 제공한다거나 이야기를 복잡하게 꼬아 퍼즐을 꿰맞추게 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대신 쿠키가 버섯을 딸 때의 주변 공기를 섬세하게 포착해 감각의 세포를 일깨운다든지, 젖소와 친밀히 교류하며 우유를 짜는 모습으로 캐릭터의 특징을 드러낸다든지, 땅속에 나란히 묻힌 두구의 해골을 가만히 비추는 것으로 미국 땅의 역사를 길어올리는 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켈리 라이카트의 인물들은 이번에도 떠돌아다닌다. 그래서 영화는 길 위의 영화, 땅의 영화, 풍경의 영화가 된다. <퍼스트 카우>에서 감독은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정의 서사 한가운데에 조용한 성품의 유대인 요리사와 산전수전 다 겪은 중국인을 데려다놓았다. 원주민과 침략자, 무법자와 영웅의 파워 게임으로 굴러가던 서부극, 질서와 무질서, 자연과 문명의 대립항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서부극과 <퍼스트 카우>는 애초 출발선부터가 다르다는 얘기다. 마을에 처음 온 암소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누군가는 말한다. “애초에 없던 건 백인도 마찬가지지.” 영화는 이 땅의 주인은 차라리 자연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의 화면비는 4:3이다. 4:3 프레임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드라마에 적합한 화면비다. 추격과 대결의 서사라면 긴 가로축이 필요했겠지만 쿠키와 킹루의 우정에는 둘의 심리적 친밀감에 집중하게 하는 고전적인 사각의 프레임이 잘 어울린다. <빅쇼트> <캐롤> 등에 출연했던 존 마가로가 쿠키를,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오리온 리가 킹루를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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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원작자

<퍼스트 카우>는 조나단 레이몬드의 소설 <더 하프-라이프>를 각색한 작품이다. 조나단 레이몬드는 영화의 공동 각본가이기도 한데, 켈리 라이카트와 조나단 레이몬드는 <올드 조이> <웬디와 루시> <믹의 지름길> <어둠 속에서> <퍼스트 카우>까지 다섯 작품의 각본과 각색을 함께했다.

켈리 라이카트의 친구들

조나단 레이몬드 외에도 <퍼스트 카우>에는 켈리 라이카트와 오랜 시간 협업해온 스탭들이 함께했다. 프로듀서 애니시 샤브야니와 닐 콥, 촬영감독 크리스 블로벨트도 <어떤 여자들> <어둠 속에서> <믹의 지름길> 등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다.

수상 경력

<퍼스트 카우>는 제86회 뉴욕비평가협회상 작품상 수상 등 미국 내 각종 비평가협회상에서 작품상, 각본상 등을 휩쓸었다. <타임> 선정 최고의 영화 톱10 등에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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