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산골영화제는 2019년부터 상영작에 대한 비평적 지지를 통해 영화제의 생산적 역할을 강화하고, 영화비평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비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영화평론가상"을 신설했다.
2021년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의 세 번째 영화평론가상 수상의 기쁨은 이동우 감독의 <셀프-포트레이트 2020>에게 돌아갔다. 올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남다은, 이나라, 이도훈 평론가는 영화제 이후 수상작을 포함하여 이란희 감독의 <휴가>와 권민표, 서한솔 감독의 <종착역>에 대한 비평을 각각 작성했다.
씨네21는 무주산골영화제가 보내온 영화평론가상의 결과물인 3편의 비평을 소개한다. 동시대 한국영화를 대표할 만한 3편의 영화를 깊이 들여다보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프롤로그
어떤 영화들은 우리의 시선에 사라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남긴다. 이동우의 영화가 그렇다. 펑크밴드 스컴레이드의 멤버이기도 한 이동우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셀프-포트레이트 2020 :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본다>를 보는 동안 우리 시선에는 사라지던 사람들이 되돌아온다. 이제껏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을 바라보고 듣던 우리 눈과 귀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소리가 자취를 남긴다. 2017년 12월 우연히 알게 된 인물을 찍은 이동우의 영화는 세 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이제껏 우리, 우리 인간과 카메라의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던 인물들, 파고다 공원과 종로 조계사 근처에서 마주칠 수 있었던 인물들을 조명한다.
1. 출발
여기 이동우가 만난 이상열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동우가 적어 놓기를 이상열이 길에서 이동우에게 자기만큼 멋있다고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영화의 출발점에는 탑골 공원 옆 악기 상가에 드나드는 펑크밴드 멤버와 탑골 공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인생을 소일하는 것 같아 보이는 한 사내의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는 점을 밝혀둘 필요가 있다. 이동우는 자신의 삶과 무관한 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 민속지학 연구자나 작가가 아니다. 이동우가 도시 룸펜, 노숙자, 알콜 중독자, 우울증 환자 등을 다루는 민속지적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대상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프로필을 가진 이상열을 만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 이 점을 우선 밝혀둘 필요가 있다. 민속지적 다큐멘터리는 서구 중심의 관점, 주류의 관점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대신 비서구의 공간 내지 타자의 공간 속에서 작업하는 것을 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속지적 작업자들은 많은 경우 신뢰성과 진실성의 한계, 자신들의 시선을 대상에 강제하고, 대상의 고통을 수집하고 착취할 수 있다는 한계에 직면한다. 이상열과 이동우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펑크밴드 일원으로 주류 질서와 타협할 필요를 별다르게 느끼지 않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제끼고, 규칙과 금전을 우습게 여기는 펑크밴드를 촬영한 <노후 대책 없다>라는 “영화 한 편을 만들고 막걸리 값 정도가 남아있던” 이동우와 이상열 사이에는 모종의 동일시와 연대감이 애초에 있었다고 가정해 봄직 하다. 이상열에게는 이동우가 자신을 투사할만한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열은 몇 번 얼굴을 본 이동우에게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소개한다. 이상열은 GoPro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이동우의 말을 받으며 별스럽지 않게 자신이 옛날에 쓰던 소니 카메라 이야기나 1991년쯤 조감독으로 튀니지에 갔던 이야기를 꺼낸다. “튀니지요?”라는 이동우의 목소리에는 의아함과 놀라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제로 영화의 주인공, 이동우가 만나 술친구가 된 이상열은 20여 년 전 <자화상 2000 :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본다>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당시로서는 큰 자본이 필요했을 35mm 필름으로 찍은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바도 있다. 이상열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동우에게 기회가 되면 두 번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열의 꿈을 실현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기획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자체로 도전이라고 할 만해 보인다. 무직 상태로 지내면서 파고다와 조계사 근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상열은 현재 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기 때문이다.
<노후 대책 없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상금도 받아본 적이 있는 이동우는 우연히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친구가 된 이상열이 영화 만드는 것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2018년 여름, 이 과정을 일종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로 찍겠다는 기획안을 적어내 국가로부터 영화제작지원금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2018년 하반기부터 이동우는 좀 더 본격적으로 이상열과의 만남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본격적 기록이란 세밀하게 무엇을 기획했다는 뜻이나, 정교하게 촬영과 녹음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친구 이상열을 만날 때 GoPro, 아이폰, 비디오 카메라 등을 늘 들고 만났다는 것을 뜻하는 정도다. <노후 대책 없다>를 거의 혼자 완성했던 이동우는 이번에도 홀로 이상열을 기록했다. 이동우의 카메라는 때로 이동우의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동우는 별도로 앵글, 초점, 프레임을 조정하지 않고 카메라를 켠 채로 이어지는 술자리, 사소하거나 위험한 다툼의 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이동우가 손에 든 카메라가 시네마 베리테의 핸드헬드 카메라와 같은 것은 아니다. 장 루슈의 흔들리는 카메라가 시선의 신체성과 주관성을 증명하고 있다면 이동우의 카메라는, 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우정의 징표로서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이동우가 완성한 다큐멘터리에서 이상열은 시나리오 작업, 배우 캐스팅, 촬영 등을 언급하며 포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무자비하게 결론을 말하자면 이상열의 영화촬영기를 찍겠다는 기획안으로 제작지원금을 받은 이동우가 지원금 의무조항에 따라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야 할 시간이 다 되도록 이상열은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엄밀히 말해 영화제작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못했다. 게다가 2019년 내내 이상열은 바깥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술에 의존하는 동안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켰던 이상열은 2019년 구치소에 갇혀있어야 했다. 애초의 기획을 실현할 수 없었던 이동우는 망했다고 느끼지만, 여하튼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야 했다. 이동우는 출소한 이상열과 만난다. 이들은 더는 함께 술을 마시지 않고, 더는 카메라를 켠 채 만나지 않을 것이다. 술을 거절하는 연습을 하자고 하고, 인사를 나눈 후 오르막길로 걸어 올라가는 이상열을 멀찍이서 찍고서 이동우는 더는 이상열을 찍지 않았다. 출소한 이상열과 헤어지는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니지만, 여하튼 마지막 촬영이었다. 이상열과 만남을 이어가던 이 년 동안의 촬영본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이동우는 2020년 초여름, 처음으로 그동안 촬영한 말과 영상을 살핀다. 거기에는 2017년 겨울 이상열을 처음 만났던 날 노래를 부르는 이상열을 장난스럽게 촬영한 이미지부터 2018년 하반기 이상열의 영화제작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록했던 영상들, 서울 구치소로 향하는 장면, 이상열이 수감된 후 통화를 하거나 만난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와 영상이 있다. 이동우는 이 러쉬필름을 가지고 편집을 시작한다.
2. 출현
영화제작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많다. 이미 유명한 감독들의 기획도 숱하게 엎어진다. 이런 과정을 담은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지옥>, <로스트 인 라만차>같은 다큐멘터리도 있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지옥>은 <까마귀>, <공포의 보수> 등으로 이미 저명했던 클루조 감독이 1964년 촬영을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던 영화 <지옥>의 러쉬 필름과 출연진 인터뷰 등을 활용한 다큐멘터리였고, <로스트 인 라만차>는 3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돈키호테에 관한 영화촬영을 시작했던 <브라질>의 감독 테리 길리엄이 겪은 스펙터클한 불운과 실패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상열은 앙리 조르주 클루조나 테리 길리엄이 아니고, 라만차 촬영장처럼 홍수가 들이차는 촬영장, 천문학적 투자, 캐스팅된 대배우 같은 흥밋거리도 존재한 적이 없다. 스토리를 텔링하자면, 이 년 동안 계획된 일, 즉 이상열이 영화를 만들게 되는 일, 재기, 성공, 행복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동우도 별것을 찍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동우는 편집을 통해 하나의 서사를 구성하는 대신 친구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동우가 편집을 하는 동안 이상열이나 이상열의 주변 인물을 다시 만나 특별한 장면이나 멘트를 얻어내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동우는 수감되어 사라진 이상열을 수소문하며 이상열의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 우리는 여느 어머니와 다름없이 애간장을 녹이며 “우리 애는 효자로 소문났고, 착하다”, “동우씨가 잘 좀 말해달라”고 하는 전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를 두 번에 걸쳐 듣는다. 실제로 이동우는 이상열의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고, 영화에 소개하지 않은 이상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 목소리를 보이스 오버로만 사용한 이유를 묻자 이동우는 “어머니는 본인을 찍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설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상열의 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 일, 수감 중인 이상열의 모습을 몰래 찍지 않는 일 등은 어쩌면 다큐멘터리의 윤리와 관련된 일이다. 그러나 이동우가 그런 ‘그림’을 만들지 않은 것은 단지 윤리적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동우는 이상열의 삶을 성공이나 실패로 규정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이상열을 소재로 삼아 그럴듯한 성공 혹은 실패의 이야기 내지 사회의 그늘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이야기를 구성하고자 했다면 이 년 동안 찍은 장면들은 그다지 ‘적절하고 의미심장한 그림들’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2020년 여름 이동우가 그동안 찍은 것들을 들여다보자 많은 장면이 이동우를 붙잡았던 것 같다. (처음 편집을 마쳤을 때 편집본은 다섯 시간에 육박했다고 한다) 적절하고 의미심장한 그림이 없다는 말은 이상열에게 아무런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뜻이 물론 아니다. 이동우가 별것 아닌 기록들로 무의미를 증명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리도 물론 아니다. 이동우의 영화 속에서 이상열은 자주 무리 속에서 술에 취해있다. 영화 속에는 술을 마시다 술에 의존하게 된 사람, 술을 마시다 조울증을 앓는 사람의 가감 없는 모습이 있다. 하지만 이동우의 영화는 이상열이라는 인물을 함부로 축소하지 않는다. 영화는 노숙자 무리에 속하는 익명의 개인, 거리의 군중, 조계사 앞의 말썽쟁이, 파고다 공원 알콜 중독자라는 규정으로 한 인물을 보여주는 일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도박, 다단계, 택시 운전 중 겪은 사고 등 이 사람이 겪은 불행이 얼마나 집요했던가를 추적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의 불행이 그 다음 불행의 빌미를 제공하였다고 애써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영화는 중앙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방송국을 다니다 호기롭게 영화판에 들어간 사람의 과거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한 인물의 생애를 그럴듯한 성공담이나 실패담으로 구성하기 위해 하나하나의 말과 행위를 애써서 ‘배치’하는 대신 ‘차별 없이’ 인물과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광경들을 되도록 모두 포함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동우가 만든 영화는 ‘누구든 무엇이든 역사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증언에 가깝다. 만인의 ‘모범이 되는 사례’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역사’, 랑시에르가 예술이 형상화하는 역사의 네 번째 의미로 꼽은 것을 증명하는 영화에 가깝다.
이동우는 관객들이 “주인공의 모든 삶을 오래도록 지켜보면” 주인공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을 가진 영화의 편집을 마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포함되었다. 대책 없는 나날을 보내는 이상열이 보도블록을 깨는 중장비 소음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소음을 리듬으로 바꾸는 장면, 보들레르의 말을 말라르메의 말로 인용하는 장면, 하길종의 말을 가슴에 새기는 장면, 옛날 비디오 카세트에 녹화된 오즈 야스지로와 브레송의 영화를 보고 또 보던 이야기를 하는 장면, 소식이 끊어진 아내와 딸 이야기를 하는 장면, 딸이 전화기로 퍼붓던 비난을 되뇌는 장면, 쫓겨나는 장면, 멋 내는 장면, 돈을 달라고 투정하는 장면, 가슴 끓는 노모의 목소리, 이상열이 사라지자 금새 이상열을 비난하는 거리의 사람들. 이 모든 장면 속에서 이상열의 대체될 수 없는 인간성(humanitas)이 ‘출현’한다. 이동우가 많은 경우 몸에 지니고 있던 카메라로 습관처럼 찍은 범상하게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출현한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상투적인 기대와 판단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면서, 무관하게 흩어져 있는 장면들을 하나로 ‘모은다’.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지만 삶이 침묵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모여서 출현하도록 한다.
3. 욕망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차이가 모두 지워진 ‘무리’가 한 편에 있다면 다른 한 편에는 다른 개개의 존재나 무리가 출현할 수 없도록 모든 빛을 독식하는 ‘스타’가 있다. 스타는 쇼 무대와 운동경기장,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의 강렬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출현한다. 우리는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그를 열망하고, 모방하고, 사랑한다. 문제는 스타를 비추는 밝은 빛 탓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던 이들을 보이게 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이 있다. 하나는 스타가 아닌 이들, 주변부 존재, 엑스트라에게 빛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방법이다. ‘소외된 이들’에게 말을 걸고,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고정하는 일은 대체로 이들의 의지를 지지하며, 응원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투쟁/노력하고 있는지 기록하여 알리는 일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어둠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이다. 명멸하는 빛을 내는 이들, 희미하게 빛나는 이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어둠의 조건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이다. 이때 어둠은 위협과 공포의 비유로 기능하는 대신 빛을 가시화하는 지반이다. 이는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이 단테부터 파솔리니에 이르는 작가들의 글을 인용하며 작은 빛 반딧불에 대해 적었던 글에서 주장했던 바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감독인 파솔리니는 1941년 짝짓기를 하는 반딧불에 관하여 아름다운 글을 썼지만 1970년대가 되어서는 반딧불 또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에 대한 작은 저항의 불길을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이탈리아의 상황에 절망했었다. 디디 위베르만은 반딧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반딧불이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지고 있다고 고쳐 말한다. 대도시의 조명, 전쟁터의 서치라이트, 경기장의 스포트라이트가 내는 밝은 빛이 오히려 반딧불과 같은 미미한 빛, 미미한 존재들의 춤을 볼 수 있게 하는 어둠을 삭제하거나 쫓아낸다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이동우의 영화 <셀프-포트레이트 2020>이 이상열이라는 존재의 인간다움, 인간성을 드러내는 영화라고 적었다. 이는 무엇보다 이동우의 카메라가 어둠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둠 안에 머물렀던 덕분일 것이다. 이동우의 영화는 어둠 앞에서 물러서는 대신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빛나는 모습들을 기록했다. 영화 속에는 숱한 어둠이 있다. 이상열 내면의 어둠, 파고다 공원과 조계사 길거리, 옥탑방의 어둠 속에 사람들이 있다. 어둠 속에는 술에 취해 욕설과 주먹질을 주고받는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울며 재회하는 이들이 있고, 외국 작가의 이름을 인용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놀이가 있다.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또한 폭력, 다툼, 환각, 죽음의 소식 –영화 말미 우리는 이상열 다음으로 많은 장면에 등장했던 철이의 소식을 듣는다. 이상열에게 계란국을 끓여주던 철이, 사회학자 같은 말투로 쪽방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최대 5년인 것 같다고 말하던 철이는 쪽방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한다- 역시 듣는다. 그곳에는 삶이 밀어내지 못하는 죽음이 있고, 죽음 앞에서도 살기를 멈추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4. 친구의 이미지
아녜스 바르다는 <아녜스 V에 의한 제인>이라는 영화를 만든 바 있다. 이는 친구 제인 버킨에 대한 초상화-초상영화였다. 당대의 스타였던 친구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 바르다는 픽션의 놀이를 제안했었다. 바르다는 영화에서 제인 버킨에게 제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 인물, 잔 다르크에서 <타잔>의 제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물을 연기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버킨의 초상화를 살피는 동안 친구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여러 가지 선택, 영화적 형식과 삶의 형식에 대한 선택을 하고 있는 감독 바르다 본인을 떠올리게 된다. <아녜스 V에 의한 제인>은 한편으로 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자화상인 셈이다. 이동우의 <셀프-포트레이트 2020>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이상열의 자전적 단편영화 <자화상 2000>의 뒤를 잇는 이상열에 대한 초상영화인 동시에 이상열의 초상영화를 그리고 있는 이동우 자신의 아직은 밑그림에 불과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동우의 영화는 이상열의 영화 제목 뿐 아니라 이상열이 만든 영화를 두드러지게 빌려온다. 15분에 달하는 <자화상 2000> 전체가 이동우의 영화 안에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져 모두 인용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열의 영화가 이동우의 영화를 감싸 안고 있다. 이상열 영화의 오프닝,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준 로베르 브레송에게 감사합니다”라는 헌사와 한강의 정경이 <셀프-포트레이트 2020>을 연다. 이상열의 영화, 이상열의 이야기는 이동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이어진다. 2000년 이상열의 영화가 상영되던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 기록 화면이 이동우 영화의 엔딩 크레딧 다음에 이어져 영화 전체를 끝맺는다. 마치 이동우가 이상열과 이상열의 영화를 찍은 것이 아니라, 이상열의 영화 또는 이상열의 삶, 이상열과 맺은 우정이 이동우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동우는 스물다섯 무렵 파인드 더 스팟, 반란 등 국내 펑크밴드 멤버인 자신의 친구들을 찍었다. 차갑게 지켜보거나, 불행을 조명하거나, 열렬히 응원하는 대신 이동우는 늘 친구로 친구를 찍어왔다. 친구와 함께 즐기고, 이야기하고 모색하는 동안 카메라가 거기 있었으므로(다큐멘터리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이동우는 “내가 누군가를 찍는 게 아니라 나의 삶 속에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 같다”라고 답하곤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 친한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 웃음과 울음과 몸짓을 찍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친구를 찍은 어떤 이미지는 나와 친구에게만 속하는 이미지, 사적인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각별한 망자를 이미지로 남겨 기억하는 문화가 꽃피었던 고대 로마 시대에 망자의 이미지는 늘 공동체에 속하는 자산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각별한 지인의 이미지도 내밀한 동시에 공동체에 속하는 이미지, 공동체의 기억을 위한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언제나 친구를 찍는 이동우의 영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동우의 영화는 친구의 이미지가 어떻게 공동체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이동우는 이상열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이상열에 대한 영화를 찍으려고 마음먹었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촬영본을 꺼내 보고, 편집을 마치고 나자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상열과 정말 친구가 되었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영화 속 인물들과 모종의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완성된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몇몇 영화제에서 소수의 관객들만을 만났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를 지지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 영화를 더욱 지지하게 되었다. 이 영화가 더 많은 관객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꼭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