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멕시코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밀입국해 들어온 마야(파일러 파딜라)는 언니 로사(엘피디아 카릴로)가 일하는 청소 용역회사에 취직한다. 중간관리자는 밀입국자인 마야를 취직시켜준 반대급부로 한달치 급료를 가로채간다. 청소부의 대다수가 남미 밀입국자인 이 회사의 근로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늦게 출근했다고 그 자리에서 해고해버리고, 동료 청소부를 밀고하도록 꼬드긴 뒤 거부하면 또 잘라버린다. 마야가 취직한 지 석달쯤 지나 노동운동가 샘(에이드리언 브로디)이 이 용역회사의 청소부 명단을 훔치러 들어온다. 경비원에게 들켜 쫓기는 샘을, 마야는 대형 쓰레기통 안에 숨겨준다. 다음날 샘이 마야와 로사 식구의 집에 찾아와 청소부들이 단결해 싸워야 한다고 선동한다.■ Review 켄 로치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사가 됐다. 소련이 해체되고, 거대담론이 무너지고, 노동계급의 연대의식이 아스라해진 90년대에도 줄기차게 계급적 관점을 지키면서 억압받는 약자들의 투쟁을 영화로 만들어왔다. 고지식함, 비타협적인 태도, 좀더 나쁘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의미로 ‘켄 로치적’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쌓았던 그의 대중적 인기는 필모그래피가 쌓여갈수록 줄어들어 이제는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만이 켄 로치 영화의 고객으로 남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세기가 바뀐 2000년에 그가 내놓은 영화는 제목부터 <빵과 장미>이다. ‘빵’은 생존권, ‘장미’는 단순히 먹고사는 것에 더해 인간이 누리려 하는 여유와 풍요를 의미함은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반세기 전에 브레히트는 “지금 장미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그 밖의 모든 억압과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켄 로치는 “우리는 빵뿐 아니라 장미도 원한다”고 외친다. 나치 파시즘의 만행이 코앞에서 저질러지던 그때와, 지금 세계화 시대의 풍요를 염두에 둔다면 두 말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빵과 장미>처럼 ‘켄 로치적’인 제목이 있을까.
직설적인 제목에 걸맞게 영화의 주인공들은 풍요의 상징인 미국, 그중에서도 최고소득의 변호사와 펀드매니저가 모여 있는 LA 고층 건물에서 이들과 정반대로 열악하게 살아가는 청소부들이다. 마야의 집에 찾아온 샘이 말한다. “82년 청소부의 시간당 임금은 8.5달러였고 의료보험, 치과보험 모두 가입이 됐다. 99년 청소부의 시간당 임금은 5.75달러에 아무런 보험혜택도 없다. 그 강도 같은 놈들은 미국의 최빈곤층에게서 20년 동안 수천억원을 가로채갔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가 밀입국자여서 노조도 만들지 못한다.
로사는 남편이 당뇨병으로 고생하는데도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동생 마야를 취직시키기 위해 중간관리자에게 몸까지 내준다. 중간관리자는 그래놓고도 마야의 첫 월급을 가로채간다. 이 영화에서 ‘장미’는 사치스러운 게 아니다. <레이닝 스톤>에서 딸의 성찬식 예복을 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 청소부들이 얻고자 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다. 이들이 샘의 도움 속에 사주와 맞서 싸워 소득을 얻어내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쫓아가는 <빵과 장미>는 줄거리만 요약해놓고 보면 도식적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켄 로치 영화에서 줄거리를 위해 캐릭터가 소외되는 일은 드물다.
켄 로치와 단짝이 된 폴 래버티가 6년 동안 실제 LA 청소부들의 운동에 동참하며 애쓴 덕택에 영화의 인물들은 남미 특유의 낙천성과 거기에서 오는 힘을 놓치지 않는다. 시위하다 체포돼 끌려간 경찰서에서 이들은 에밀리아노 사파타, 판초 비야 주니어 등 남미 혁명지도자들의 이름을 대며 낄낄댄다. 로맨스와 유머도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노동운동가 샘이 강연 도중 마야의 유혹을 받고 섹스하는 장면은, 얼핏 민중영웅의 투사적 이미지 안에 갇히기 쉬운 샘에게 인간의 부드러움과 세속성을 불어넣는다. 변호사 사무실 합병 축하파티장에 청소부들이 몰려들어가 한판 시위를 하고 나오는 대목에선 베니치오 델 토로, 팀 로스 같은 스타들이 파티장의 게스트로 출연해 예상밖의 재미를 선사한다. 아울러 이 유명인사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청소부라는 직업의 특성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한 청소부가 말한다. “우리가 유니폼을 입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야.”
그러나 <빵과 장미>를 도식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건 무엇보다 켄 로치의 세계관이다. 그는 분명 비타협적인 원칙주의자이지만 관념적인 과격함이 없다. 일거에 승리하기를 바라는 욕심이 없다. 이 영화에서 청소부들은 임금인상을 쟁취하지만, 마야는 멕시코로 추방된다. 그래도 마야는 자존심과 명분을 얻고 간다. 자존심과 명분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켄 로치가 말하는 희망은 거기까지다. 딱 거기까지만 얘기하고 영화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건, 얼핏 쉬워 보이지만 웬만한 경륜과 자신감이 아니면 못하는 일이다.
<빵과 장미>의 촬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실제로 LA의 청소부들은 거리시위에 나가 3년간 25%의 임금인상을 얻어냈고 곧이어 LA의 호텔 노동자들도 단결해 같은 성과를 얻었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실제 청소부이자 노조 간부인 마이론 파예스는 “영화가 내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고 영국 언론 <가디언>이 전했다. ‘켄 로치적’이라는 수사는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임범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