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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슈퍼스타
강화길(소설가) 2021-05-24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나의 가까운 사람은 종종 말한다. 내가 장국영에게 너무 후하다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다가, 0.1초 만에 태도를 바꾼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후하다니? 장국영은 감히 내가 후하게 평가할 사람이 아니야. 장국영은 슈퍼스타야. 미남 배우와 아이돌의 상징이라고. 그런 슈퍼스타는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없어. 모든 것에 완벽했어. 타고난 재능과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고. 그런 얼굴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야. 진짜 완벽한 스타라고!

이어 나는 만일 그가 살아 있었다면 보게 됐을지 모르는 가상의 필모그래피를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아마 젊은 시절보다 더 풍부했겠지. 뭔들 못했을까. 장국영인데! 그래서 더 안타까워한다. 조금만 버텼더라면, 무난하게 시간을 보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지 않았다면 나의 이런 주책맞은 마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은연중에 이야기한 적은 많은 것 같지만, 이렇게 대놓고 표현한 건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지금, 나는 뭐랄까, 뻔뻔함과 자신감에 차 있다. 내가 은근히 숨겨두고 사는 이 주책맞은 사랑을, 어쩔 줄 모르는 그 깊은 마음을 얼마든지 드러내도 될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건 장국영에 대한 사랑만은 아니다. 그건 찬실의 표현대로 내가 믿고, 보고,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마음이다.

나는 찬실을 보며 쉬지 않고 웃었지만, 솔직히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서러운 기분에 사로잡혀 울컥하는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건 아마 찬실의 마음을 너무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영화를 좋아했고,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그 일 외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온 몸을 바쳐 헌신했을 뿐인데, 왜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가.

정말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괴로웠던 건, 찬실의 사랑이 너무도 진실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루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너무도 깊은 사람이었다. 영화에 대한 기준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영화가 뭔지 알아?’ 이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믿음을 가지고 전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지금껏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 그 마음을 절대 버리지 못하는 사람. 감추지 못하는 사람.

나는 놀라웠다. 나는 찬실처럼 소설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 의하면 그렇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제의 마음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노력해왔다. 정말이다. 왜냐하면 이 마음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도리어 약점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책인가? 하지만 사실이다. 소설을 사랑하는 이 커다란 마음을 들키게 되면, 누군가 그걸 빌미 삼아 협박하고 빼앗으려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찬실을 바라보는 게 불안했던 것 같다. 저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면 어떡해. 마음을 숨기지 못하면 어떡해! 좀 감춰봐. 그만 좀 해! 하지만 내 우려와 달리 찬실의 사랑은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실패한다고 해서 비웃음을 당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되레 이런 말을 듣는다. ‘우리 다시 같이 영화 만들어요.’ 그것이 이 영화의 세계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우리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 세상에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봐준다.

아, 물론 마냥 고운 말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냉혹하고 불공평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에 대한 시선을 절대 놓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네가 하는 일이 그렇게 대단해? 여기에는 너보다 나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라는 말보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말이 더 힘을 갖는다. 그리고 정말로, 죽어가던 화분은 집 안에서 살아난다. 꽃을 피운다. 때문에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고, 지루한 시나리오를 쓰는 찬실의 삶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타인에 의해, 영화를 모르는 낯선 이에 의해, 그리고 아이돌과 미남 배우의 상징인 장국영에 의해.

그리하여 찬실은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친다. 나는 이걸 좋아해! 그래서 숨길 수 없어! 계속 하면서 살 거야! 그래서 나도 기운을 받았다. 한번쯤은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어쩌면, 앞으로도 숨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뭐 어때. 내가 좋다는데.

생각해보면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해는 정말 이상했다. 사실 내가 장국영을 좋아하게 된 건 그의 ‘과거’ 영화들을 보았기 때문이지, ‘현재’ 영화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그의 현재를 따라가는 게 어려웠다. 왜냐하면 당시 그는 칩거한 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기는 했지만 어쩌다가 한두 편이었다. 이전처럼 그의 영화가 쏟아지는 일은 없었다. 소문만 무성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장국영은 제작자가 되려 했지만 실패했다. 장국영은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장국영은 파파라치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하지만 소문이 아닌 것도 있었다. 홍콩에 사스가 창궐했고, 모두가 긴장한 채 지내고 있다는 것. 홍콩영화계가 침체되어 있다는 것.

나는 먼 곳에 살고 있었고, 어린애에 불과했지만, 홍콩의 변고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역시, 슬펐다. 그러나 그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원래 슈퍼스타는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거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무언가를 절절하게 원하면서 배운 것은 그것이다. 마음이 있다면 표현해야 한다는 것. 표현하는 나만의 방법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공부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내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읽고, 그리하여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 그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하여. 어쩌면 그 때문에 소설을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장국영은 사라졌다. 하지만 찬실의 기도가 그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 덕분에 내 사랑을 열어 내보일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그에게도 그 위로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영화의 세계가 가닿았으면 좋겠다. 찬실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정말이지 복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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