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김소윤) 작가, 김일란 감독, 백현주 배우(왼쪽부터).
한국 최초의 퀴어 가족 시트콤이 온다.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두 개의 문> <공동정범> 등을 제작한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지난 2019년, 퀴어 미디어 운동을 새롭고 재밌게 해보자는 취지로 유튜브 채널 <연분홍TV>를 개설했다. 이후 토크쇼 <퀴서비스>를 찍으면서 장르의 다변화를 꿈꾸기 시작한 그들은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 총 208명의 후원을 받아 2020년 10월부터 첫 시트콤 <으랏파파> 제작에 돌입했다.
이반지하(김소윤) 작가가 집필하고 김일란 감독이 연출한 <으랏파파>에는 퀴어들의 유쾌한 고민이 넘실댄다.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꾸려 각자의 퀴어성을 향해 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3월 26일 금요일 오후 8시, <연분홍TV>에서 최초 공개됐다. 이에 김일란 감독, 이반지하 작가와 함께 <으랏파파>에서 ‘파파’ 고현미를 연기한 백현주 배우를 만났다. 그들이 전한 <으랏파파> 제작기와 더불어 시트콤에 녹아 있는 질문들에 대한 이반지하 작가의 일문일답을 전한다. 이들이 추천한, <으랏파파>와 같이 보면 좋을 퀴어영화도 덧붙인다.
*본 기사는 <김일란 감독, 이반지하 작가, 백현주 배우가 말하는 한국 최초 퀴어 시트콤 '으랏파파' ①> 에서 이어집니다.
김일란 감독, 이반지하 작가, 백현주 배우가 추천하는 퀴어영화
김일란 감독
여자가 더 좋아 1965
“복수를 위해 여장을 하게 된 남자가 자기 안의 ‘여성성’을 계속 발굴해간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검열도 있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흥미롭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홈페이지에서 VOD를 볼 수 있다.”
이반지하 작가
걸스 로스트 2015
“여자아이들이 마법의 식물을 접한 후 젠더가 바뀌고, 성별이 바뀌고, 길을 잃고 또 잃는다. 진짜 ‘걸스 로스트’다. 내가 견지하는 태도와 비슷한 색을 가진, 너무나 재밌고 미친 영화다. 왓챠에서 볼 수 있다.”
백현주 배우
파니 핑크 1994
“서로 다른 사람들이 외로움이나 큰 가치의 상실 이후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위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청자들이 <으랏파파>에서 <파니 핑크>의 따뜻함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반지하 작가가 <으랏파파> 속 퀴어&엘라이들의 고민에 답하다
김일란 감독, 이반지하(김소윤) 작가, 백현주 배우(왼쪽부터).
Q. 수많은 퀴어 관련 용어들이 헷갈려 말실수를 할까 걱정됩니다.
A. 말실수는 해야 합니다. 때로는 잘못을 해봐야 무엇을 잘못했는지 각인할 수 있으니까요. ‘성소수자 언어 사전’ 같은 걸 보고 단어를 외워봐야 눈에 안 들어온답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기꺼이 실수를 하세요.
Q. 아직 나의 성정체성, 성지향성을 모르겠습니다. 답을 알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요. 그런데 꼭 한마디로 나를 정체화해야 할까요.
A. 성정체성, 성지향성이라는 단어를 알고 쓰는 이상 이미 탐색은 시작된 겁니다.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내 안에 다른 가능성들이 존재하게 된 거거든요. 그러나 꼭 한마디로 나를 정의 내릴 필요는 없죠. 당신도 모르게 당신만의 답을 향해 가고 있을 겁니다.
Q. 성소수자인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상담, 강연, 공동체 등)은 어떻게 찾나요.
A.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다니다보면 그런 공간을 만나게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이반지하를 좋아하는 사람들, 연분홍치마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커뮤니티에 갈 수 있잖아요? 그렇게 내가 끌리는 무언가를 좇다보면 성소수자인 나, 예술가인 나 등 한명의 통합적인 내가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도착해 있을 거예요.
Q. 혐오 표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A. 어떤 표현을 어떤 상황에서 듣느냐에 따라 다른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인지 먼저 체크하고 가능하면 변호사를 고용하세요. 한명의 개인으로서는 못 들은 척 넘어가야 할 때도 물론 있는데, 혐오 표현을 한 사람을 놀리는 방법 또한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놀란 척하며 놀려줍시다.
Q. 다른 세대와 슬기롭게 퀴어 이슈를 토론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A. 세대와의 갈등은 넘을 수 없어요. 영원히 불화하되 그냥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저는 소통이 어렵다는 사실을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게 팁이라면 팁인 것 같아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