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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텔라' 백승기 감독 - 영화감독은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다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1-03-25

“욕심꾸러기입니다. (웃음)” 처음부터 끝까지 열정으로 가득한 <인천스텔라> 제작기를 듣다보면 자신을 ‘욕심꾸러기’라 지칭하는 백승기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천스텔라>는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오늘도 평화로운>으로 C급 코미디의 장을 연 백승기 감독의 신작이다. 아시아항공우주국(ASA)은 우주에서 정체불명의 구조 신호와 함께 우주선 ‘인천스텔라’의 설계도를 전달받는다. 그로부터 27년 후, 엔지니어 승연(정광우)이 인천스텔라 우주선을 완성하고 탐사대원 기동(손이용)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승연과 함께 우주선에 오른다.

백승기 감독은 특유의 유머 감각을 유지하되 기동의 가족사에서 비롯된 진중함을 더해 전작과 다른 결의 작품을 완성했다. 우주선으로 변신한 스텔라 자동차부터 거대한 그린 스크린까지, 처음으로 우주영화를 찍으며 고군분투한 백승기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도 평화로운>은 영준(손이용)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판타스틱하고 로맨틱한 SF영화에 지나(박지나)를 캐스팅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인천스텔라>다.

=원래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인천스텔라>를 3부작으로 계획했었다. 그러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노트북 사기를 당하면서 예정에 없던 <오늘도 평화로운>을 찍게 됐다. <오늘도 평화로운> 다음엔 무조건 우주영화를 찍겠다는 일념이 있었다. 사실 <인터스텔라>가 나오기 전에 시나리오를 완성해뒀었다. 나중에 <인터스텔라>를 보니 너무 비슷했다. 저만큼 표현해낼 자신은 없고, 각색을 오래하며 묵혀두려고 했는데 우주 영화에 너무 꽂혀서 다른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천스텔라>를 만들게 됐다.

-보면서 <인터스텔라> <마션> <아마겟돈> 등 여러 영화가 떠올랐다.

=혼자 표류하는 상황을 그린 <그래비티>, 감자가 등장하는 <마션>, 딸과 해변가에서 조우하는 <콘택트>, 딸의 연인과 함께 우주로 떠나는 <아마겟돈>, 최초의 달 탐사를 다룬 <퍼스트맨> 등의 우주영화를 오마주했다. 비행 장면은 <캡틴 마블>에서 영감을 얻었고 기동과 선호(권수진)가 데이트하는 신은 <번지점프를 하다>의 실제 배경지에서 촬영했다. 이번 작품에서 욕심을 많이 냈다. 욕심꾸러기다. (웃음)

-<인천스텔라>의 인천은, 도시 인천(仁川)의 한자가 아니라 사람 인(人)과 하늘 천(天)을 써서 지었다. 어떤 의미가 담겼나.

=그동안엔 돈에 의지하지 않고 영화를 찍어왔는데 <인천스텔라>만큼은 잘 찍고 싶어서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지원금을 받았다. 인천의 아이덴티티는 전작부터 계속 가져오던 거였지만, 지원금까지 받은 상황에서 제목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살짝 변주를 줬다. (웃음) 사람이 곧 별이고 우주라는 칼 세이건의 철학을 영화에 담았다.

-우주 신을 촬영하는 과정은 어땠나.

=꾸러기 스튜디오의 철학이 ‘어차피 못 만들 거면 부담 없이 막 만들자’다.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해야 하는데 전문적으로 조명을 치지 못하면 사람이 같이 사라진다. 그런 것도 전부 각오했었다. (웃음) 다행히 지원금을 받아 조명, 와이어 전문가를 섭외했다. 차가 들어와야 해서 커다란 그린 스크린이 필요했는데, 수소문 끝에 국내에서 겨우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대여비가 너무 비싸서 하루 안에 우주 신을 전부 촬영해야 했다.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배우들이 우주 공간에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공부를 많이 했다더라. 우주선이 출발할 때 정광우 배우가 갑자기 기절하는 돌발 연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다 사전 조사에서 비롯된 거였다. (웃음)

-스텔라 자동차를 활용해 우주선 ‘인천스텔라’를 완성했다.

=우주선 디자인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현실적으로 제작비를 감안했을 때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동차밖에 답이 없더라. 자동차로 가기로 결정하니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현대 스텔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오래된 차라 구할 수 있을까 했는데 운좋게 올드카 마니아에게 차를 대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손이용 배우와 함께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때는 캐릭터 개발을 같이했다던데, 기동 캐릭터는 어땠나.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을 촬영할 즈음에 손이용 배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무척 힘들어해서 영화에서라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해서 원래 아들이 다중우주에서 아버지를 만난다는 설정이었고, 손이용 배우에게 아들 역을 맡기려 했다. 하지만 <오늘도 평화로운>을 찍고 시간이 5, 6년이 흘러버려서 손이용 배우에게 아버지 역을 맡기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말하자면 기동은 오롯이 손이용 배우에게서 출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규진 역의 강소연 배우는 과거 제자였다고.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계약직 교사를 하고 있다. 강소연 배우는 10여년쯤 전에 만난 제자다. 중학생 때는 굉장히 조용했던 친구로 기억하는데 알고 보니 배우를 한다는 거다. 자신의 단편영화도 몇편 보내줬다. 마침 규진 역의 배우를 찾던 차였고 영화를 보니 강소연 배우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캐스팅했다.

-인화여자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많은 신들을 촬영했다.

=전에 근무했던 곳이다. ASA의 내부 신은 대부분 학교에서 찍었다. ASA 부국장실은 교장실, 통신팀이 앉아 있던 곳은 교무실의 내 자리고, ASA 회의실은 실제 교사 회의실이다. 우주선이 출발하는 장소도 학교 운동장이다. 그때 팀원들을 배웅한 가족들도 인화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었다. (웃음)

-교사 생활과 영화 제작을 겸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청소년 대상으로 특강을 할 때 “영화감독은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몇몇 감독님들 덕에 직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짜 생계로 영화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업이 되면 너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한 애정으로 임하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영화를 하면 행복하다. 영화를 통해 얻는 풍족함이 있다. 경제적인 의미가 아니라 함께 사람들과 무언가를 만들고, 내가 만든 콘텐츠를 사람들과 함께 나눴을 때의 풍족함이다. 오늘도 학교에서 두 아이가 와서 자신들의 꿈이 영화감독이라고,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하더라. 너무 예뻐서 앉혀놓고 한참을 같이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꿈을 이미 실현하고 있다는 감사한 마음도 있다. 영화만 하고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진 않다.

-생각해둔 차기작이 있나.

=스포츠계의 응원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장고> 같은 서부극도 해보고 싶고, <어벤져스> 시리즈와 연계해 인류의 반을 날려버린 ‘타노스 현상’이 한국엔 어떤 영향을 줬을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 때문에 쉽지 않을 거다. (웃음) 앞의 네 작품 모두 평범하지 않고 장르도 달랐다. 하지만 강박은 갖지 않으려 한다. ‘백승기 작품은 특이하다’는 생각에 갇혀버리면 다음 스텝을 밟기 어려울 것 같다. 즐겁게 생각하며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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