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는 데본(브렌턴 스웨이츠)은 어느 날 일자리를 잃고 하나뿐인 형 닉(조엘 잭슨)과도 다툰 뒤 슬픔에 빠져 거리를 배회하다 사고를 당한다. 다음날, 낯선 집에서 눈을 뜬 데본은 그곳에서 루시(릴리 설리번)를 만난다. 데본은 자신과 달리 밝고 사랑스러운 루시에게 단번에 반하고, 두 사람은 꿈처럼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데본은 형에게 루시를 소개해주려 하지만 루시는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존재를 감춰버린다. 그저 환상이었을 뿐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데본은 루시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생생하게 되새기고, 마침내 그녀를 찾기 위한 무모하고도 씩씩한 여정에 나선다.
오스트레일리아 감독 루크 이브의 장편 데뷔작 <그녀가 사라졌다>는 범상한 로맨스영화와 결을 달리한다. 예컨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데본의 시점으로 그를 괴롭히는 환영과 환청을 적극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 그렇다. 달짝지근한 로맨스는 찰나일 뿐, 환영과 환청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불안감의 비중이 꽤 크다.
사랑하는 이를 찾아 나서는 여정 자체는 로맨스영화의 흔한 소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의 웃지 못할 우여곡절이 씁쓰름한 뒷맛을 느끼게 한다. 실패와 고난 끝에 에필로그처럼 덧붙여진 후반부 전개는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로맨스와 정신 질환, 로드무비와 가족애까지 두루 소화해낸 배우 브렌턴 스웨이츠의 매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