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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플레이어 6인, 코로나19 이후 1년, 한국영화계를 말하다
김성훈 배동미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1-02-22

여전히 안갯속, 그럼에도 길을 찾아야 한다

장원석, 이화배, 주희, 강효미, 조성진(왼쪽부터).

한국영화계에 코로나19가 불어닥친 지 1년이 지났다. 대구에 첫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2월 18일을 기점으로 한국영화계는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주말 극장 관객수 100만명은 더이상 볼 수 없는 숫자가 되었고, 대구발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지자 정부는 2월 23일 감염병 위기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했다. 2월 26일로 개봉일을 잡았던 <사냥의 시간>과 <기생충: 흑백판>은 개봉을 미뤄야만 했다. 이어 영화계에 들려온 소식은 신작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면서 한국영화계에 불어넣었던 활력은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그렇게 사그라졌다.

<씨네21>은 코로나19가 한국영화계를 강타한 지 1년이 된 지금, 충무로 플레이어들을 모아 현 상황을 진단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코로나19 이후 1년간 한국영화계는 어떻게 변했고,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논의했다. 대담에 참여한 강효미 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 회장과 김현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정책사업본부장, 이화배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이사,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 주희 엣나인필름 이사는 현재 충무로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고 홍보하며 정책을 만드는 최전선의 영화인들이다.

대담참석자

장원석

제작사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침입자> <사라진 시간>을 개봉시켰다.

이화배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이사. 추계예술대학교 영상비즈니스과 강사. 시네마서비스 배급팀을 거쳐 싸이더스 영화사업본부장을 지냈다. 영진위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희

엣나인필름 이사.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운영하면서 외화 수입배급과 한국영화 투자배급을 담당하고 있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 CGV에서 대외 커뮤니케이션, 대관, 법무, 사회공헌을 총괄하고 있다.

강효미

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KFMA) 회장. 마케팅사 퍼스트룩 대표.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봉한 <#살아있다> <오! 문희> <조제>의 홍보를 담당했다.

김현수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사업본부장. 영진위의 정책사업을 총괄하고 있으며, 영진위가 발족한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의 실무도 총괄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영진위 부산 본사에서 근무 중이라 사진 촬영에 참석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극장가를 강타한 지 1년이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피해 중 가장 주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코로나19 초기와 현재를 비교해 설명 부탁드린다.

강효미 가장 큰 문제는 신작 영화가 개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봉작 수가 평소보다 70~80% 감소했고, 매출도 자연히 같은 비율로 감소했다. 그로 인해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마케팅협회에 가입된 다른 회사 대부분이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다. 개봉 연기로 인한 미수금 문제도 크다. 코로나19 초기에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1년이 지나면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학습했다. 올해 들어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조성진 신작이 개봉하지 않으니 관객이 정말 많이 줄었다. 극장은 철저히 방역을 하고 현재까지 2차 감염자가 전무한데도, 극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지난주에 지난해 실적 결산을 발표했는데 영업적자만 4천억원에 육박했다. 지난 6~7년간의 영업 이익을 지난해에 전부 소실했다고 보면 된다.

장원석 지난해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침입자> <사라진 시간> 세편을 개봉했고 영화 <범죄도시2> <압구정 리포트>의 촬영을 진행했다. 지난해만 해도 어떻게든 영화를 개봉해보려고 시기를 봤었는데, 현재는 개봉을 준비 중인 다섯편 가운데 단 한편도 개봉 시기를 잡지 못했다. 이게 가장 큰 차이이자 문제다. 한국영화계의 영화 제작 편수도 평소 대비 30% 미만으로 줄었고 개봉작은 10%도 안된다. 준비하던 영화들도 대부분 일정이 미뤄지고 제작사의 판단도 보수적으로 변했다. 한국 영화산업 자체가 듣도 보도 못한 위기 상황에 처했다.

주희 지난 1년을 견뎠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견스럽지만,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극장 매출과 관객 모두 지지난해 대비 75%가량 줄었다. 영화계 전체가 코로나19의 타격을 크게 입었지만 독립예술영화관과 다양성영화를 수입하는 중소 수입배급사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 타격이 크게 와닿았다. 자본과 인력 등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 독립영화도 관객이 5천명 선에서 머물기 때문에 예전처럼 수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막막하지만 올해는 맞서 싸울 심정으로 견뎌보려 한다. 그나마 많은 관객이 재개봉작을 찾아주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

이화배 영화가 개봉을 못하니 사실 매출에 관해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투자배급사의 경우, 대기업은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중소기업은 상황이 좋지 않다. 때문에 1년~5년차 ‘영블러드’가 빠져나가고 대표 혼자 유지하는 회사가 너무 많아졌다. 이게 큰 문제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영상 비즈니스 업계의 취업문이 너무 좁아져서 학생들의 고민이 많다. 영화산업은 경력자만큼이나 젊은 인재들의 활약도 중요한 업계인데, 이들이 점점 빠져나가고 유입 인력도 지나치게 줄었다는 점이 큰 문제다.

김현수 지난해에 영진위와 정부가 그간 재난상황을 대비한 매뉴얼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 정부의 지원체계를 제대로 끌어오지 못했다는 반성도 했다. 해외 전망에 따르면 2024년 즈음엔 극장 매출이 일정 부분 회복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2019년 매출의 75%정도에 머무를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구조자체가 변화한 상황에서 영화 정책이라는 공공의 서비스를 어떻게 재설정해 제공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다.

-2020년 3차 추경에서 중소영화기업 금융지원정책이 최종 탈락됐다. 또 고용노동부가 지정하는 특별고용지원업종 8개 중에 영화는 여전히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영진위가 2020년 300억원가량의 예산을 들여 영화인들을 지원했고, 2021년에도 170억원 규모의 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를 포함해 영진위는 올해 영화계를 어떻게 지원할 계획인가.

김현수 올해도 지난해와 유사하게 지원금을 편성하려고 한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 기획전 지원’ 사업과 ‘온라인 뉴미디어 영상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진행하고, 그 밖에도 ‘영화관·영화촬영장 소독방역 지원’, ‘영화인 직업훈련 긴급 지원’,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기획개발 지원’ 등의 사업을 170억원 규모로 준비하고 있다. 영화계의 구조적인 변화를 고려해 예산 편성의 방향을 바꾸는 건 2022년도 예산 편성 때 고려할 것 같다.

영화 생태계 복원 위한 정부 지원 절실

-영화계에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지원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강효미 우선 마케팅 회사는 영화 홍보마케팅에서 발생하는 인건비를 회사가 받은 후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구조다. 경상비나 회사 유지비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 인건비로 소요된다. 중소기업,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진행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조업 등 다른 업계 기준에 맞춰 설계됐고 이러한 영화계의 특수성은 반영이 안됐다. 더불어 영화계에서도 프리랜서 창작자나 현장 스탭 뒤로 지원책 순위가 밀리다 보니 마케팅 업계가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 상당히 적다. 방금 영진위에서 언급한 170억원 예산에서도 우리가 지원받을 수 있는 건 없다. 마케팅 회사가 영세기업, 소기업이라는 시선으로 영진위가 접근하면, 고용노동부와 같은 타 부서의 지원과 중복돼서 결국 지원이 어렵게 된다는 정책적 한계가 있다. 영화의 완성은 관객이라고 하는데, 그 완성을 위해 고객을 유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마케팅 스탭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젊은 피의 유입도 필요하지만 연륜 있는 경력직의 존재도 중요하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버틴 사람들이 이탈하면 상황이 나아진다 해도 여기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또 이 상황을 본 젊은 세대는 과연 이 업계에 투신하려고 할까. 이런 점을 생각하면 현 상황에서 마케팅 전문 인력이 빠져나가는 건 큰 손실이다. 마케팅 스탭들의 고용을 안정화하고 경제적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조성진 현재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화 생태계의 복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거다. 영화가 영화관에서 개봉해야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또 거기서 생겨난 수익으로 또 다른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지금은 이런 순환이 동맥경화처럼 꽉 막혀 있다. 극장 3사가 개봉 촉진 사업을 진행하면서 신작 개봉을 유도하고 있지만 극장 입장에서 한계가 있다. 이 부분은 영진위가 같이 전략을 꾸려주길 바란다. 현재 개봉작을 영진위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으로 지원하는 등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영발기금이 1천억원 정도 있으니 외부에선 영화계가 자생적으로 해결할 힘이 있는 듯 보이고, 그래서 정부가 도외시하는 것 같다. 차라리 영발기금을 없애거나 현재의 영발기금을 소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김현수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영발기금을 없애거나, 영발기금을 유지한 상태에서 영발기금의 조성 방안을 달리하거나. 전자는 매년 국고 예산에서 지원을 받는 형태로 진행될 거고, 후자로 간다면 재원을 좀더 다양화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극장 매출은 줄어드는데 영진위 사업비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에 540억원가량의 입장권 부가금이 영발기금으로 징수됐는데 그해 영진위가 집행한 돈은 1천억원 정도다. 매년 500억원의 마이너스가 생긴다. 지금까진 적립된 자금이 있어 가능했는데, 현재 추세라면 올해 말이면 기금이 없어질 거다.

장원석 사실 1년 전과 지금 체감상 바뀐 게 하나도 없다. 2024년에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하는데, 그때까지 극장이 버틸 수 있을까. 극장이 영화업계의 주요 매출창구이니 극장을 좀더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정상화됐을 때 관객이 찾을 극장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목 끝까지 차 있다.

주희 장원석 대표 말에 절절히 공감한다. 예술영화관 운영 및 고용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의 증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출금융지원이 절실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극장의 파산을 막을 방법이라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특히 극장, 예술영화관 붕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너무 없다.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는 건 직원들의 결연한 각오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다들 그 희생을 감내해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회복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예술에 대한 지원이 왜 필수적인지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극장이 불안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사실 극장은 방역도 철저히 하고 2차 감염자가 나온 경우도 없다. 일본은 극장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펼쳤다고 한다. 멀티플렉스의 환기 시설을 통해 어떻게 가스가 안전하게 사라지는지 실험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불신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조성진 극장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극장뿐 아니라 영화인들 또한 함께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

-영진위와 <씨네21>, 그리고 영화인들이 차후 그런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제작자들이 드라마 업계로 진출하고 숏폼을 제작하는 등 콘텐츠 산업이 다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상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이화배 사실 웹드라마와 같은 숏폼 콘텐츠의 성공 사례를 확인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간 영화와 드라마 업계의 투자와 인력의 교류도 있어왔고,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상황이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트렌드는 아니다. 현 상황의 혼란스러움은 오히려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막연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거다. OTT 플랫폼이 영화의 주요 유통 플랫폼 중 가장 복잡한 건 사실이다. 콘텐츠 종류도 많고, 과금 방식도 다양하다. 실제로 OTT 플랫폼에 판매해본 사업자와 경험이 없는 사업자간의 정보 격차도 존재한다. 지난해에 그런 혼돈을 겪었으니, 올해는 영화계가 각자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함께 나누고 OTT 플랫폼이라는 창구에서 영화가 어떤 경쟁력을 가졌는지 세심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과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성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진 OTT 플랫폼과 극장이 대체제의 관계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다. 극장에 오는 관객이 OTT 플랫폼도 많이 이용하는 식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급변했다.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OTT 플랫폼과 극장이 공존할 수 있는 룰과 시스템이 잡혀가지 않을까 싶다. CGV도 현재 왓챠와 업무협약을 맺은 상태다. 변화하는 구조 속에서 극장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새로운 룰이 형성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강효미 코로나19 이후로 밀레니얼 Z세대들이 OTT 플랫폼 시리즈나 숏폼 콘텐츠 등 정말 다양한 콘텐츠를 접했다. 영화 업계 사람들이 다른 분야로 진출하면서 다수의 양질의 콘텐츠도 생성됐다. 때문에 눈이 높아지고 OTT 플랫폼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관객을 극장으로 다시 오게 하려면 정말 높은 퀄리티의 작품들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없어지면 안전한 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뿐만 아니라, 이런 부분들이 영향이 많이 끼칠 거라 생각한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경쟁작뿐만 아니라 OTT 플랫폼 콘텐츠들과 경쟁해야 해서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거다. 이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다 함께 고민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장원석 영화를 시작한 지 올해로 26년 됐다.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정반합식으로, 대체로 좋게 흘러왔다. 하지만 지금은 재난 상황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마 자연스럽게 OTT 플랫폼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드라마로 진출하기도 했을 거다. 지금은 사실 살기 위해 드라마를 시작한다. 이 분야에도 전문가들이 있지 않나. 20년 넘게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들다가 다른 호흡의 콘텐츠를 제작하려니 힘들다. 하지만 현재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다. 브랜드 제고라든지 문화사업이 갖고 있는 간접유발효과가 크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 국가가 한국 영화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해줬으면 한다. 그런 게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다.

2021년, 다시 극장으로

이번 대담은 온라인으로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예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영화계의 불합리한 지점들이 코로나19로 극대화됐다. 극장과 창작자간의 부율 문제와 홍보마케팅 업체가 겪는 정산 방식의 문제점 등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영화계 내부에서 자정적으로 바꿔나가야 할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강효미 우리는 개봉일이 밀려 계약이 길어져도 추가 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 가령 개봉이 세번 연기가 되면서 같은 업무를 세번 해도 우리 계약은 개봉 때까지로 되어 있으니, 그것에 대한 추가 비용을 받을 명분이나 근거가 없는 거다. 천재지변으로 촬영 회차가 늘어났을 때 현장에서도 무보수로 찍는 스탭은 없지 않나. 그러나 마케팅 업계에서는 그런 관행이 여전히 통용된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마케팅사 협회에서도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논의 중이다. 우리가 계약하는 투자배급사, 수입사 파트너들에게 일방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걸 요구할 수 없고, 당연히 서로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함께 조율할 수 있는 기관들, 영진위 혹은 제3의 기관과 함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 마케팅이 워낙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다보니 전문성을 담보하는 영역임에도 내부에서 쉽게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이란 인식이 존재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건, 코로나19 이후로 영화계가 이렇게 힘들고, 이런 시스템에서 움직였다는 이야기에 다들 귀 기울이고 공감해줬다는 것이다. 이번을 계기로 이런 마케팅 업계의 고충도 함께 바꿔나갈 수 있길 바란다.

김현수 그동안 마케팅 업계가 불공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시나리오표준계약서, 상영표준계약서, 근로표준계약서 등이 2010년대 초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표준계약서가 무조건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공정센터에서도 영화계의 불공정한 관행이 영화 업계의 생존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게끔 준비 중이다. 또한 대기업 생태계와 독립경제, 중소기업 생태계가 함께 존재할 수 있고, 단순히 재정을 분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생태계가 잘 순환할 수 있게 돕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위원회 사업 면에서도 공모지원 위주의 사업을 넘어 소기업의 생태계가 자체적인 완성도를 가질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조성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수십개의 영화계 단체들이 여러 차례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상황을 보며 영화계가 그동안 굉장히 파편화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주체가 각자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내놓게 됐다는 긍정적인 변화다. 나도 코로나19 상황을 맞아 극장의 입장을 정말 많이 이야기했다. 극장의 상황이 워낙 안 좋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영화계 내에서 극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커졌다. 여러모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와는 별개로, 장기적으로 영화계의 목소리를 모으는 데 좋은 시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장원석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긍정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 사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가 더 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나 다른 이들이 왜 영화계가 힘들다고 인식하지 않는지 생각해봤는데, 극장도 계속 열려 있고 일부 영화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극장 체인을 가지고 있는 CGV가 지난해 약 3천억원대 영업적자가 났다는 건 엄청난 손실이다. 이런 부분에서 이 대담을 읽는 독자들이 영화계가 정말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는 인식을 가져주면 좋겠다.

주희 지금 이야기들을 쭉 들어보니 지난해만큼 우리가 약자였던 때도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회의를 많이 한 적도, 참석한 적도 처음이다. 위기는 여전하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힘이 되어줬던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영상 콘텐츠와 소비 환경이 빠르게 변화했다. 이에 익숙해진 관객이 과연 언제 극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싶다. 올해는 정말 이판사판이란 심정으로 맞설 예정이다. 예술영화관도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도 고수해야 한다. 올해 초에 ‘영화관주의! 2021년, 다시 영화관’을 캐치프레이즈로 지었다. 우리가 영화관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올해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려 한다.

이화배 현재 포스트 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에 배급유통 분야 전문가로 합류해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영화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며 이런 직능단체가 왜 필요한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개인의 비즈니스도 중요하지만, 큰 틀에서 잘되려면 이런 단체를 잘 구성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더라. 영화 업계가 자정적인 노력도 많이 기울이겠지만 배급, 마케팅 등 분야별로 협회를 잘 구성하고, 이런 협회의 활발한 활동을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고 그로 인해 영화계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관심과 수준이 많이 올라갈 수 있길 바란다. 또 이를 계기로 불안정한 영화산업이 안정화되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영진위에서 지원책을 언급할 때 영화산업 안에서 상대적으로 더 어렵고 더 효용이 큰 곳이 어딘지 살피는 건 상시의 접근법인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는 영발기금을 올해 다 투입을 한다고 해도 상황이 어렵다. 현재 위급 상황이고, 영진위가 영화산업을 대표하는 정책기관이니 영화산업 안을 들여다보는 노력 못지않게 바깥을 상대하는 플레이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노력을 활발하게 해주면 당장 내 차례가 오지 않더라도, 버티다보면 장기적으로 큰 이득이 돌아올 거라는 기대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조성진 엔터테인먼트, 영화산업이 생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인식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자꾸 멀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문화산업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고 영화산업이 후방 산업에 미치는 효과 또한 어마어마하다. 영화산업 자체가 대한민국을 이끌 차세대 산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이 빨리 바뀌길 희망하고, 우리 영화산업 내의 각 주체들도 잘 살아남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영화산업을 과감하게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큰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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