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버블에 둘러싸여 산다. 최근 ‘버블’이라는 단어는 특히나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상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현실불감증을 지적하는 용어로 자주 쓰인다. <리얼리티 버블>은 제목의 번역어인 ‘현실 거품’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는 심리적 거품.” 캐나다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지야 통은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저기 바깥’의 힘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한다고 한다. 그래야 우리는 오늘 맡은 일을 해낼 수 있다. 모든 변수에 대처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현실 왜곡. 그것이 터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우리를 보호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안정적인 세계 인식이라도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 <리얼리티 버블>은 과학적 근거를 들어 사람들의 맹점을 시야에 드러나게 한다.
1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인간의 맹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다루고, 2부 ‘우리 삶을 떠받치는 것들’은 인공수정을 위한 정액 채취와 낙농업의 정액 비즈니스, 에너지, 쓰레기를 다룬 뒤 3부 ‘우리를 통제하는 것들’로 나아간다. 1부와 2부를 합친 분량에 육박하는 3부는 앞에서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장선에서 이제 인간이 관리 대상이 된 현실을 그렸다.
그 첫 번째는 시계 이야기다. 인간을 관리하는 척도가 되는 시간, 그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 1891년 일렉트릭 시그널 시계 회사의 공장용 시계 안내 책자 문구를 보자. “관리자와 감독에게 자신의 규율을 보이는 곳 너머로 확장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합니다.” 시간에 대한 논의는 기후로 이어진다. 시간을 다루었으니 이번에는 공간에 대해 말할 차례다. 그 시작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측정 단위가 정해진 방식들이지만 논의는 점점 큰 공간과 시간을 향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쉼 없이 튀어나오지만 자연, 생명에 대한 논의와 소비주의, 자존감 대한 비판까지 고루 다루느라 후반부로 갈수록 느슨하고 챕터간의 연결이 헐거운 인상을 주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찰이 빛나는 대목들은 기억하도록 하자. 일회용 플라스틱이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건에 ‘철’이라는 것이 생기고 소비자들은 ‘유행’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생산성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일하듯) 부지런히 소비한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을 소진할 때까지. 세상을 보는 법을 바꾸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의 말처럼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