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의 라라(빅터 폴스터)는 무용 학교에 다니며 발레리나를 꿈꾼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무용이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동기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여섯살 남동생 밀로(올리버 보다르)를 돌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빠 마티아스(아리 보르탈테르)는 그런 라라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라라에겐 특별한 사연이 있다. 소년의 몸을 지닌 라라는 소녀가 되기 위해 호르몬 치료와 심리 상담을 받는 중이다. 가족과 학교, 의료진의 도움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지만 거울 속 몸을 들여다볼 때면 라라에겐 고통과 혼돈이 밀려온다. “네가 얼마나 용감한지 모르는구나. 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어”라는 아빠의 말에 라라는 “본보기 되는 거 싫어요. 여자가 되고 싶을 뿐이죠”라고 답한다.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고단한 무용 연습이 이어지던 어느 날, 라라는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걸>은 트랜스젠더 청소년 라라의 몸과 마음을 안팎으로 파고드는 영화다. 아름다운 발레 동작 뒤에 숨겨진 피투성이 토슈즈처럼, 겉보기에 차분하고 성숙해 보이는 라라의 내면은 불안감과 답답함으로 가득하다. 이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는 라라가 여러 지점에서 ‘경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라라는 소년에서 소녀가 되기 위한 의료적 과정을 밟는 중이고, 무용수로서 재능을 지녔지만 무용 학교에 완전히 적응하기 위해선 부족한 것이 많다. 라라는 아직 어린 딸이자 누나이지만 이따금 어른스럽게 엄마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따금 마주치는 이웃집 소년에게 갖는 호기심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 중인 라라는 급격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는다.
영화는 과도기에 서 있는 라라의 초조감을 묵묵히 그려낸다. 무용학교 선생이 여학생들에게 라라가 여자 탈의실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지 묻기 위해 라라에게 잠시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할 때 라라의 마음은 흔들린다. 이후 병원에서 성전환 수술 방법에 관한 설명을 듣던 날, 긴장하고 걱정하는 아빠와 달리 라라는 하루빨리 수술하고 싶어 한다. 내적 동요와 혼란이 심해질수록 수술에 대한 라라의 열망은 더욱 강해진다.
라라는 의료진에 호르몬제 투여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라라가 느끼는 변화의 속도는 라라가 원하는 정도에 비해 턱없이 느리다. 무용도 마찬가지다. 발레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라라는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단련해야 한다. 경쟁에 대한 압박감은 라라를 애타게 만든다. 그러나 무용 코치의 말처럼 뒤늦게 무용을 시작한 라라의 발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되는 발레 연습 장면은 라라의 절박감과 절실함을 강조한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열망, 여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 두개의 열망이 라라의 신체를 중심으로 하나의 문제로 엮이며 라라는 자기 파괴적 질주에 몸을 내던지게 된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등에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을 만큼 영화의 후반부 전개와 결말은 논쟁적 화두를 던진다.
벨기에의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의 장편 데뷔작인 <걸>은 지난 2018년 제71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아 황금카메라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골든글로브와 세자르국제영화제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감독과 영화 못지않게 주인공 라라 역을 맡은 빅터 폴스터도 주목받았는데, 그는 왕립 발레 학교에 다니는 남성 무용수로 다른 역할의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연기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16살 라라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강렬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3개월간의 훈련을 통해 여성 무용수로서의 퍼포먼스를 표현해낸 폴스터는 이 영화를 통해 여러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벨기에 배우 아리 보르탈테르 또한 라라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아빠 마티아스 역을 안정적으로 연기했다.
CHECK POINT
영감을 준 인물
오래전 루카스 돈트 감독은 신문에서 트랜스젠더 무용수 노라 몽세쿠흐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라 몽세쿠흐의 열정과 용기에 감명받은 돈트 감독은 이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몽세쿠흐는 영화 제작에 여러 도움을 주었으며, 이후 영화가 비판받을 때 옹호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빅터 폴스터
2002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남성 무용수 빅터 폴스터는 <걸>의 안무가인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와 함께해보고 싶은 마음에 조연 무용수 오디션에 참여했다가 감독의 눈에 띄어 주인공 라라 역에 캐스팅되었다. 그는 <걸>에서 보여준 연기로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연기상을 수상했다.
아빠와 딸
감독이 라라 역 배우를 캐스팅하며 염두에 둔 것 중 하나가 아빠 역 배우와의 케미스트리였을 만큼 라라와 아빠의 관계는 <걸>의 중심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빅터 폴스터와 아리 보르탈테르는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다가도, 이따금 의견 차이로 다투기도 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애틋한 부녀 관계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