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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나’에서 시작해 세계의 생존을 도모하는 이상하고 뭉클한 여정
김소미 2020-12-09

“접속이 끊겼습니다.” 박윤진 감독에게 소개받은 길드원들과 인터뷰를 앞둔 어느 주말, <일랜시아>를 내려받아 캐릭터 설정에 돌입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일랜시아>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또 다른 90년대생 이길보라 감독(<기억의 전쟁> <반짝이는 박수소리>)이 넌지시 건넨 추천에 따라 상인, 모험가, 전사의 성향 중 상인을 선택하고 막 캐릭터를 결정한 순간에 나는 화면 밖으로 맥없이 튕겨져나갔다. 오류 없이 게임을 계속하려면 배경음악을 꺼야 한다는 오랜 유저의 무용담이 그제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니 <일랜시아>는 현재 윈도 XP 이상에선 정상적으로 구동되지 않고 맥에서는 실행조차 불가능하며, 게임 내 기본 배경음악은 자꾸만 충돌을 일으켜 능숙한 유저는 알아서 개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실정이란다. 사실상 대부분의 유저가 이용하는 편의적인 매크로는 물론, 다른 유저의 게임을 종료시키는 악성 매크로도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아직 도메인이 살아 있는 게 신기해 보이는 고즈넉한 홈페이지 디자인은 또 어떤가. 10여년 이상 운영진이 관리를 손놓은 무법천지 <일랜시아>는 단언컨대 2020년의 게임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하위권의 선택지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곳을 매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리고 거기서 무려 ‘행복’을 느낀다고? <내언니전지현과 나>에는 16년차 <일랜시아> ‘고인물’인 박윤진 감독이 동료 유저들의 목소리를 모아 종국에는 <일랜시아>의 변화를 위해 넥슨의 문을 두드리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 끝에 넥슨은 올해 12년 만에 최신 업데이트를 감행하고 여름 이벤트를 열었으며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는 신규 길드원 모집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나’에서 시작해 세계의 생존을 도모하는 이 이상하고 뭉클한 여정 속에는 무력과 희망을 놓고 곰곰이 고민하는 지금의 청년 세대들, 90년대생이 있었다.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

1990년대 후반 초등학생들을 컴퓨터 앞으로 불러모은 건 당시 막 출시되기 시작했던 MMORPG게임이었다. 두툼한 모니터 너머의 세상에서 각자 자기 캐릭터를 고르고 능력치를 키우며 모르는 사람들과 뒤섞이다 보면 오후 시간이 금방 갔다.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호기롭게 1997년의 IMF 금융위기 소식으로 첫문을 열듯이, 1999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 부도의 날 2년 후’였다. 경제적 내상을 입은 가정의 아이들은 줄어든 집의 평수만큼 게임 속에서 더 화려한 집을 짓거나 수학여행 때 입을 수 없었던 새옷을 입었고, 그보다 형편이 나은 아이들은 사교육의 피로를 게임 속 친목으로 풀었다. 누구든 그곳에선 숨을 쉬었다.

이제 서른 전후의 나이가 된 IMF 키즈들은 얼떨결에 <90년생이 온다>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빛바랜 유년만큼 RPG게임의 위용 또한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이 과정에서 <일랜시아>가 다시금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 잡은 건 대중문화의 레트로 회귀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른 ‘기억 조작’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상당수의 <일랜시아> 유저들은 최신 그래픽 게임에 비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래픽, 듣기 좋은 오르골 배경음악을 떠올리며 <일랜시아>로 돌아온다. 유저들은 “어렸을 때의 앨범을 보는 기분으로 게임을 한다”거나 “<일랜시아>에선 모든 것이 안심된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일랜시아>는 끊임없이 다음 스테이지로 전진하거나 폭력적으로 싸워야 하는 경쟁적 게임이 아니다. 무언가를 애써 좇을 필요 없이 유유히 맵을 돌아다니면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안온하고 순수했던 나를 만난다. 시쳇말로 ‘추억 보정’(지나간 시기를 더 아름답게 미화해서 기억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행복에 기꺼이 의지하는 이유는, <일랜시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맺음 덕분이다. 미화되고 손상된 기억도, 여럿과 공유되는 순간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지금 <일랜시아>를 즐기는 2030의 주목적은 바로 휴식과 연대에 있다.

게임은 자기 효용감의 출처가 될 수 있을까

대개 초등학생 때 게임을 시작해 성인이 되어 다시 복귀한 이력을 가진 <일랜시아> 유저들은 그 긴 시간의 간극 자체를 <일랜시아>의 콘텐츠로 여긴다. 길드명 마님은돌쇠만쌀줘는 어린 시절 저마다 산발적으로 활동하던 유저들이 성인이 되어 길드를 창설했다는 데 의미를 담아 “성인다운 정체성”을 내세운 작명이다. 여기에는 작은 성취감이 깃들어 있다. 순수했지만 한편으로는 갇혀 있던 유년에서 직접 길드를 꾸리고 오프라인 모임을 주도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자유감, 그 자발성이 <일랜시아>의 오프라인 모임에 활기를 불어넣고 <내언니전지현과 나>라는 기록으로 이끌었다.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이 취미 모임이나 동호회를 갖는 건 익숙한 풍경이지만 <일랜시아>의 길드는 비슷한 세대가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고, 나아가 고인물들의 정서까지 나눈다는 점에서 순수를 자부한다. 그들은 <일랜시아>를 ‘채팅시아’라고도 부른다.

다큐 속 인물들이 자주 언급하는 것 중에는 직업과 어빌리티(캐릭터 능력치)가 있다. 현실과 비슷한 직업군을 보유한 <일랜시아> 세계에서 유저들은 원한다면 언제든 자기계발의 신화에 동참할 수 있다. 현실과 다른 점은 노력한 만큼 정확히 보상받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모든 성장이 정확한 수치로 선명히 가시화된다.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추어 있는 <일랜시아>의 특징은 노스탤지어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판타지도 쉽게 충족시킨다. 시간과 공간은 영원한 채로, 나는 언제든 그 속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감각은 얼마나 달콤한가. 그래서 누군가는 <일랜시아>를 성취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벗어나려 했던 도피의 경험으로, 누군가는 가능성을 배우는 긍정적 경험으로 회고한다. 물론 <일랜시아>가 표면적으로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것 또한 사실이다. 자잘한 버그를 고쳐주던 손길마저 끊긴 채 방치된 게임에서 매크로가 판치는 사정은 당연한 수순. 초보 단계를 벗어나면 매크로 없이는 캐릭터를 키울 수 없는 지경에까지 다다른 풍경 앞에서 누군가는 실망한 채 게임을 떠나고, 누군가는 “내가 자고 있을 때나 회사 가서 일하고 있을 때나 자동적으로 키워지고 있는 캐릭터”에 또 다른 재미를 붙인다.

게임 속의 나, 다큐멘터리 속의 나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제약 없이 펼쳐진 <일랜시아>의 맵을 탐험하듯 조금은 느긋하게 배회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현실 도피처로 삼기엔 <일랜시아> 자체가 이미 망가진 세계이듯, 감독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스케치는 애초부터 단정한 구조로 귀결되기 어려운 주제를 품고 있다. IMF 외환위기와 함께 온라인 자아를 키우기 시작한 세대의 추억과 정서, 현실에서는 무력감을 느끼는 2030의 현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커뮤니티의 가치, 그리고 그들을 추진력 삼아 넥슨을 직접 찾아간 액티비즘적 결말까지. 영화는 그야말로 내언니전지현을 데리고 종횡무진한다. 이 복잡하고 산발적인 현실의 좌표 탐험 속에서 줄곧 주체로 기능하는 건 한번도 인터뷰의 당사자가 되지 않는 박윤진 감독 자신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독의 게임 캐릭터를 통해, 감독 주변인들의 대답을 통해 내언니전지현과 박윤진을 모두 헤아려보는 데 얼마간 성공한 것 같다. 유년기 내내 게임 속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했던 감독은 이제 다큐멘터리 안에 자신을 담았고, 자아를 투영하고 대리할 대상을 끊임없이 제시함으로써 바깥 세계와 소통하는 데 성공한다. 어쩌면 <내언니전지현과 나>에 담긴 진정한 90년대생의 초상이란, 모니터와 스크린을 거울 삼아 스스로를 확인하는 적극적 자기 반영의 움직임에 있을지 모른다. 그 속에서만큼은 누구도 결코 무력할 새가 없다.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인디다큐페스티발, 인디포럼 등에서 반향을 일으킨 후 <일랜시아>에 복귀한 사람들(박윤진 감독 제공).

정해진 콘텐츠가 없는 게임 세계 안에서 갖가지 유희를 계발한 길드원들은 <일랜시아> 속에서 방탈출 게임이나 <도전! 골든벨> 따위를 흉내내며 논다. 그중 가장 기이한 풍경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퍼포먼스다. 길드원들이 모여 다 같이 차례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저마다 다른 무인도로 뿔뿔이 흩어지는데, 이 행사를 거행하기 전 길드원들은 낭떠러지 앞에 서서 유언을 남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미드소마>를 떠올리고 약간의 섬뜩함을 느꼈다. 청년과 여성의 자살률이 비극적인 고공 행진을 이어간 올해의 사정과 겹쳐, 게임에서 그 충동을 대신 해소하는 퍼포먼스처럼 보였던 탓이다.

지금은 길드의 신고식으로 자리 잡은 이 미드소마적 행사에 대해 유저들이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면서 나의 섣부른 근심은 금세 해소됐다. 새 길드원이 가입하면 박윤진 감독은 앞으로 강하게 살아남으라는 의미에서 아예 그들의 등을 직접 절벽 밖으로 떠밀어버린다. 그다음 자신도 뛰어내려 같은 무인도 맵에서 만난 길드원들에게 푸짐한 경품을 준단다. 유언과 추락, 그 후의 신나는 경품대잔치라니. 이 황당무계한 유희가 존재하는 한 <일랜시아>의 사람들은 끝내 유쾌함을 잃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품은 채, 가장 기초적인 광물 캐기조차 힘겨워했던 <일랜시아> 초보 기자는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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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호우주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