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트 히스토리> 속 블랑슈 가르댕(왼쪽)과 뱅상 라코스트(오른쪽).
코로나19로 3개월 넘게 문을 닫았던 프랑스 극장. 대대적이지만 조심스러웠던 지난 6월 22일 재개관 이후 7월 말 기준 관객 수가 지난해 비교 70%나 하락했고,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12개의 극장이 문을 닫았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일주일에 14~15편 정도의 작품이 개봉하는데, 최근 개봉 작품이 귀해진 전례 없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극장 측에서는 마티외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1995) 복원 버전을 전국 개봉하는 등 고전영화 상영 카드를 꺼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작품을 찾는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다. 계속 개봉을 미루던 디즈니사의 <뮬란>마저 자사 OTT에서 공개하기로 전략을 바꾸면서, 지난 8월 26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 극장가에 관객을 불러들여 어려운 극장을 구원해낼 ‘메시아적’ 작품이 될 것이라는 평이 나왔다. 자국 영화 점유율 40%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하던 지난해 상황과 비교하자면 정말 자존심 상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거대 블록버스터영화 <테넷>과 같은 날에 개봉한 저예산 코미디영화 <딜리트 히스토리>가 눈길을 끈다. <테넷>의 뒤를 이어 프랑스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는 <딜리트 히스토리>는 불법유출된 섹스 비디오 피해자 마리(블랑슈 가르댕),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딸의 영상이 SNS상에 퍼져 고민 중인 베르트랑(드니 포달리데스), 그리고 승객들에게 ‘좋아요’ 평을 받지 못해 격분하는 우버 기사 크리스틴(코린 마시에로)이 거대 인터넷 기업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와 맞짱 뜨기 위해 여행길에 오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드무비다. <딜리트 히스토리>의 관객 대부분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웃을 각오를 하고 극장을 찾는데, 이유는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여배우 블랑슈 가르댕 때문이다.
2006년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해온 가르댕은 2018년 여성 최초로 몰리에르 유머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같은 상을 연이어 받으며 명실공히 코미디언으로서 자리를 굳혔다. 투어 때마다 매진인 그의 스탠드업 코미디쇼는 2019년 300개 극장에서 동시에 실시간 상영되기도 했다. 이때 9만2천명의 관객이 몰려들어 전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가르댕은 2011년부터 장편영화에 크고 작은 조연으로 출연해왔는데, 올해는 영화 <관종의 세계>에서 신경질적인 주부 유튜버 스테파니 역을, <#아이엠히어>에서 눈치 없는 식당 매니저 수잔 역을, <딜리트 히스토리>에서는 섹스 비디오 공개 협박을 받는 마리 역을 맡았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브루노 뒤몽 감독의 신작 <온 어 하프 클리어 모닝>에서는 레아 세이두와 맞대결을 펼치는 비중 있는 역을 소화했다. 그간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쇼의 원고를 직접 써온 그는 최근 직접 연출할 장편영화의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다. 일간지 <르피가로>의 기자 나탈리 시몬은 이런 그의 활약을 주목해 <블랑슈 가르댕의 비밀>이라는 책을 집필해서 <딜리트 히스토리>의 개봉과 함께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