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영화산업이 멈췄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할리우드도, 중국도, 유럽도, 아시아도 제작을 전면 중단했고, 극장 문을 닫았다.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CJ CGV는 지난 3월28일부터 상영관 35개의 문을 닫았다. 이것은 전국 직영 극장 116개 중에서 30%에 해당되는 숫자다. 메가박스는 총 44개 직영점 중에서 10개 지점은 4월 한달동안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위탁점 58개 중에서 상영관 9개가 이미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극장뿐만 아니라 촬영 현장 또한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예방과 방역을 철저하게 하는데도 여전히 많은 스탭들이 코로나19의 위험에 노출되어 불안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소 섭외 및 촬영 협조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영화계는 지난 3월 25일 코로나대책영화인연대회의를 만들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냈다. <씨네21>은 영화계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듣고, 정부에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감독, 제작, 프로듀서, 영화수입, 배급, 극장 등 창작과 배급을 아우르는 영화산업의 여러 구성원들과 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관계자를 한자리에 모았다.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정상진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회장, 신연식 한국영화감독조합 이사, 안신영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 김혜준 영진위 공정환경조성센터장이 그들이다. 전무후무한 사태를 겪고 있는 영화인들은“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요청했고, 대담이 끝난 이틀 뒤인 4월 1일 오전, 기획재정부는 “영화발전기금 부과금을 감면하고, 개봉 취소작에 한해 마케팅비를 지원하겠다”고 긴급 발표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매출이 급감한 영화 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영화관람료에 포함된 영화발전기금부과금을 2월부터 소급하여 감면하고, 개봉이 연기·취소된 작품의 마케팅 지원(20편), 단기적 실업 상태에 처한 영화인 대상 직업훈련수당 지원(400명) 등도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담 참석자
안신영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지난해 <악인전>과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을 제작했고, 올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도터>(가제), <클로즈 투 유>(가제) 등의 개봉을 준비 중이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광해, 왕이 된 남자>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했고, 얼마 전 <자백>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상진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회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집행위원장으로,독립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과 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을 운영하고 있다.
신연식 한국영화감독조합 이사
<로마서 8:37> <내 노래를 틀어줘> <프랑스 영화처럼> <여자, 남자> <조류인간> <배우는 배우다> 등을 연출했고, <동주>를 제작했다.
신연식 한국영화감독조합 이사,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안신영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 김헤준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정상진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회장(왼쪽부터).
-영화계 분야별로 피해 상황이 어떤지 듣고 싶은데, 일단 극장은 피해가 얼마나 큰가.
=조성진_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가기 전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1월 말 확진자가 CGV성신여대입구점에 처음 다녀가면서부터 방역을 하고 3일 정도 문을 닫았다. 그게 첫 사례다. 처음에는 관객을 얼마나 받아야하는지 결정을 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대구 지역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2월이 되면서 관객이 지난해 대비 85% 정도 줄었다. 극장은 기본적으로 임대료, 인건비 등 고정 운영비가 높게 책정된다.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영화 티켓 수입과 지출의 밸런스를 맞춰 운영하는데 지금은 수입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CGV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8% 감소했고, 극장당 700억, 800억원 적자 상태다.
-CJ 그룹 내부에선 CGV가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조성진_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6개월 정도 운영한다고 해도 손해액이 2천억원 이상이다. 버틸 수 없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손실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대구 지역의 상영관은 진작에 닫았고 지난주 대구 외 지역 CGV 상영관의 35개 지점의 문을 닫았다. 최소한의 운영비도 안 나온다. 상영관 모두 닫는 편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모든 영화가 올스톱되기 때문에 그 상황만은 피하기 위해 우선 35개관만 닫았다.
=정상진_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급감하는 관객을 감당할 수 없어 상당수가 휴관을 선택했다. 부산 영화의전당, 인천 영화공간주안,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 등 정부가 지원하거나 운영하는 극장들이 문을 닫았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보다는 피해액규모가 작지만 작은 영화관들은 그조차도 감당할 수 없다. 매년 2, 3월은 12,1월 성수기를 피해 예술영화가 개봉하는 시기다. 할리우드영화나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에 비해 부담이 크진 않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관객의 영화 관람 형태가 바뀔 거라는 두려움이 크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에 소속된 수입사 14개가 ‘영화로운 일상을 위한 신작展’을 함께 진행해 신작 13편을 배급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래서다. 신작전을 여는 게 정부가 권고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반하는 움직임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건 생존권과 관련 있다. 이 신작전이 언제까지 갈 수 있는지 확답은 못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제작 현장 모두 멈췄다. 신작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있어 연락이 잘되지 않아 상영 소스(DCP)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생긴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기 전에는 한국 극장에서 당분간 신작을 보지 못할수도 있다.
영화산업이 정부 지원사업장에 지정되어야
-중국, 할리우드, 유럽 모두 촬영 현장이 멈춘 반면, 한국은 아직 촬영을 진행하는 영화가 많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에 속한 프로듀서들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제작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최정화_ 제작 현장을 멈추려야 멈출 수가 없다. 제작비 손실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늘어나는 제작비를 감당하거나 책임지기 힘든 상황이다. 제작사가 이 책임을 모두 떠안을 수 없다. 그들은 촬영일정을 돌려막기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촬영 현장은 자체적으로 방역에 힘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일을 하는 스탭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현장을 찾아가는 사람 입장에서도 불안한데, 일이기에 또 안 갈 수가 없다. 정부를 포함해 누군가가 보상해줄 테니 촬영을 멈추라고 하면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급여를 주지 못하면 피해가 고스란히 스탭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영화산업이 여행업, 관광숙박업, 관광운송업, 공연업 4개 업종과 함께 정부 지원사업장에 지정됐으면 좋겠다. 얼마 전 한 조합원으로부터 민원 전화가 왔다. 3월 27일 정부가 발표한 ‘소상공인 금융지원 신속집행’(정부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신용등급 1~3등급 소상공인에게 연 1.5% 금리로 7천만원까지 대출해주는 긴급 대책.-편집자) 방안에 따라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갔는데 영화업은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고 했다. 고용안전긴급지원금은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휴업수당의 70~90%를 지원하는 방식이라 영화산업 또한 접근이 가능한 지원 방안이지만, 대출은 다른 문제다. 영화인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장원석_ 제작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포함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모두 엄청난 피해를 봤다. 최근 넷플릭스로 간 <사냥의 시간>은 홍보마케팅비용만 무려 20억원 이상을 썼고 극장에서 개봉하는 건 정부가 권고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반하는 행위이다.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문제인지 모르겠다. 올해 해외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하는 영화들도 피해가 극심하다. 영화는 매일 돈이 나가는 업종이다. 계약된 연출·제작부가 무급휴직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촬영이 진행되는 영화는 어떻게든 끝내야 하며, 아직 촬영조차 시작하지 못한 영화들은 모두 미뤄지고 있다. 메인 투자·배급사들도 극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정산받아야 숨을 쉴 수 있는데 극장이 현재 힘든 상황이라 출금이 어렵다고 한다. 이게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게 진짜 문제다. 코로나19 사태 초반에는 자영업자나 여행산업 종사자 등 이 사태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걱정했지만 정신차려보니 영화계도 정말 심각하더라.
=원동연_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겪게 될 변화가 가장 큰 걱정이다. 지금 영화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건 극장 문제다. 극장 대부분 대기업이니 알아서 하라는 눈초리가 강한데 이 프레임으로 현재 피해 상황을 바라보면 영화산업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매출의 70, 80%가 극장에 의존하는 산업 상황에서 극장이 이제껏 일어난 적 없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본 또한 영화산업의 리스크가 크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한시적인 면세 등 정부가 극장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 산업의 근간이 무너지면 미래는 없다.
=신연식_ 감독조합 이사진 모두 현재 촬영 중인데 관공서로부터 촬영 협조를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가장 힘든 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작품 대부분 캐스팅과 투자가 이루어졌고 6월에 촬영을 시작할 계획인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지만 감독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극장에 비하면 작다고 본다. 극장이 겪는 피해가 큰 것 같다.
-영진위는 지난 3월 24일 영화계의 피해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코로나19전담대응TF팀을 신설했는데.
=김혜준_ 코로나19 사태는 선제적인 대응이 어렵다. 아무리 적극적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고 해도 뒤쫓아갈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영진위는 지난 3월 27일 비상대응체제로 돌입했고, 전방위적인 대책 방안을 강구하고있다. 정부와의 협의를 남겨두고 있어 확정되진 않았지만 1단계로 최대한의 지원예산을 마련하려고 한다. 기획재정부의 승인이 남아 있지만 어렵다거나 안된다는 얘기는 나오진 않을 것이다. 이후 2단계, 3단계 조치를 계속취하고 있다. 영화계의 요구사항을 정부에 전달하는 영진위의 역할을 나름대로 하고 있고, 사각지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지 챙기는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