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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맨> 권상우 - 작품 고민은 즐거워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20-03-12

“아, 이때 기억난다, 다 기억나.”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권상우는 벽에 붙은 자신의 앳된 시절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18년 전, 공효진, 박해일, 조승우, 신민아, 류승범과 함께 ‘한국영화 밝힌 새벽의 7인’에 포함돼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장혁, 소지섭, 송승헌을 선의의 경쟁으로 이겨보고 싶다”고 말했던 그의 자신감과 당당함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다. 풋풋한 청춘배우였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아저씨 배우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1월 22일 개봉하는 <히트맨>에서 그가 연기한 주인공 준은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국정원을 탈출하는 국정원 암살 요원이다.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설정의 이 이야기는 최근 권상우가 보여준 이미지에 적극 기대는 작품이다. 아내에게 구박받으면서 육아를 하는 애잔한 가장(<탐정> 시리즈>)이거나 대역도 마다하고 직접 선보이는 정통 액션 스타(<신의 한수: 귀수편>)이거나. 개봉을 앞두고 그를 만나 <히트맨>과 그간 나누지 못했던 전작에 대한 얘기를 속시원하게 들어보았다. 권상우는 “<히트맨>을 통해 막혀 있던 걸 뚫고 싶은 게 올해 최고의 목표다. ‘흥행, 뚫어 뻥’ 했으면 좋겠다”고 야심을 드러냈다.

-<히트맨>은 전작 <신의 한수: 귀수편>(2019)을 촬영하다가 선택할 만큼 탐낸 영화로 알고 있다.

=당시 시나리오 네권을 받았는데 그중에서 <히트맨>은 처음 읽었을 땐 해도 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전작과 색깔이 다른 영화를 작업하고 싶던 차였다. 그런데 <히트맨>이 자꾸 생각나더라. 이 느낌 뭐지? 거듭 읽을수록 재미있었다. 새로운 재미가 눈에 들어왔고,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받은 작품이 또 있었나.

=<말죽거리 잔혹사>(2004)가 그랬다. 시나리오가 전부가 아니라 영화를 찍으면서 완성되는 이야기였다. <히트맨>도 배우들이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정원에서 길러진 암살 요원이 만화를 그리고 싶어 웹툰 작가가 되는 설정이 만화 같던데.

=사실 황당하지. 국정원 요원과 웹툰 작가는 극과 극의 직업이니까. 그런 설정보다 중요하게 본 건 이 영화가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웹툰 작가는 미대 출신인 배우 권상우를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선 직접 그린 그림이 없다. 자문해준 웹툰 작가님이 다 그려주었다. 오랜만에 펜을 잡으니 화가가 꿈이던 어린시절이 많이 생각나긴 했다.

-영화에서 그림을 직접 그린 적 있나.

=한편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한가인씨 자화상을 직접 그렸다.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직접 그린 그림을 친구 생일 선물로 주곤 했는데 연기하면서부터 그림과 멀어졌다. 옷방 한쪽에 팬들이 선물한 크로키북과 펜 세트가 많은데 그걸 볼 때마다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긴 한다. 하지만 지금은 배우로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연기에 집중하고, 나중에 여유가 되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탐정> 시리즈(<탐정: 더 비기닝>(2015), <탐정: 리턴즈>(2018))에서 보여준 애잔한 가장의 모습을 코믹하게, 후반부는 <신의 한수: 귀수편>에서 선보인 액션 스타 이미지를 활용하던데.

=명절 때마다 성룡 영화를 챙겨보았다. 성룡 영화는 코미디, 액션,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보는 재미가 있지 않나. 관객이 <히트맨>을 통해 다양한 장르가 주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신의 한수: 귀수편>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합류했으니 액션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됐겠다.

=전작에서 호흡을 맞춘 김철준 무술감독님과 연달아 작업했는데 내가 액션 합을 보통 사람들보다 빨리 습득하다보니 무술감독님이 촬영에 임박해 액션 합을 알려주었다. 액션 신이 많았고, 무술감독님이 나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 현장에서 재미있게 촬영했다. 그만큼 <히트맨>은 나한테 잘 맞는 옷이었다.

-과거에 권상우 하면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보여준 순애보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선보인 액션배우 이미지부터 떠오르지 않았나. 그런데 <탐정> 시리즈를 기점으로 권상우가 코미디 연기도 가능한 배우라는 사실이 대중에게 새로 각인된 것 같다. 그 덕분에 <히트맨>도 만날 수 있었고.

=음악이나 편집 같은 영화적 장치에 기대는 액션 장르와 달리 코미디는 관객과 호흡하면서 화학작용이 발생하는 장르다. 전혀 계산되지 않은 지점에서 관객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때 희열감과 성취감이 말도 못하게 크더라.

-<탐정> 시리즈가 배우로서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 생각하나.

=<탐정: 더 비기닝>에 출연하기 전에는 영화 경력의 정체기였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드라마를 주로 찍을 때라 영화 시나리오가 잘 안 들어왔다.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들은 어쩌다가 한편이 흥행에 실패해도 큰 타격이 없지만, 당시 나처럼 영화를 오랜만에 작업하는 배우에게 흥행 실패는 치명적이다. 무척 불안했던 상황에서 <탐정: 더 비기닝>을 만나서 감사했다.

-그때 배우로서 어떤 고민을 했나.

=제대한 뒤 다른 배우들에 비해 늦게 데뷔했다.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지만 서두를 게 없었고,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어떻게 처신할지 계획을 잘 짜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했다. 역할이 크든 작든 작품이 나를 필요하면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할 거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과감하게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후 출연한 <신의 한수: 귀수편>은 정통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말죽거리 잔혹사>가 떠오르더라.

=결혼하고 <탐정: 더 비기닝>을 찍으면서 영화배우로 다시 잘됐지만 액션에 항상 목말랐다. <신의 한수: 귀수편>은 40대임에도 스스로에게 불이 붙을 만큼 물리적으로 많이 노력했다. 40대가 되니 한살이라도 더 젊을 때 좋은 작품을 만나 역동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나이를 먹을수록 작품 욕심은 더 많아졌다. 도전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을 만나고 싶고, 그런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빨리 진행하고 싶다.

-액션영화에 애착이 큰 이유가 뭔가.

=어릴 때 공부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운동을 잘했다. 태권도 도장을 다니면서 운동장에서 혼자 낙법하고, 성룡과 이소룡 사진을 방벽에 붙여놓고 이소룡 일대기를 읽었다. 왜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되돌아보면 쓸모없는 행동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남들보다 액션을 잘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으니까. 어린 시절 우상이던 성룡과 함께 <차이니즈 조디악>(2012)을 찍었을 때 액션배우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평소 연기도 열심이고 홍보도 열심히 하고, 연습도 실전처럼 하며 항상 파이팅이 넘치는데 이유가 뭔가.

=솔직히 촬영할 때 항상 자신감이 있다. 내가 찍고 있는 책이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고 일한다. 결과가 잘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최선을 다하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빨리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언제인가.

=어릴 때는 영화 현장을 잘 몰랐고, 영화 외적인 일정이 많아 바빴는데 결혼하면서부터 배우로서 꿈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배우가 되고 싶어 연기를 시작했고, 그래서 작품이 더 중요하고, 현장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현장 가는 날에는 기분이 좋고, 다음 작품을 뭘 할지 고민하는 게 즐거워졌다.

-<천국의 계단>을 다시 볼 때도 있나.

=가끔 TV에서 방영할 때 잠깐 보곤 하는데 지금 그 드라마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때 어떻게 찍었는지 다 생각난다. 당시 촬영 현장에서 내가 한회에 세번 울면 감독님도 스탭들도 다 같이 울었다. 그만큼 감독님이 열정과 예술혼을 쏟아부어 만든 작품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최루성 멜로 장르를 해보고 싶다. 아직은 나이가 부끄럽지 않다. (웃음)

-아이들은 아빠가 출연한 영화를 챙겨보나.

=아들이 차를 타고 가다가 버스에 붙은 영화 광고를 보면 ‘아빠’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앞으로는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영화 위주로 고르려고 한다. 아이들이 지켜보니 더 잘하고 싶다.

-지난해 세차장을 개업해 세차장 사장이 됐는데. (웃음)

=회사 사무실이 있던 땅인데 공장 부지를 허물어 높은 빌딩을 올리기보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거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세차하는 걸 좋아해서 세차장을 열었다. 촬영이 없는 날에는 세차장에 자주 나간다. 세차하러 많이 와달라. (웃음)

-차기작은 뭔가.

=웹툰 <청소부K>를 각색한 영화다. 아직 자세한 얘긴 할 수 없지만 액션의 끝을 보여줄 하드 액션물이 될 것 같다. 공분으로 생긴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는 영화다.

-몇살까지 액션 연기를 하고 싶나.

=앞으로 10년 더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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