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속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
드디어 한국을 찾아온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여러 줄기를 가지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 중 시퀄 삼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다.(후속편이 또 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길고 길었던 저항군과 다크사이드의 대립도 이로써 일단락되는 셈이다.
이런 시퀄 시리즈에서 다스베이더의 뒤를 이어 다크 사이드를 대표하게 된 캐릭터가 바로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 2017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첫 등장한 그는 할아버지(다스베이더)에 비해 카리스마는 현저히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지만, 특유의 처연한 분위기로 외강내유의 매력을 발산했다. 힘을 갈구하면서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멘탈이 유리처럼 깨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왠지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느낌.
그런데 지금껏 등장한 유명 악역 중에는 카일로 렌을 뛰어넘는, 나름의 사정(혹은 변명)을 가진 캐릭터들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 몇몇은 ‘나도 저 상황이라면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이 피어오르기도. 마음 편히 비난하기는 힘들 것 같은, 터놓고 술 한잔 기울이면 “나도 힘들었어...”라 말할 것 같은 6인의 악역들. 그들의 이유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빠진 캐릭터들은 댓글에 언급, 변호해 주시기를!
※ 해당 작품들의 줄거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동족을 위해
<엑스맨> 시리즈 /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 이안 맥켈런)첫 번째 주자는 <엑스맨> 시리즈의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 이안 맥켈런)다.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영화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차별’에 대항하는 혁명가.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인물도 강경파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X다. 이에 걸맞게 매그니토는 뮤턴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의지가 확립됐던 오리지널 시리즈의 매그니토(이안 맥켈런)가 관록의 카리스마를 자랑했다면, 전사를 담은 프리퀄 시리즈 속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는 불안정한 심리가 거칠게 담기며 설정에 설득력을 더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은둔생활까지 하지만 다시금 인간들의 과오로 가족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는 등 수난 연대기를 겪으며 빌런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다.
<스타트렉 다크니스> / 칸(베네딕트 컴버배치)<스타워즈> 보다 더 긴 역사를 자랑하는 SF 시리즈 <스타트렉> 시리즈 속에도 매그니토와 유사한 사정이 있는 악역이 등장했다. 이미 원작 TV 시리즈, 1982년 제작된 극장판 때부터 큰 인기를 자랑했던 ‘칸’이다. J.J. 에이브럼스 감독이 재탄생시킨 두 번째 리부트판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칸을 연기해 이유 있는 악행을 보여줬다. 그가 스타플릿에 반하고, 주인공 커크(크리스 파인) 일행과 대립한 원인은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 숨겨진 악역이었던 마커스 제독(피터 웰러)가 동료들의 목숨으로 그를 협박한 것이었다. 뒷배경을 모두 밝히며 자신의 본명을 밝힐 때는 “대원들은 내게 가족이다”는 진심 어린 모습을 비추기도. 비록 대원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목숨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듯 행동했지만 그 원천만큼은 돌을 던지기 힘든 진심을 보여줬다.
우주의 균형을 위해
<어벤져스> 시리즈 / 타노스(조슈 브롤린)출근길 지옥철을 자주 경험했다면,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에서 가장 거창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 빌런, 타노스(조슈 브롤린)다. 손가락 스냅 한 번으로 전 우주의 생명 절반을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그지만 사실 이는 남은 반을 위해서. 타이탄 행성 출신의 그는 과거 인구 증대로 인해 자원이 고갈, 행성 자체가 멸망해버린 슬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강압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다. ‘대의를 이룰 수만 있다면’이라는 타노스의 마음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났는데, 그를 찾아온 어벤져스 멤버들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진정성까지 느껴졌다.
지구의 환경을 위해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 리치몬드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빌런 리치몬드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은 타노스에 비해 스케일은 줄었지만 ‘똘끼’를 한 층 업그레이드했다. 막대한 부를 가진 그는 ‘가이아 이론(지구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시각)’을 신봉하는 극단적인 환경운동가. 이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인구만 남겨두고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발렌타인은 악행에 개인의 욕망을 투영했다는 점에서 가장 변론의 여지가 적은 빌런이다. 백번 양보해 명분은 그럴듯하더라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은 살려두려 한다는 점에서 가장 악질임은 분명하다. 환경운동 겸 세계정복(?)을 꿈꾸는 '킹스맨'스러운 빌런이었다.
복수를 위해
<007 스카이폴> / 실바(하비에르 바르뎀)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악행의 이유지만,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이만큼 극적인 소재도 없겠다. 분노가 똘똘 뭉쳐 탄생한 복수를 위한 빌런들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로난(리 페이스), <블랙 팬서>의 킬몽거(마이클 B. 조던) 등 수많은 캐릭터들이 복수를 위해 주인공과 대립했다.
그중 복수라는 속 사정이 반전처럼 밝혀지며 큰 충격을 안겨줬던 이는 <007 스카이폴>에서 등장한 라울 실바(하비에르 바르뎀). 그가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MI6 본부를 초토화 시키는 이유는 단 하나. 과거 MI6 요원이었던 그를 버린 국장 M(주디 덴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가차 없이 토사구팽 당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M에 대한 의리를 져버리지 않으려 고문을 참고, 자결까지 시도했던 실바. 덕분에 증오, 애정, 슬픔 등 복합적인 감정이 한데 모인 복합적인 악역이 완성됐다. 평소에는 소름 끼치게 냉철하지만 M 앞에서는 아이처럼 변하는 부분에서는 그의 만감이 전해지기도 했다.
<올드보이> / 이우진(유지태)마지막은 한국영화다. 여러 외신에서 꼽은 ‘인상 깊은 악역’ 중 늘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올드보이> 속 이우진(유지태)이 그 주인공. (주로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통용되는)빌런이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입장에서는 이만한 악인도 없다. 그러나 크래딧이 올라간 뒤 그를 쉽게 비난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가장 지독한 복수는 무엇일까’에 대한 섬찟하고도 완벽한 방법으로 충격을 선사했지만, 그만큼 처연한 모습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여러 명대사, 명장면을 자랑하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대교 장면을 최고로 꼽는 이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마지막까지 복수는 자기 파괴의 지름길임을 보여주며 짙은 여운을 자아낸 악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