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안드레아 아놀드 / 출연 마이클 파스빈더, 케이티 자비스 / 제작연도 2009년
영화가 어떠한 힘을 갖는다는 건 뭘까? 그 힘은 때로 나를 여러 감정에 침잠하게 만들기도 하고, 심장을 근질근질하게 만들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위안을 주기도 한다. 10년 전에 만난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피쉬 탱크>는 나에게 그런 영화의 신비한 힘을 경험하게 해준 영화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카메라는 온종일 흔들리고, 컷마다 감각적이고 야생적이어서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이제까지 봐왔던 영화와는 다른 생경한 느낌에 ‘왜 이건 진짜 같지?’ ‘영화와 그 너머의 세계를 정말로 믿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하고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의 기술적 영역에 대해서도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다. ‘어항 속 물고기’란 뜻의 영화제목인 <피쉬 탱크>는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의 손길도 받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15살 소녀 미아(케이티 자비스)의 성장을 그린다. 미아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처만 겹겹이 쌓일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미아를 벼랑 끝에서 떨어뜨리지 않는다. 계속해서 폭풍을 맞게 하지만 언젠가는 지나갈 폭풍이라는 듯한 태도로 관조한다. 미아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담담한데, 어느 순간부터는 속이 상해서 나는 미아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내내 숨죽여 지켜보았다. 미아의 시선에서 그녀의 행동을, 변화의 시작을 보이는 움직임을. 그 끝에서 나는 비로소 세상 가장 따뜻한 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 지켜본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위안이라는 듯이.
미아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떠나기 전, 얄밉도록 사랑스런 동생과 모진 말만 하던 엄마와 같이 스텝을 맞추며 춤추는 장면은 두어 시간 넘게 부여잡고 있던 미아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처음으로 미소짓는 순간이었다. 엄마도 미아도 동생도 그들만의 어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춤으로 얘기하는 듯했다. 그 춤에는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하기엔 복잡다단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장면이었다. 그리고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을 떠나는 미아를, 어항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는 주체적 발걸음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부모에게 방치된 이 15살 소녀가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피쉬 탱크>가 나에게 끼친 영향을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어딘가로 멀리 떠났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미아가 처한 현실과 내 현실은 달랐지만, 마음의 상태는 미아의 어느 지점에 있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내 영어 이름도 ‘미아’(Mia)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나는 미아였는데, 그래서인지 <피쉬 탱크>도 <라라랜드>도 모두 다 내 얘기 같다.
●공민정 배우.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언니 은영을 연기했고, <이장>(2019), <한낮의 피크닉>(2019), <풀잎들>(2018) 등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