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와 <하이 라이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안 감독의 <제미니 맨>을 아이맥스 2D로 관람했다. 초당 120프레임(120FPS) 촬영한 이 영화의 이상적 관람환경은 4K 용량의 HFR(High Frame Rate) 3D지만, 미국에서 2K로나마 120FPS 3D 관람이 가능한 극장도 14곳에 불과하고 국내에는 없다. 도리어 최신 TV가 의도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구태여 왜?”라는 질문이 자연히 나온다. 리안 감독의 답은 자못 학자스럽다. <라이프 오브 파이>(2012) 당시 그는 3D 디지털 촬영을 처음 경험하면서, 블로킹과 시야 심도를 어떻게 통제해야 옳은지 혼란에 빠졌다. “디지털은 필름과 별개의 미디어다. 그래서 필름과 별개의 미학적 이상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리안을 HFR에 매달리게 했다. 내가 찾은 극장의 상영 조건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플라세보효과인지 프레임 내 모든 요소에 초점이 맞는 듯 쨍하고도 생경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아직 리안 감독의 꿈을 온전히 목격하지 못한 셈이다.
10/18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I feel nothing)
<애드 아스트라>의 우주비행사 로이(브래드 피트)의 독백이다. 그는 26년 전 해왕성 부근에서 실종된 전설적 우주인 H. 클리포드 맥브라이드(토미 리 존스)의 아들이며 뛰어난 실력과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다. 영화의 배경인 근미래의 인류는 황폐해진 지구를 뒤로하고 태양계를 점령해가고 있다. 어떤 위기가 지구를 피폐하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 <애드 아스트라>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애초에 클리포드를 우주로 떠나게 만든 목표도 “인간 외 지적 생명체를 찾고 말겠다”는 다분히 존재론적 욕망이다. 미연방 우주사령부가 로이를 화성으로 파견하게 만드는 사건은 <아마겟돈>의 그것과 비슷한 재앙이다. 태양계로부터 밀어닥친 전자파가 지구를 위협하자, 그 출처가 클리포드라고 추측한 사령부는 아들 로이의 메시지로 심리전을 펴려고 한다. 이해하기 힘든 대목은 애초에 부자지간의 정을 무기로 쓸 계획이었던 사령부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음하는 로이가 감정을 드러내자마자 임무에 부적격하다며 작전에서 배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플롯도 이 영화에서는 부차적이다. 최근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로이 맥브라이드의 친구는 <퍼스트맨>(2018)의 닐 암스트롱이다. 두 영화 모두 헬멧에 갇힌 고독한 남자의 힘겨운 입김이 가장 중요하다. 로이와 닐은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거리가 먼 우울한 사나이들이다. 그들은 과묵하고 고도로 유능하며 집으로부터 점점 멀리 떠나가려고 한다. 요컨대 아버지 또는 아들로서 품은 회한, 불모한 남성성으로 인해 불행해진 남자의 심리가 <퍼스트맨>과 <애드 아스트라> 속 ‘우주’의 중심이다. <애드 아스트라>에는 장르적 액션- 우주 유인원의 반격까지- 도 등장한다. 그러나 서사의 숨은 엔진은 “오늘날 아들 세대는 아버지들을 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전작을 본 관객이라면 답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관람 직후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듯 <애드 아스트라>의 이야기 구조는 <지옥의 묵시록>(1979)의 보다 평화로운 우주 버전이다. 밀림 깊은 곳으로 들어간 미친 커츠(말론 브랜도)는 추종자들의 왕국이라도 세웠지만 초라한 클리포드에겐 남은 것이 없다. 커츠와 클리포드는 공히 (자신을 이해하고 나서) 죽여줄 아들을 기다려 끝을 보는데 40년 후배인 클리포드의 결말에는 “공포, 공포”라고 되뇌는 커츠에게 주어졌던 장엄한 마침표가 없다. 고집 피워온 세월에 비해 어이없을 만큼 순순히 아들을 따라 우주선을 나온 클리포드는 그냥 구명줄을 풀고 말줄임표처럼 우주의 어둠 속으로 총총 작아져간다. 아버지는 지적 생명체를 찾지 못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되찾지 못한다. 닐과 로이는 그동안 마음을 터놓지 않았던 배우자에게 돌아온다. 클레어 포이와 리브 타일러의 캐릭터는 공히 우주 모험 영화의 공식대로 걱정으로 발목잡고 뒤에 남아 기다리는 아내지만, 클레어 포이가 연기한 실존 인물 재닛 암스트롱쪽이 훨씬 생동감 있다. 반면 <애드 아스트라>의 리브 타일러는 <반지의 제왕>의 아르웬보다 더 판타지적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는 “당신이 염려돼”가 전부다. 영화 내내 계속된 로이의 보이스오버 독백은 마지막에 이르러 지상의 삶을 살고 사랑하기로 했다고 밝힌다. 그것은 태양계 끝까지 가서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온 다음의 선택이다.
10/19
기대가 컸던 <애드 아스트라>가 안정적인 궤도를 택한 반면, 클레르 드니의 <하이 라이프>는 뜻밖에도 SF 장르영화에서 볼 수 없던 풍경을 더한다. 이것은 은유만은 아니다. 섹스가 금지된 탑승자들을 위한 마스터베이션 부스를 달리 어디서 보겠는가. 우주를 무대로 창조주 콤플렉스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 시리즈와 통하지만, <하이 라이프>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유영해 나아간다. 몬테(로버트 패틴슨)는 대체에너지를 찾아 블랙홀로 쏘아 올려진 우주선의 탑승자다. 사형수와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들로 이뤄진 남녀 우주인들은,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 미션의 모르모트로 소집됐다. 한편 남편과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소문과 함께 동승한 과학자 딥스(줄리엣 비노쉬)는 죄수들을 대상으로 섹스 없는 수태 실험에 집착한다. 유일하게 정액 채취를 거부하던 몬테는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죽음과 폭력 사태가 지나간 후, 갓난 여자아기 윌로와 단둘이 우주 공간을 떠돌게 된다. 클레르 드니 감독은 인터뷰에서 닥터 딥스를 그리스 신화 속 메데이아에, 몬테를 동정(童貞)을 지키며 성배를 찾은 기사 퍼시벌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이 라이프>는 우주선 외부를 정비하던 몬테가 베이비 모니터와 연결된 이어셋에서 윌로의 찢어지는 울음소리에 놀라 장비를 떨어뜨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사고가 모종의 결심을 부른 것처럼, 몬테는 냉동 보관해온 시신들을 해치 밖 우주로 흘려보낸다. 죽은 인간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하강하는 프레임 위로 박히는 ‘하이 라이프’라는 제목은 타이틀 화면도 엄연히 시네마의 일부임을 확인시킨다.
딸에게 몬테가 가르치는 첫 단어는 ‘터부’(Taboo)다. 아빠는 “똥오줌을 먹어선 안 돼. 똥오줌처럼 보이지 않더라도”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들은 배설물을 재활용하는 시스템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다. 사회를 존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율 터부는, 인간이 둘만 남은 우주에서 무엇일까? 영화에서 일종의 강간을 통해 생명을 지어낸 ‘창조주’ 딥스 박사가 시도한 실험은 우주에서의 인공수정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이브는 아담의 뼈로 만들어진 ‘근친’이기도 했다. 자급자족하는 우주선 안의 작은 정원이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클레르 드니의 신 없는 창세기는, 마치 파충류의 냉담한 눈처럼 보이는 블랙홀 입구에 남자와 여자를 뱉어놓으며 정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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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가 아니라, 샤론 테이트와 남편 로만 폴란스키의 신혼집 근처에 사는 가상의 이웃릭 달튼과 그의 대역 클리프 부스다. 세 인물이 각기 할리우드에서 보내는 동일한 하루를 따라가는 영화의 제2막은 타란티노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높은 밀도와 느린 호흡, 아련한 애수로 빛난다. 이날 26살의 샤론은 삶의 절정에 서 있다. 세상은 그를 배우로서 알아보기 시작하고 친구들은 다정하며 신혼은 행복하다. 남편에게 주려고 주문한 <테스> 초판본을 서점에서 찾은 샤론은 자신이 조연으로 등장한 <레킹 크루>(1969)가 상영 중인 극장에 홀연히 들어선다. 처음에 샤론을 알아보지 못하던 극장 직원들도 설명을 듣자 사진을 요청한다. 타란티노는 <레킹 크루>에 마고 로비를 합성해 넣지 않고, 실제 샤론 테이트의 연기를 샤론 역의 마고 로비가 지켜보도록 연출함으로써 요절한 스타에 대한 애정을 표한다. 은막 속 본인의 슬랩스틱에 관객이 웃을 때마다 수줍은 희열로 반짝이는 마고 로비의 리액션은, 이 영화의 절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