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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②]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 - 평범한 여성의 삶을 담아내는 법을 고민했다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9-10-30

김도영 감독은 단편 <자유연기>(2018)로 미쟝센단편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은 신인이다. <자유연기>는 출산과 육아로 배우로서의 경력이 단절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바탕이 된 영화다. 김도영 감독은 단편 <가정방문>(2012), <낫씽>(2014)을 만들었고 동시에 <어떤 개인 날>(2008), <살아남은 아이>(2017) 등에서 연기도 병행했다.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연기>를 찍었고, 그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의 연출 제안까지 받았다. <82년생 김지영>과 운명적으로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김지영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던 김도영 감독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현실에 최대한 근접한 세계, 바로 우리의 이야기로 완성시켰다. 캐릭터와 이름 가운데 글자 하나만 다른 김도영 감독은 응원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김지영 같았다.

-페미니즘 영화로 명명되면서 개봉 전 평점 테러를 당한다거나 논란이 될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책 한권, 영화 한편을 두고 여러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이 당황스러웠고 그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외적논란은 문제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원작과 비교당하는 건 일종의 운명 같은 것이고,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대단한 목표나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웃음)

-영화의 원작인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나온 밀리언셀러다. 게다가 페미니즘 이슈 때문에 영화화 결정 단계에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가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인데, 연출을 맡기까지 고민과 부담이 상당했을 것 같다.

=양가적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신인인 내게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고맙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것들에 대한 부담감.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의 범주 안에 있는 영화여서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촬영 중반쯤이었나. 내가 <82년생 김지영>을 택한 게 아니라 이 이야기가 나를 택했다고. 이 서사가 나에게 왔고, 어떤 이야기가 되고 싶어 하는구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82년생 김지영’보다 윗세대인데, 김지영의 삶에서 어떤 부분들에 특히 공감되던가.

=차별이란 특별하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공기처럼 일상에 존재하는 거라 생각한다. 지영의 어린 시절 경험도 나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막냇동생이 1981년생인데 소설을 읽고서 나와 비슷한 감상을 얘기하더라. 내가 느낀 것을 막냇동생도 느꼈다고 하니 슬펐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관습들이 많이 있구나 싶었다. 공감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만약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이 운이 좋은 게 아닐까. (웃음) 우리 다음 세대, 지영의 딸 아영의 세대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있었단 말이야?’라는 말이 나오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소설의 구조를 빌려왔지만 영화는 육아로 회사를 그만둔 지영(정유미)의 현재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다. 각색의 과정, 각색의 방향도 궁금하다.

=소설은 정신과 의사가 지영의 이야기를 르포 형식으로 정리하지만 영화는 지영이 아직 정신과 상담을 받기 전의 이야기라 소설과는 화자가 다르다. 영화에서 지영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인물은 남편 대현(공유)이다. 중요한 건 지영에게 왜 빙의 증상이 나타났는가인데, 빙의로 시작되는 지영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빙의는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문학적 상징이라 생각했고, 영화에서도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여성이 언어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중심 서사로 잡고 과거 에피소드를 가져왔다. 지영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몰래카메라라든가 유리천장 같은 사회적 의제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빙의 장면… 찡하게, 자연스럽게, 진실되게

-지영의 과거를 보여주는 플래시백 장면이 많다. 플래시백 활용과 관련해선 어떤 고민을 했나.

=영화에서 과거를 보여줄 땐 현재와는 다른 어린 배우가 등장하기 때문에 인물의 연속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 과거의 개별 에피소드를 어떻게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넣고 싶은 에피소드들이 많았지만 영화 전체의 호흡과 리듬을 고려해 빠진 장면이 조금 있다. 초등학생 지영의 실내화 장면은 찍었지만 결국 편집됐다.

-지영이 자신의 엄마로, 또 동아리 선배로 빙의하는 장면을 연출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지극히 현실적인 톤으로 진행되던 일상적 이야기에 빙의라는 낯선 코드가 들어오는데.

=공포영화, 오컬트영화처럼 연출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상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유미 배우에게도 빙의 연기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 어떤 역할을 맡은 것처럼 대사를 하면 된다, 목소리를 흉내낼 필요가 전혀 없다고 얘기했다. 중요한 건 외향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말의 내용이니까. 그 말을 진실되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정유미 배우가 찡하게, 자연스럽게, 진실되게 그 신의 목적을 달성해줬다.

-산후 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이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김지영의 상태를 보여줄 때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이었나.

=내 육아의 경험은 이랬다. 친구들이 오면 신이 나서 과하게 떠든다. 그러다 친구들이 돌아가면 전자제품 돌아갈 때 나는 ‘삐~’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기분이 된다. 기본적으로 지영이 평소에 생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바닥으로 확 꺼지는 느낌이 들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옛 직장 동료 혜수(이봉련)가 놀러왔을 때 지영이 별것 아닌 얘기에 깔깔깔 웃다가 혜수가 가고 나서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이다. 그런 순간이 영화에 잡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영이 우울한 상태라고 해서 늘 멍하거나 우울해 보일 필요는 없었다.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이지만 어떨 땐 급격히 전환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게 훨씬 더 공감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두 아이의 엄마다.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건 무엇인가.

=아이는 무척 사랑스럽고 육아 자체도 위대한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몰랐던 사실은, 아이는 시간을 먹고 자란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양육자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 나의 시간을 내줘야 한다. 그전까지는 내 시간이 내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시간의 일부를, 아니 육아 초반엔 거의 전부를 아이에게 주어야 했다. 그런 경험이 낯설었다.

-영화엔 무려 4대의 모녀가 등장한다. 지영의 딸, 지영의 엄마(김미경), 엄마의 엄마(예수정)까지. 모녀 관계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면.

=윗세대 여성과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의 여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딸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출발하는 사이고, 그러한 친밀한 관계,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적 연대를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어머니 미숙이 다음 세대인 지영을 밀어주고 지지하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원작에서 정신과 의사는 남자인데 영화에선 여자로 바뀌었다.

=소설에선 의사가 수행하는 기능이 정확했다. 그런데 영화에선 의사의 시점을 화자의 시점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남자일 필요가 없었다. 보통의 영화에서 전문직 캐릭터는 남자가 많이 맡지만 이 영화에선 그러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제작자도, 감독도, 작가도, 원작자도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보나.

=아무래도 김지영의 서사에 공감하고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영화니까. 그게 영화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된 것도 사실이다.

-배우들이 큰 몫을 하는 영화인데, 정유미 배우와는 촬영 전 어떤 이야기를 주로 나눴나. 김지영이 아이와 등장하는 장면이 많은데 정유미 배우는 육아의 경험이 없다.

=연기를 잘하면 미혼이건 기혼이건 아이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고민했던 건 ‘평범함은 대체 어떻게 연기되어야 하는 걸까’였다. 나도 배우 출신이지만 ‘평범함을 연기하라는 건 뭐야?’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정유미 배우는 일단 이미지가 좋았다. 처음 봤을 때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굉장한 매력이 있었고, 저분이 자신의 매력을 그대로 가지고 영화에 존재해준다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것 같았다. 유모차를 민다거나 아기띠와 한몸이 되어 사는 모습 같은 건 부차적인 거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기른다는 건 책임감에 관한 거고, 그런 감정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는 감정이기 때문에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외양이 아니라 이 순간에 어떤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이야기들.

-공유가 연기하는 대현은 대한민국 평균치 이상의 남편이란 생각도 드는데, 감독님이 생각한 대현은 어떤 남편이었나.

=평범해 보이길 바랐다. 원작에서 본 대현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를 걱정하고, 그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 역시 대한민국에서 아들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습득된 관습들로 의도치 않게 지영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아내가 아프다는 걸 알고는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런데 기혼자들은 영화를 보고 빨리 캐치하더라. 대현은 아내를 걱정하지만 아내가 빨래를 갤 때 맥주를 마신다. 어머니 앞에서 눈치 없이 자기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서 시어머니에게 지영이 한 소리를 듣게 만든다.(웃음) 그런 장면들이 군데군데 있다. 그런 걸 남자들은 캐치하지 못하더라. ‘아니 저렇게 좋은 남편이 있단 말이야?’ 하는 거지. (웃음) 공유 배우의 이미지가 워낙 좋은 것도 대현을 좋은 남편으로 보이게 하는 데 한몫하는 것 같다.

-지영의 직장 상사로 나오는 박성연, 직장 동료로 나오는 이봉련, 지영의 언니 은영으로 나오는 공민정, 특별출연 염혜란과 예수정 등 영화, 연극, TV에서 활약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예전에 연기한 덕을 봤다. 박성연, 이봉련, 이지혜 배우는 무대에서 같이 작업했거나 자주 봐왔던 배우들이다. 박성연 배우는 늘 연기를 너무 잘한다고 생각했던 배우고, 실제로 대학로의 연기신 중 한명인데, 내가 선점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웃음) 성평등교육 강사로 나오는 권지숙 배우는 무대 연기를 계속하는 내 절친이기도 해서 배우들 정보를 많이 얻었다. 연기는 잘하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이 영화에 들어오면서 영화가 더 현실에 붙어 있는 느낌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과 다른 길을 택한 이유

-소설의 시니컬한 결말과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고민이 많았다. 지금과 같은 결말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너무 판타지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반보라도 더 나아간 지점에 지영이서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다. 더불어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갈 때 관객이 어떤 마음이면 좋을까를 생각했다. ‘씁쓸하지만 현실은 이런 거야’가 좋을까 ‘그래 괜찮아, 우리는 나아질 거야’가 좋을까. 다행히 원작자인 조남주 작가도 엔딩을 보고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원작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고 용기낼 수 있었다.

-소설이 출간된 지 3년이 지났고, 그 3년 동안 치열하게 페미니즘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희망적 결말이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것도 있다. 2016년과 지금은 또 다르니까. 그사이 미투 운동도 있었고. 사회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영의 결말이 좀더 좋은 엔딩이길 바랐다.

-앞으로도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생각인가.

=어떤 영화가 됐든, 어떤 장르가 됐든, 매력 넘치고 주체적이고 멋진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를 하고 싶다. 연기를 해서인지 몰라도 캐릭터에 관심이 많다. 여전히 여성이란 키워드에 관심이 있고, 매력적인 여성 서사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영화와 육아는 어떻게 병행했나.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화 마지막에 감사한 분들 이름에 남편과 시어머니의 이름을 올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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