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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석규를 만나다 (1)
2002-05-03

“3년 동안요? 편해지고 자유로워졌지요”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변함이 없다.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표정, 듣는 이의 가슴을 다독이는 목소리, 영화출연작이 없던 지난 3년 동안에도 한석규의 이미지는 늘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을 위해 한겨레신문사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모습에서 뭔가 낯선 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기이해 보인다. 그는 마치 어제 본 영화에서 걸어나온 사람처럼 친숙하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실은 배우 한석규의 힘이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화라는 판타지 속에 있었지만 언제나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으로 살았다. 친해질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남자로, 한석규는 한참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그도, 출연작이 없던 지난 3년이 부담스러운 건 분명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인터뷰를 하자는 말을 건네자 “무슨 말을 하겠어요. 별로 할말이 없어요”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3년간 왜 영화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을 게 뻔한데 그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게 문제였다. <광우> <제노사이드> 등 한석규가 출연하고, 형인 한선규씨가 제작에 참가하기로 했던 영화 3편이 차례로 무산됐던 일을 소상히 공개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얼마간 설득하는 과정이 지나고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차기작 <이중간첩>이 곧 촬영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궁금증을 증폭시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단 지난 3년을 어떻게 보냈는지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연기로부터 편안해진 휴식기

“인터뷰하자고 했을 때부터 ‘왜 지금까지 3년간 영화를 안 했느냐?’고 물을 텐데 뭐라고 답하지, 고민했어요. 그냥 <이중간첩> 하려고 그랬다고 할까? 그렇게 말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그간 <광우> <제노사이드> 3편이 있었는데 <광우>는 제작사쪽에서 문제가 있어서 손을 놓게 됐고 <제노사이드>는 시나리오 수정이 잘 안 됐어요. 도 마찬가지였고. 이 3편을 차례로 기다렸다기보다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어요.

“편하게 지냈다”는 그의 답변은 쉽게 수긍이 가는 말은 아니었다. 배우가, 그것도 최고의 자리에 있던 배우가 3년의 공백을 편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이 자기 의지대로 쉰 기간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주변 여건 때문이었다면 그럴 수 없었으리라. 영화출연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했음이 분명한 그에게 “편해졌다”는 말의 진의를 듣고 싶어졌다.

“나이가 좀 들면서 느낀 건데 이런 거죠. 좋은 만큼 나쁘고 나쁜 만큼 좋은 거죠. 얻는 게 있으면 그만큼 잃는 게 있고 잃는 게 있으면 그만큼 얻는 게 있고. 배우를 하면서 얻은 게 많았어요. 배우로만 말하자면 정말 얻은 게 많죠. 하지만 그 와중에 잃은 것도 많은 거 같아요. 작품을 안 하면서 내가 왜 연기를 하나, 내가 왜 영화를 하나, 내가 왜 사나, 뭐 그런 답 안 나오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그런 생각 하는 게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누구나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이번엔 생각할 시간이 충분했던 거고요. 역시 답은 안 나오더군요.”

한석규는 느릿느릿하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농담삼아 “도를 닦다온 사람같아요”라고 말하자 그는 더 진지해진다. “저보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해준 거 같아요”라며 “그동안 둘째 딸도 태어나고 가족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서 그는 오랜 상념에 젖었던 사람처럼 이야기를 이어간다.

“처음 1∼2년은 빨리 다음 영화 해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까 오히려 편해지더라고요. 배우라는 직업도 그렇잖아요. (연기를) 하는 것보다 연기를 안 하는 연기가 어려운 거잖아요. 인터뷰도 하는 건 쉬운데 안 하는 건 어려워요. 그러면서도 관객이나 팬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 영화 언제 나오느냐 물어오면 격려가 되고 힘이 되죠. 제가 출연한 영화만 해도 그래요. 누구나 다 제 영화를 좋아하진 않을 거예요. 별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고 관심이 없는 분도 있겠죠. 다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91년에 TV 드라마 연기를 처음 했으니까 만 10년 넘게 배우생활을 한 건데 그 사이에 얻어진 힘으로 가는 거잖아요. 쭉 해나가야지요. 건방진 얘기인지 몰라도 영화로부터, 연기로부터 많이 편안해진 거 같아요. 서두름, 조바심, 걱정 그런 거 많이 없어지고. 3년 동안 출연작이 없었지만 언젠가 하겠지, 했어요. 빨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그는 정말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흥행불패의 신화’, ‘한석규’ 하면 영화인들은 여전히 흥행배우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린다. 8편의 영화 가운데 <초록물고기>를 뺀 7편이 이른바 흥행작이었다. 가장 많은 시나리오가 몰리는 동시에 시나리오를 고르는 안목이 가장 까다로운 배우, 라는 평판은 어떤 면에선 칭찬이지만 다른 측면에선 비판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나 신중하게 영화를 선택했고 그런 면에선 3년간 스크린에서 볼 수 없던 것도 그 ‘신중함’이 낳은 부작용처럼 보인다. 그는 정말 실패를 두려워하는 배우인가?

“누구나 그렇지만 제게도 나름의 영화관, 연기관, 그런 게 있어요. 연기를 하는 한 이래야 된다는 생각이죠. 그건 처음 연기를 꿈꿨던 순간, 애초에 영화를 시작하면서 품고 있던 생각이기도 해요. 안 해야 될 걸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하지는 말자, 그런 것도 포함되죠. 실패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거죠. 그건 앞으로도 영원한 두려움일 거예요. 아닌 걸 알면서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흥행이든 작품성에서든 분명 실패는 있을 거예요. 저도 잘 알아요. 실패가 있는 거죠. 하지만 개별 작품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전체적인 그래프가 상승하는지, 하락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성공해도 연기자로서 전체적인 그래프는 계속 내려가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몇십년이나 배우를 할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그래프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언젠가 배우생활을 마감할 때 ‘그 친구 괜찮았다’, 그런 말 듣는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80년대 한국영화의 얼굴은 오직 한 사람, 안성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성근이 나타나 안성기와 더불어 한국영화라는 짐을 나눠 짊어졌다. 그때 안성기는 문성근이라는 배우가 너무 반가웠다고 한다. 혼자 감당해야 될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을까? 한석규와 더불어 찾아온 한국영화 붐은 또 다른 배우들을 발굴하는 데로 이어졌다.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유오성 등 연기파 배우들이 한석규에 이어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석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좋죠. 너무 좋죠. 이제야말로 껍데기보다 알맹이가 통하는 상황이 된 거죠. 다 연기로 인정받는 동료들인데 그게 정말 좋아진 거 같아요. 관객도 배우를 외모가 아니라 연기로 평가하는 시대가 된 거죠. 사실 배우는 관객 없으면 말짱 꽝인데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찾아주면 좋은 거죠. 그리고 다들 나이가 좀 있는 배우들이잖아요. 나이 어린 배우가 아니라 나이가 있는 배우들이 설 자리가 넓어지는 것도 좋은 거고요. 민식이 형이나 강호는 <쉬리> 때 참 호흡이 잘 맞았어요. <공공의 적> 봤더니 설경구도 정말 잘하더라고요. 유오성은 <닥터봉> 때 같이 출연했던 적이 있어요. 그땐 둘 다 신인이었는데 <챔피언>이 정말 기대돼요.”▶ 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석규를 만나다 (1)

▶ 3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석규를 만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