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멸종’ 가짜뉴스는 <봉오동 전투>가 개봉되기도 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영화 관련 기사의 댓글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사실로 둔갑했다. <봉오동 전투> 개봉 사흘 전인 지난 8월 4일, ‘봉오동전투 촬영팀의 만행’이라는 제목의 글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다(8월 27일 현재 이 글은 이 커뮤니티에서 삭제된 상태다.-편집자). <봉오동 전투>가 원주지방환경청의 행위중지 명령을 무시한 채 화약을 터트려 동강 할미꽃이 멸종됐다는 내용이다. 영화 제작진이 촬영하기 위해 굴삭기로 도로를 불법 개설하고, 촬영 스탭 150여명, 말 20여필, 굴삭기 2대가 서식지의 일부를 훼손해 검찰과 원주지방환경청으로부터 각각 벌금과 과태료 처분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할미꽃 멸종은 어디에도 없던 얘기다. 그럼에도 이 글은 모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포털사이트에 올라간 영화 관련 뉴스의 댓글, 영화 커뮤니티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뒤늦게 가짜뉴스로 판명됐지만 이미 논란이 휩쓸고 지나간 뒤다.
분노를 고의적으로 유발한다는 루머
개봉을 코앞에 두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봉오동 전투>는 개봉한 뒤에도 설상가상으로 ‘좌파영화’ 딱지까지 붙으며 불매운동에 휘말렸다. 한 보수 유튜버는 이 영화를 두고 “국민의 분노를 유발해 흥행을 노리는 게 목적”이라는 근거없는 말을 내놓았다. “정부가, 청와대가 나서서 일본에 대한 분노심을 고조시키고 있고, 청와대 민정수석(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SNS에) 죽창을 들고 싸워라”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이 영화의 개봉 시기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모 커뮤니티에선 영화에 깜짝출연한 최민식 배우가 맡은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고 문제 삼기도 했다. “청산리대첩을 이끈 김좌진 장군은 공산주의자의 총에 죽은 진짜 우리 육군의 전신이고, 봉오동전투는 김좌진 장군을 죽인 친러시아 공산주의자 수장인 홍범도가 주도한 전투다. 김원봉 같은 빨갱이를 미화하는 드라마가 나오는 시대에 놀랍지도 않다”면서 말이다. 이들이 올린 게시글에는 “좌파가 장악한 문화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습니다”라거나 “좌파가 아니라 주사파다. 워딩을 제대로 바꿔쓰자” 같은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영화에 제기하는 색깔론이 일본 우익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본 우익 성향의 유튜브 채널인 ‘미치노쿠 대자보’(みちのく壁新聞)는 ‘촛불 한국 반일영화 속속 공개, 많은 허위·날조·과대’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봉오동 전투>가 “항일 전쟁의 망상을 신화로 묘사한 영화”라고 깎아내렸다. 당시 <독립신문>이 기록한 봉오동전투의 일본군 전사자가 157명, 부상자가 300여명이 과장된 숫자라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이 영상에 “한국영화계는 어느 파벌에 속해 있을까?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은) 북한의 공작일까?”라는 내용의 댓글이 달린 것도 눈에 띈다.
자연 환경 훼손이라는 리스크를 건드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논란을 만든 뒤 반일 혹은 ‘빨간 딱지(레드콤플렉스)’를 붙여 흥행을 방해하는 이 패턴은 2년 전 개봉했던 <군함도>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군함도>가 개봉했던 2017년 8월, 스크린독과점(당시 개봉 첫주 스크린 2168개(교차상영 포함))에 대한 화살을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스크린을 배정한 멀티플렉스 3사가 아닌 스크린 배정과 전혀 상관없는) 류승완 감독에게 집중해 쏟아부은 뒤, 영화 속 조선인들이 친일파나 전향 조선인들에게 노동착취당하는 모습을 문제 삼아 ‘친일’과 ‘국뽕’ 프레임을 씌웠다. 그러면서 불어닥친, ‘<군함도>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광풍은 지금의 <봉오동 전투>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또 <군함도>에서 묘사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착취 문제는 지난 7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다시 소환됐다. 최근 역사 왜곡 논란이 되고 있는 책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당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열린 심포지엄 ‘군함도의 진실’에 참석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식이 잘못된 만큼 유엔인권이사회가 이를 시정, 권고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위원은 이 의견서를 통해 “조선인 노무동원은 강제연행이나 노예사냥이 아니라 자발적 의사나 법률적 절차에 의해 이뤄졌다”며 “식민지 시기 조선인 노무동원과 관련해 이런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도록 한국 정부에 권고해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이 노동환경이나 임금 수준 등으로 볼 때 “일본인과 동일한 조건에서 수행된 전시노동이었다. 작업시간 이외의 일상생활은 자유로웠다”며 “탈출을 막기 위해 망루에서 총을 든 군경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장벽을 감시하는 모습을 연상하거나 그러한 영화(<군함도>)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이를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당시 <군함도> 논란이 이상했던 건, 포털사이트 네티즌 평점 1점이 개봉 첫날인 7월 26일 새벽4~5시까지 한 시간 동안 500~1천여개가 집중적으로 달렸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7월 <씨네21> 1163호 기획기사 ‘매크로가 만든 블록버스터?’에서 보도된 대로, 이것이 매크로 조작이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면 1천여명이 <군함도>가 개봉하기도 전에, 남들 다 자는 시간대에 일어나거나 새벽 4시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영화를 보지도 않고 평점 1점을 달았다는 얘기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당시 직접 만난 한 매크로 전문가는 “네이버 아이디만 있으면 된다. 그 아이디로 네이버는 물론이고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까지 연동이 가능하다”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 아이디는 그냥 만들어낼 수 있다. 메일 인증만 하면 되기 때문에 해외 계정 메일로 아이디를 만든 뒤 매크로 작업을 하면 되니까”라며 <군함도>에 대거 집중된 평점 1점이 매크로 작업일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사람들
올해 초 매크로 작업을 통한 평점 조작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실제로 영화, 음원 등에 댓글 작업한 중국인을 내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네이버 아이디를 생성하는 공장이 중국에 존재하고, 그곳에서 영화뿐만 아니라 음원, 상품 등 다양한 상품의 언더 바이럴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은, <씨네21> 기사 ‘매크로가 만든 블록버스터?’에서 이미 보도됐듯이 중국과 국내에 네이버 아이디를 생성하는 공장이 여럿 있고, 전문 툴(프로그램)을 통해 중국 등 해외에서도 전화번호를 통해 본인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까닭에 해외 아이피로 접속해 네이버 아이디를 대량 생성하는 게 어렵지 않은 데다 언더 바이럴 업체는 사전에 네이버 아이디 400~500개를 준비해 ‘좋아요’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평점을 올리는 작업을 시도했다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항일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니지만 올해 여름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가 흥행에 참패한 <나랏말싸미> 또한 <군함도>나 <봉오동 전투>와 비슷한 양상으로 확대 재생산된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제작진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세종대왕(송강호)이 신미 스님(박해일)과 함께 한글을 창제했다는 설을 재해석한 영화라고 밝혔음에도, 적지않은 사람들이 영화의 설정을 “명백한 허위”라며 분노했다. 한 영화 마케터는 “들불처럼 타오르는 논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없다. 해명하거나 사실을 바로잡으려고 할수록 논란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라며 “논란이 불거지는 과정을 보면 전문가가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증거가 없으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누군가가 개입했든, 안 했든 분명한 건 SNS 시대에선 논란이 퍼져나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소재도, 장르도 다르지만 최근 항일운동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 흠집내는 패턴은 비슷하다. 자연 훼손(<봉오동 전투>), 스크린독과점(<군함도>) 등 영화가 가진 약점을 각종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 댓글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면 언론들이 너도나도 앞다퉈 진짜인 양 보도해 개봉이 되기도 전에 흥행에 차질을 빚게 만드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논란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확대돼 막거나 수습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한 영화 제작자는 “비정상적으로 불어닥친 광풍에 휘말려 피해를 본 제작사들이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악의적인 소문이나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포한 사람들에게 법적 대응을 포함한 단호한 대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씨네21>은 <군함도> <봉오동 전투> 등 최근 영화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한 사례에 대해 취재하고 있습니다. 매크로 작업을 통한 평점 조작, 항일영화에 대한 흠집내기와 관련해 아시는 분이 있다면 김성훈 기자의 메일(pepsi@cine21.com)로 제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