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은 ‘집’에 관한 영화다. 피해자 유정(한수연)이 칼에 찔려 처참하게 죽은 곳은 자신의 집이었고, 아내를 잃은 영훈(송새벽)은 차마 집에 머물지 못하고 모텔을 떠돈다. 유력 용의자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영훈과 용의자의 아내인 다연(유선)은 진실을 좇기 위해 다시 이 집에 모여 사건을 재현한다. 이민희 미술감독은 “유정이 죽으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정작 유정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 자체가 유정 캐릭터처럼 보이게끔 디자인했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한 유정의 이미지는 ‘꽃’이었다. “영훈이 그토록 그리워할 만큼 아름다운 유정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불이나 벽지는 플라워 패턴으로 배치했다. 너무 순수하고 악의가 없고 가죽 공예 같은 취미가 있을 것 같은 친구라는 나름의 설정을 했는데, 그런 취향을 반영해 죽음을 맞이하는 침대도 예쁜 철재 재질로 골랐다. 그외에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영훈의 죄책감을 보여주기 위해 커튼과 전등은 붉은색으로 정했다.”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장르영화이지만, 장르적 개성보다는 캐릭터의 쓸쓸함을 강조했다는 이민희 미술감독은 집의 구조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한다. “영화를 잘 보면 서재와 침실이 마주 보고 있다. 혼자 남은 영훈이 서재에서 쓸쓸하게 침실을 바라보면 정면에 핏자국이 있는 침대가 보인다.”

원래 광고나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이민희 미술감독은 대학에서 다양한 영상 작업을 경험한 뒤, “감독보다는 그림을 만들어주는 미술감독이 되고 싶다”는 것을 자각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스토리텔링도 할 수 있고, 긴 호흡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가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광고나 뮤직비디오 미술감독을 하는 친구들의 작업을 도와준 적 있다. 영화 현장의 호흡이 더 맞더라. 난 오래 생각하고, 확신이 설 때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진범>은 이민희 미술감독이 ‘미술감독’으로 크레딧에 오른 첫 작품이다. 그만큼 ‘좋은 미술’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고 찾아가는 단계이며, “혼자 튀기보다는 영화와 한몸이 된 미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이나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를 보면 시대의 공기가 담겨 있지 않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미술을 하고 싶다.”

<프로덕션디자인의 이해>

“미술감독이 되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 구입했다. 영화미술이 무엇인지,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 전혀 몰랐던 나에게 일종의 바이블이 됐던 책이다. 류성희 미술감독님 등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쓰신 글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미술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요즘도 영화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나 일이 너무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다시 꺼내 본다.”

2019 <진범> 미술감독 2018 <뷰티풀 뱀파이어> 미술감독 2017 <돌멩이> 미술감독 2013 <숨바꼭질> 미술팀장 2012 <베를린> 미술팀장 2011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미술팀 2010 <내 깡패 같은 애인> 미술팀 2008 <나는 행복합니다> 미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