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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송강호 - 눈과 귀가 열린 왕
김현수 2019-07-12

<나랏말싸미>의 세종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게 나쁜 거냐?” 훈민정음을 만들어낸 세종대왕과 그에 얽힌 창제 과정을 다룬 <나랏말싸미>는 그동안 역사책에서 다룬 적 없었던 세종의 모습을 보여줄 영화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하는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와 학자들의 외면, 유교와 불교의 첨예한 종교적 갈등이란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는 지도자이자 수많은 반대파를 이끌고 가야 하는 협상가다. “당시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나이와 지금의 내 나이가 비슷해서 더욱 와닿았다”는 ‘송강호의 세종’은 역사책 속 근사한 위엄을 풍기는 왕이 아니라 현실에 발붙인 인간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살인의 추억>(2003)의 주역들이 16년 만에 다시 모였다.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경우도 드물 것 같다.

=다들 평소에도 워낙 친하게 지내온 동료들이다. 혹시나 다시 한 작품 같이하면 어떻겠나 막연하게 생각만 했을 뿐이지 이렇게 사극으로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도>(2014)에서 영조를 연기한 이후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조선의 왕 세종을 연기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나.

=매 작품 그런 부담을 안고 선택해왔다면 좋은 작품을 못 만났을 것 같다. 영조는 노회한 정치가이자 가족과 갈등을 겪는 인물이기에 세종과는 분명 배경이 다르다. 또 두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점도 달랐기에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사극이라는 특정 장르에 대한 우려, 그러니까 곤룡포와 수염 같은 유사한 분장과 의상에 대한 부담은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예상했나.

=<나랏말싸미>는 한편의 시 같았다. 상업영화로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나리오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영화화할지 솔직히 걱정이 좀 앞섰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바로 그 점을 살리면 가장 대중적인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더라. 우려했던 점들을 대중적인 코드로 빚어내 묵직하게 울림을 준다면 상업적으로 훌륭한 대중적인 영화가 또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자체는 물론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과정을 풀어내는 방법에 있어서는 창작자가 개입할 여지가 많은 역사다.

=드라마를 비롯해 그동안 세종을 다룬 작품은 주로 장영실과의 이야기가 많았다. 한글 창제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신미 스님이라는 역사에 자세히 기록되지 않은 인물을 등장시킨 우리 영화도 그중 하나의 설이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세종의 이야기다.

-조철현 감독은 올해 초 <씨네21>과의 신작 소개 인터뷰(1189호 ‘2019년 한국영화 신작 감독과의 대화’)에서 “정평이 난 역사적 인물을 가능한 한 신선하게 조명하는 것이 시나리오 쓰면서 가장 고심한 부분이었다”고 하던데.

=그것을 위해 일부러 뭔가를 설정하지는 않았다. 백성들과의 눈높이를 낮추고자 하는 애민정신을 지닌 분이라는 걸 영화 곳곳에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려 했고, 왕으로서 신격화하기보다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사도>의 영조를 연기할 때는 일부러 목소리를 허스키하게 긁어가면서 톤을 바꾸는 등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번 세종은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영조 때는 노회한 정치가의 탁함과 삭막함을 전하기 위해 일부러 목을 많이 쉬게 했던 것 같다. 세종은 그와는 캐릭터가 다르기 때문에 좀 걸걸한 내 목소리 그대로 표현했다. 물론 대사의 깊이감을 살리기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세종과 소헌왕후와의 애틋한 관계가 묘사되는 장면들, 또 창제 과정에서 신미 대사와의 불꽃 튀는 접전 등이 시선을 잡아끄는 중요한 신이 될 것 같다.

=소헌왕후와는 아주 짧지만 따스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참 좋은 장면이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신미 스님과의 장면 역시 세종의 성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 될 텐데, 세종은 왕의 한마디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던 시대임에도 한명도 죽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성품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고 또 아주 즐겁게 촬영했다.

-올해 5월에는 <기생충>으로, 7월에는 <나랏말싸미>로 연이어 대중과 만난다.

=<씨네21>이 칸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도 하고 내 일처럼 함께 응원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기생충>과 <나랏말싸미> 모두 배우 인생에서는 중요한 위치에 놓인 작품이다. 작품의 흥행 여부와는 별개로 분명 관객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리라 믿는다. 흔히 여름영화 하면 항상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를 떠올리는데, 여름에도 이렇게 차분한 영화를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 “<나랏말싸미> 커버 스타 인터뷰는 전미선 배우가 세상을 뜨기 전인 지난 6월 25일 미리 진행되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영화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여준 세 배우에 대한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리고 전미선 배우와 나눴던 대화를 좀더 길게 거의 모두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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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