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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픽처스] <파도치는 땅> 임태규 감독 감독, “다음 세대에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이나경 사진 오계옥 2019-06-21

군대 내 폭력사건이 개개인의 내면에 스미는 과정을 서늘하게 그려낸 데뷔작 <폭력의 씨앗>(2017)에 이어 또 한번 ‘폭력’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만든 임태규 감독. 이번에는 1967년 납북 어부 간첩 조사 사건에 연루된 인물과 그 가족을 보여주며, 국가 주도의 폭력으로 뒤바뀐 개인의 삶과 붕괴된 가족관계에 주목한다. “영화 속 인물이 겪은 상흔이 다가올 세대에는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는 임태규 감독과의 대화를 전한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과정을 말해달라.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또 살가운 관계도 아니다.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투영해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야지’ 정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7년 납북 어부 간첩혐의를 받던 분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뉴스를 봤다. 피해자 한분의 인터뷰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겹겹이 보이는 얼굴에서 나온 첫마디가 “아들이 보고 싶다”였다.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운이 좋게도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되어 바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한 지 15분이 넘어서야 타이틀이 등장한다. 그 전후로 공간의 이동이 있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주인공인 문성(박정학)의 여정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성에게 군산은 되돌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지역이다. 그런 문성이 군산으로 차를 몰고 간다. 문성은 아버지의 보상금에만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닐 거다. 티는 안 냈지만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소식이 분명 궁금했을 텐데, 그가 위독하다고 한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시간의 이동, 공간의 이동, 마음의 이동, 그 모든 게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서 그 위치에 타이틀을 삽입했다.

-<파도치는 땅>이라는 제목, 개봉 포스터 속 ‘일렁이는 상처의 소리’라는 문구, 한통의 전화로 아버지의 소식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영화 곳곳에 배치된 파도 소리,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세월호 사건 등 소리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게 많은 영화라고 느꼈다.

=사운드 작업에 내 나름의 야심이 숨어 있는 영화다. 기획 단계에 새만금방조제를 찾았다. 인공물이 생기기 전에는 갯벌이나 바다 혹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을 공간이 변했다는 게 기분이 이상하더라. 공간성이 변한 것처럼 무언가 지워졌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상처일 수도 있고, 현대사일 수도 있다. 사라지고 지워진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와중에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파도 소리인 것 같아서 제목을 <파도치는 땅>이라 짓고, 포스터 속 문구 또한 내가 만들었다. 이런 연유로 파도 소리를 기술적으로도 멋있게 구현하고 싶었고, 사운드 작업에 더 신경을 썼다.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한 롱테이크숏으로 대부분 신이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이지 않은 카메라 구도 속에서 종종 인물의 유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덕에 패닝숏이나 돌리숏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폭력의 씨앗>에도 참여한 손진용 촬영감독과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패닝숏이나 돌리숏은 정확하게 제시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신도 있었다. 사전에 언급한 장면 외에도 2~3번 정도 추가로 숏을 변화해달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앵글이나 사이즈는 얘기하지 않았음에도 적재적소에 숏을 구성해줬다. 일반적인 프레이밍을 하진 않았고, 배우의 동선을 이용하거나 거울 등의 소품을 사용하며, 현장에서 많이 만들어간 편이다.

-<박하사탕>(1999), <아수라>(2016), <생일>(2018) 등에서 음악을 맡은 이재진 음악감독과 작업했다.

=송현영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총괄 프로듀서 소개로 알게 됐다. 그때가 <아수라> 직후였는데,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더라. 너무 유명하신 분이라…. (웃음) 이상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악기로 내는 음이긴 한데 멜로디가 없는 소리를 원했다. 감독님이 내 의견에 맞춰서 완성도 높은 작업물을 만들어주셨다. 다음에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감독님 마음은 잘 모르겠다. (웃음)

-군산에서 대부분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은 서울이다. 서울의 신이 길지 않음에도,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계속 등장시킨다.

=내게는 비정상적으로 큰 그 건물이 어떠한 욕망의 산물 같았다. 간첩사건에 연루된 아버지와 연좌제를 묻는 과거의 상황 때문에 문성은 많은 좌절을 맛봤을 것이다. 그래서 문성을 장악하고 있는 비뚤어진 욕망이 롯데월드타워 건물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마지막에는 뉴스 속 사운드로 롯데월드타워를 등장시켰다. 새해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카운트다운을 준비한다는 뉴스인데, 누구나 상처도 가지고 있고 관계에서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하지 않나. 그 모든 걸 봉합한 듯 묻어두고, 그 건물 앞에 모여 새해 인사를 준비한다는 게 내 기준에서는 정말 이상했다.

-마지막 10분, 과거와 현재의 군산을 교차시킨다. 파도 소리를 바탕으로 직접적으로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과 세월호 사건을 보여주는데.

=아이와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을 어떻게 연결할지가 제일 중요한 도전이었다. 특정 푸티지에서 어떤 가족이 부재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미지를 떠올렸고, 이게 내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왔다. 영화 속 뉴스에서 들려주는 세월호 유족들과 이어지는 지점도 있었고. 두 사건 모두 국가 폭력으로 희생당한 이들이 있지 않나. 이러한 아픔이 다음 세대에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고 싶었다. 3대의 이야기를 그린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었다.

-촬영, 상영, 개봉 등 쉼 없이 달려왔다. 계획해둔 다음 작품이 있는지.

=한국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2~30대들은 어디에도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 채 붕 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러한 상황의 극단적 예로 무국적자를 떠올리게 되었고, 스릴러물 초고를 완성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젊은 세대와 접점이 보이지 않을까. 현재 시나리오 개발 중이다.

● Review_ 학원 사업에 실패하고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던 문성(박정학). 어느 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에 마음이 동요한다. 인연을 끊고 산 지 오래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것.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아버지 때문에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문성은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군산으로 향한다. <파도치는 땅>은 국가 폭력에 희생된 개인과 3대로 이어지는 가족의 상흔을 문성이라는 중심 인물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려낸다. 폭력은 개인의 내면을 무너뜨리고,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를 해체시킨다. 영화는 군산과 잠실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다양한 소리를 통해 가족의 상처를 전하는 동시에, 세월호 사건을 상기시킨다. 이후 세대에는 이와 비슷한 역사적 아픔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일말의 희망을 심어둔다.

● 추천평_ 이나경 다양한 소리로 전해지는 상실과 치유 ★★★ / 이용철 이상한 풍경의 도시를 보았다 ★★★★ / 이화정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묻지 못한 질문들, 풀어야 넘어가는 관계들 ★★★ / 임수연 세월호 이후 한국을 살아갈 어린아이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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