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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O.S.T
2002-05-02

따뜻하게, 소리를 포개다

못된 도시 아이와 허리굽은 시골 외할머니와의 잠깐 동안의 동거기인 <집으로…>는 재미난 탈맥락화를 꾀한다. 콜라, 로봇, 오락기 등의 사물과 비녀, 목침, 요강 등의 사물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것을 보는 일은 일상적 맥락의 확대재생산된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일정한 뒤틀림, 뒤죽박죽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 뒤죽박죽 속에서, 우리는 퍼뜩 우리 현실을 발견한다. 이제는 잘 섞이지 않는, 섞일 수 없는 두 종류의 다른 삶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 이 영화는 차라리 소통 불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다. 감독은 애써 아이와 할머니와의 완전한 소통을 꾀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독의 시선은 애써 따뜻하다. 그 ‘따뜻함’은 그의 철학일 테고 동시에 상업성을 배려한 흔적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단절된 두 현실의 뒤죽박죽을, 바늘에 실 꿰듯 찬찬히 다스려 잘 포개놓아보려 한다. 아이의 오락기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일종의 테크노 음악) 뒤에는, 잘 안 들리지만, 벌레 소리가 깔려 있다. 오락을 하는 와중에 방 안에 벌레가 나타난다. 오락기의 재미난 소음들은 어느덧 약간의 음악성을 띠도록 변주된다. 그 오락기의 소리는 벌레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 아이는 벌레를 죽이라고 야단이지만 할머니는 벌레를 바깥으로 놔준다. 얼마 뒤 오락기의 배가 닳아버린다. 그러자 오락기의 소리가 멎는다. 대신, 그뒤로 포개어져 있던 벌레 소리가 전면으로 올라온다. 성질이 전혀 달라 섞일 수 없는, 그러나 비슷한 주파수의 이 두 소리가 포개어지듯, 감독은 할머니의 목침에 도시 아이를 누이고 다시 그 곁에 할머니를 누이고 싶어한다.

관객의 예상대로 이 영화의 음악은 전원적이다. 이정향 감독의 전작인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도 호흡을 함께했던 김대홍이 김양희와 함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맡았다. 피아노가 틀을 잡고, 전원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오보에, 플루트, 목관악기들이 동원되어 영화의 전원적인 분위기를 이끈다. 리듬은 경쾌하다. 3박자, 4박자, 때로는 5박자의 리듬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2박자풍의 ‘품빠 품빠’ 하는 코믹한 리듬이다. 마림바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코믹함과 전원적인 분위기가 적절히 어울려 신선한 느낌을 자아낸다. 강렬한 사운드를 내는 악기들의 사용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영화 전체에 흐르도록 함으로써 영화는 순한 느낌이 된다. 드라마틱한 굴곡들이 관객을 쓸데없는 흥분상태로 내몰지 않도록 내러티브의 골들을 깎아 거기서 닳고 닳은 시골 마루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 분위기에 부드러운 목관의 소리들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감독은 자칫 암울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영화를 그렇게 가지 않도록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할머니와 손자가 친해져서 영화가 잘 끝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계는 음악에도 품어져 있다. 전원적인 그 음악은, 분위기가 뭉클해지는 대목에서조차 얼마간 경쾌하다. 음악은 관객더러 이 영화를 착잡하게 보지 마라, 보지 마라, 한다. 그러한 요구가 음악에 많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 요구는 일정하게 성공적이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요구가 조금 지나쳐 음악이 약간 버거워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악은 어느 대목에서는 애써 웃음짓고 있다. 때로는 음악이 가라앉고 싶을 때 그러도록 내버려두어도 괜찮았을 것을.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