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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제작기] 정재일 음악감독, “잘 들리지 않는 저음으로 압박감을 나타낸다든가…”
김현수 사진 백종헌 2019-06-12

정재일 음악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괴물>(2006)과 <마더>(2009)에서 이병우 음악감독과 연달아 작업한 이후 두 번째로 <옥자>(2017)와 <기생충> 두편을 함께한 음악감독이 됐다. 음악감독의 이름으로 봉준호의 전작을 분류하자면, <기생충>은 소재도 장르도 심지어 제작 스튜디오도 접점이 없는 <옥자>와 같이 묶이게 된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려 하니, 정재일 음악감독이 “(두 작품을 연달아 맡은 이유란) 간택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말을 잘 듣는 고분고분한 음악감독이기 때문 아닐까(웃음)”라며 겸손함을 내비친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음악감독이 된 것이 “황송하다”고 즐거워하는 그의 음악은 <기생충>의 이상하고 다양한 장르적 색깔을 한방향으로 엮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생충>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음악이 쓰일 방향 같은 게 잡히던가.

=일단 텍스트부터 강렬했다. 대사가 많아 음악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했고, 2017년 말이었나 2018년 초에 시나리오를 먼저 보내줘서 받아 읽고서 크랭크인 한참 전에 감독님과 만났다. 그때는 특별히 본인이 원하는 걸 주문하지는 않으셨다. 다만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찾아보자는 정도로 방향을 세웠다.

-<옥자>는 봉준호 감독이 ‘절뚝거리는 음악’이라는 추상적인 테마를 제공해준 바 있다. 이번에는 어떤 주제로 접근했나.

=앞으로 벌어질 어떤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 이미지에 집중했다. 성북동 산꼭대기에 있는 박 사장(이선균) 집과 거기서 멀리 떨어진 기택(송강호)이 사는 집의 위치 사이. 마치 계단처럼 이뤄진 선율로 전체를 아우르려고 했다.

-<옥자>에서는 강원도 파트에 기타를, 뉴욕에서 오케스트라를, 도살장에서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쓰는 등 공간마다 장르를 달리 선택했는데, 이번에는 장르적으로 어떤 방향을 잡았나.

=시행착오를 겪다가 바로크음악의 분위기, 즉 우아하기도 하고 점잖으면서 트로트 같은 그 느낌이 항상 비틀어진 것을 좋아하는 감독님의 이번 영화와 어울릴 것 같았다. 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이뤄진 현악 오케스트라를 썼는데 이들이 가장 큰 다이내믹을 표현하기 좋은 악기이고 실제로 봉 감독님도 바로크음악을 레퍼런스로 삼으셨다. 박찬욱 감독님 아류가 되지 않을까 우려돼 전전긍긍하면서 작업했다. 박 감독님은 완벽한 바로크음악을 선곡해서 쓰셨는데 나는 엉터리 음악이 나올 테니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다. 완성된 음악을 잘 들어보면 이게 바로크음악인지 낭만파음악인지 모를 정도로 뭔가가 뒤섞였다는 걸 눈치챌 것 같다.

-바로크음악이 아니더라도 ‘이상한’ 음악들이 많다. 사운드트랙 10번 곡인 <야영>에서는 합창과 톱 소리가 등장하고, 17번 곡 <기택의 전두엽>은 SF 영화음악 같다.

=<야영>은 헝가리 10대 소년 두명이 합창을 하는데 알프스 목동의 민요 같은 걸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 곡이 쓰이는 상황이 기택 가족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지만 대놓고 편안함만 있으면 감독님의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아 귀신 소리 같거나 혹은 익살스럽다거나 기괴한 소리를 내는 톱을 삽입했다. 15년 전에 이적의 2집 앨범을 만들면서 톱으로 세션을 한번 한 이후 처음으로 톱을 다시 잡아 연주했다. 그 밖에 제의할 때 많이 쓰는 티베트 종 같은 소리도 있고, <기택의 전두엽>에서는 기택의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어떤 감정을 싣기 위해 잘 들리지 않는 저음으로 압박감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래서 우퍼에서만 나오는 소리도 있다. 콘트라베이스를 우퍼에 넣으면 ‘푸우욱 푸우욱’ 소리만 난다. 전체적으로 음의 조각이 모여 있는 곡이라고 보면 되는데 머리가 찌릿찌릿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기택이 자신의 냄새를 인지하게 되는 어떤 장면에서부터 쓰인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냄새’라는 키워드가 음악을 만드는 방향에 영향을 끼쳤나.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기택의 냄새 장면에서부터 피날레까지 설득력을 지녀야 했기 때문이다. 산수경석도 영감을 줬다.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에 어떤 방식으로 표현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믿음의 벨트랄까”라는 연교(조여정)의 대사가 나오자마자 8번 곡 <믿음의 벨트>가 펼쳐진다. 이 시퀀스는 마치 음악이 전면에서 연기를 하고 인물들이 배경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와 정반대에 있는 곡은 13번 곡 <짜파구리>다. 이때는 철저하게 인물들이 요동치는 상황의 배경음악으로만 기능한다.

=그렇게 의도한 게 맞다. <믿음의 벨트>는 거의 8분에 육박하는데 1부 피날레처럼 느껴지기를 원했다. <짜파구리>는 소동을 보여주는 음악이다. ‘이제 큰일났다’라는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이 칸에서 이탈리아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탈리아의 나훈아’라 할 수 있는 가수 잔니 모란디 곡이 영화에 삽입된 것을 굉장히 재밌어하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 있다. 이 삽입곡은 마치 <옥자>의 지하상가 장면에서 존 덴버의 <Annie’s Song>을 삽입했던 장면 선곡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던데.

=<옥자>의 그 장면은 넷플릭스 내부 시사회 때 기립박수가 쏟아졌었다. 잔니 모란디의 곡 <In Ginocchio Da Te>(그대 앞에 무릎 꿇고)는 감독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미술감독이 현장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놓아두었던 LP를 무작위로 뽑아들고 현장에서 그냥 트신 거다. 그런데 이탈리아 곡이었고 심지어 제목은 ‘그대 앞에 무릎 꿇고’였던 거다. 기택의 가족이 마침 그 장면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완전한 우연의 일치라고 하셨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이후에 흐르는 <소주 한잔>이란 곡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옥자>의 첫 장면인 그룹 연설 장면의 배경음악과 비슷하던데.

=이번 영화는 어떻게 끝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감독님이 관객이 집에 갈 때 소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기에 그런 씁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옥자>의 오프닝 음악과 유사한 게 맞다. 실은 지방 삼류 카바레 밴드의 엉터리 블루스음악으로 시작하다가 뭔가 발랄하지 않은 음악으로 갔다가 다시 삼류 블루스로 돌아오는 스타일을 떠올렸다.

-하나의 테마가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영화도 있는데 이번 사운드트랙 곡은 다 다르다는 느낌이다.

=그건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웃음) <미션 임파서블> 하면 바로 떠오르는 멜로디가 있지 않나. 좀더 그렇게 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초보 단계라 그 작업이 어려운 것 같다. 같은 멜로디로 여러 감정을 만들어야 하니 변주를 엄청 잘해야 한다. 신에만 맞는 음악을 만드는 것은 더 쉽다. 그 점이 아쉽다.

-이번이 다섯 번째 영화음악 작업이다. 돌이켜보면 영화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작업인가.

=사운드트랙 앨범 CD가 <바람>(2009)에 이어 두 번째로 발매됐다. 사운드트랙이 출시되지 않은 <옥자>는 정말 아쉬웠다. 애플 뮤직에라도 올렸으면 좋겠는데 넷플릭스에서 못 내게 했다. 그래서 나는 넷플릭스 가입도 안 했다. 작곡가라는 직업은 클라이언트가 있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어떤 매체든 음악은 주인공을 백업하는 역할인데 결국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주인공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시되고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어마어마한 영화광이었기에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건 있다. 그것이 반영될 때도 있고. 기본적으로는 연출가가 원하는 걸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업이다.

● 내가 꼽은 이 장면!_ 일곱 번째 버전까지 간 <믿음의 벨트>

“정말 꼽기 힘들 것 같다. 항상 영화음악을 작업할 때 오프닝 음악을 만들 때가 맨땅에 헤딩하면서 공들이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서부터 어떤 결을 찾아야 이후의 음악이 풀리기 때문인데, 그만큼 힘들었던 곡이 <믿음의 벨트>다. 워낙 긴 시퀀스이기도 하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곡이 버전 7일 거다. 8분짜리 곡을 7곡이나 만들었다는 뜻이다. 7번째에 간택된 거다. 굉장히 고된 작업이라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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