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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내 영화가 특별하다’는 거품은 완전히 빠졌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9-04-25

<사바하> 이어 <엑시트> <시동> 제작

서울시의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외유내강 사무실은 시끌벅적했다. 신인 필감성 감독이 연출하는 <인질>의 스탭들은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인질>은 올해 초 개봉했던 <사바하>(감독 장재현), 후반작업을 하고 있는 <엑시트>(감독 이상근), 현재 촬영 중인 <시동>(감독 최정열)에 이어 외유내강이 올해 제작하는 세 번째 영화다. 지난해 개봉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너의 결혼식>까지 포함하면 네편 모두 젊은 감독이 연출하는 작품이고, 멜로부터 스릴러, 재난 블록버스터까지 장르가 다양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짝패>(2006) 이후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주로 제작하던 과거와 사뭇 다른 행보다. 외유내강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에게 만남을 청했다. 기자의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자 “누가 (인터뷰) ‘빵꾸’ 냈어? (웃음)”라고 되묻는 모습이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동시에, 최근 대종교가 <사바하>의 사진 사용을 두고 외유내강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에 대한 걱정도 드러냈다.

-<사바하>에서 사이비 교주로 나온 김제석(정동환)을 소개할 때 대종교 창시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홍암 나철 대종사의 사진을 사용한 것을 두고 최근 대종교가 외유내강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고인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실수로 사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종교를 소재로 한 만큼 종교를 둘러싼 논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번 일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 부끄럽다. 이 일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공로에 무지했던 사실을 반성하고 있다.

-<사바하>는 개봉 전까지 노심초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야기의 어떤 점이 좋았나.

=장재현 감독은 외유내강과 연이 없었다. 한데 어느날 그가 전화를 걸어와 “다음 영화를 외유내강에서 찍고 싶다”고 했다. 기승전결로 전개되는 전형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종교를 통해 인간의 거대한 욕망을 다루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종교의 세계관을 취재한 흔적을 보니 어떻게 영화로 만들지, 준비가 잘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상업영화 제작자로서 <사바하>의 세계관이 대중에게 어렵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없었나.

=상업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대중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다보는 게 쉽지 않다. 이정재씨를 박 목사로 캐스팅하면서 박 목사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사바하> 제작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느낀 건, 시나리오에서 논리가 충분치 않은 부분을 뉘앙스만으로 설득하는 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박 목사의 용기와 태도가 관객을 서사에 안내하는 데 주효한 것 같다.

-장재현 감독과 이준규 프로듀서에게 제작비와 회차를 지키는 조건으로 현장을 믿고 맡겼다고.

=간섭을 정말 안 했다. 한번은 이정재씨가 “사장이 현장을 안 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웃음) 그때 “감독, 프로듀서, 배우가 있고, 현장편집본을 보니 약속한 장면을 모두 찍고 있는데 사장이 현장에 나와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감독과 프로듀서가 영화를 잘 찍을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는 게 내 역할이고, 그들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좋은 그림을 찍었다. 모든 제작자가 그렇듯이 흥행 성적은 항상 아쉽지만, 그 또한 내 제작 역량이라고 본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엑시트>가 잘 나왔다는 소문이 충무로에서 돌고 있다.

=우리가 소문내고 있다. (웃음) 대형 투자·배급사의 여름 시즌 텐트폴 영화의 문법을 따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신인감독이 조정석, 윤아 두 배우와 함께 제작비 100억원짜리 영화를 찍는 건 리스크가 있다. 그럼에도 재난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사랑스럽다.

-그동안 외유내강이 만들어온 영화들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재난 또한 현실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다. 거창하게 포장하지 말라. (웃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재난을 겪으면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존재감과 능력을 드러내는데,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다.

-<시동>은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오늘(4월 15일) 21, 22회 차 촬영이 진행된다. 전체 75회 차 정도니까 3분의 1 정도 찍었다.

-인기를 끈 동명의 다음 웹툰 원작인데.

=조성민 외유내강 본부장이 최정열 감독을 만나 얘기를 나눈 뒤 “이걸 하고 싶으니 원작 웹툰을 봐달라”고 요청해왔다. 감독의 전작인 <글로리데이>를 보니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최 감독이 웹툰의 정서를 상업적으로 이해했고, 만들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했다. 우리 또한 이걸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마동석, 박정민, 정해인, 염정아 등 캐스팅이 화려하지 않나. 웹툰과의 싱크로율이 100%다.

-<너의 결혼식> <사바하> <엑시트> <시동> 등 최근 외유내강이 내놓는 영화들을 보면 장르가 다양해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주로 제작하던 회사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한다. (웃음)

=하하.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군함도> 이후 류 감독이 오래 쉬는 대신 김정민 필름케이 대표와 조성민 본부장, 류 감독의 양 날개가 아주 잘 날고 있다. 류 감독이 항상 얘기하는 게, 선배 감독들이 큰 영화를 성공시킨 뒤 부침을 겪거나 과거에 비해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대표, 조 본부장 두 사람을 믿는 건 선배인 류 감독에게 “예스면 예스, 노면 노”라고 정확하게 얘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군함도>(2017) 때부터 필름케이와 공동 제작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이유가 있나.

=<베를린>에 들어가기 전 김정민 대표가 외유내강에서 나와 필름케이를 차렸다. <너의 결혼식>은 김 대표의 설명을 듣고, 외유내강이 해왔던 영화와 다르지만 관객으로서 보고 싶으니 해보자고 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오랫동안 현장에서 노하우를 쌓고, 자신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한 김 대표의 공이 컸다. 그 이후, 외유내강과 필름케이의 파트너십이 생겼다. 우리끼리 농담 삼아 나, 류 감독, 김 대표, 조 본부장을 두고 ‘<사바하>의 사천왕’이라고 한다. (웃음) 네명이 가진 균형감각과 판단이 빛을 발할 때가 있다. 또, 외유내강은 김 대표에게 친정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지금 외유내강에 최적화된 제작 시스템을 찾은 셈이다.

=워낙 김 대표, 조 본부장이 현장 경험이 많고 스탭들을 잘 이끄는 데다가 배우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는다. 둘 덕분에 올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이미 개봉한 <사바하>를 포함해 <엑시트> <시동> <인질> 등 총 다섯편이다.

-옛날 얘기도 해보자. <군함도> 때 류승완 감독도, 강 대표도 마음고생이 꽤 심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군함도>는 여전히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깊이 반성하는 건, 영화에 참여한 스탭과 배우들이 혹독한 평가를 받을 때 제작자로서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당시 쏟아지는 혹평 때문에 당황스러워하다가 영화가 순식간에 극장에서 내려졌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도 ‘왜 그랬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하지만 답이 없는 게 현실이다. 영화는 다양한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 왜곡논란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바하>가 개봉했을 때 ‘외유내강, 군함도’라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영화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게 아니구나 싶었다. 류 감독의 신작이 뭐가 됐든 4인방이 한데 뭉쳐 영화로 승부를 걸어 대중으로부터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승완 감독과 강혜정 대표는 누구보다 독립·예술영화를 사랑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제 그런 명분은 의미가 없다. 명분과 실리 중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했을 때 어떤 슬로건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군함도> 이후 더욱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나와 함께 일을 하겠다는 감독들과 함께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더욱 잘 만들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 외에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엄연한 중견 제작자다. (웃음)

=2004년에 외유내강을 창립했으니 올해로 15년 차 제작자다. 오랫동안 제작을 해오면서 ‘내 영화가 특별하다’는 거품은 완전히 빠졌다. 외유내강 3기의 목표는 생존이다. (1기와 2기는 언제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창립작인 <짝패>를 내놓았을 때가 1기, 류승완 감독이 <부당거래>를 연출해 연출자로서 새로운 길에 진입하고 외유내강은 <해결사>를 제작했을 때가 2기였다. <군함도> 이후부터가 3기다. 이 회사가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동반자로서 류승완 감독이 과거에 비해 달라진 부분은 뭔가.

=연출자로서 여전히 좋은 파트너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항상 귀를 열어놓는다. 예전부터 이런 비판을 많이 들었다. 왜 외유내강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만 만드냐. 겉으로 대답을 안 했지만 속으로 ‘네가 감독과 결혼해 애 셋 낳고 살아봐, 육아하면서 회사를 운영해봐’라고 삭였다. 그런 제작자들이 많지 않다. 난 삶에서 겪어야 할 일들을 다 겪어냈다. 앞으로 헤쳐나갈 일이 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 요즘 생존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어쨌거나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강혜정이라는 제작자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 건 뭔가.

=뻔뻔해졌다. (웃음)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 그건 육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나.

=차례로 21살, 16살, 14살이니 다 컸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에게 하는 얘기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 다행이고, 아이들과 깊이 대화할 수 있어 감사하다. 특히 <군함도>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 아이들이 보여준 부모에 대한 신뢰와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은 우리가 상처를 회복하는 데 큰 힘과 용기가 됐다. 특히, 아이들이 아버지를 격려하고 위로해줄 때 굉장히 뭉클했다.

-엄마와 아빠가 만든 영화 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뭔가.

=아이들이 못 본 영화들이 많은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가 지난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을 때 가족이 함께 내려가 영화를 봤다. 아이들은 삼촌(류승범)이 스크린에 나온 영화를 처음 본 거다. 영화를 보면서 “삼촌이 왜 저렇게 욕을 많이 해, 영화가 왜 저렇게 잔인해”라고 하더라. 아마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빠 영화는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일 거고, <베테랑>(2015)을 보고 많은 대화를 나눴으며, <군함도>도 함께 봤다. 세편은 반드시 기억할 거다.

-그래서 관객은 류승완 감독의 신작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류 감독은 지난 2년 동안 자신의 전작을 복기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검토했다. 류 감독의 아내로서 보면, 그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까닭에 숨 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류 감독이 무언가를 선택하려고 하면 “그게 정말 맞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거듭 확인해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렇게 보면 확실히 여유가 생긴 게 맞다.

-어쨌거나 올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은데.

=너무 많아서 좋은데 싫기도 한 마음이랄까. (웃음) 류 감독이나 나나 “여기가 공장은 아니잖아”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욕심대로 하는 건 아니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힘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행스러운 건 외유내강에서 오래 일을 한,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이 프로듀서로, 감독으로 데뷔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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