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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는 여전히 흐른다
김소미 2019-04-18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길고 세찬 물결을 기억하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 바르다(왼쪽).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88살에 만들고 89살에 내놓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나왔을 때, 전세계 관객이 그녀의 영화가 여전히 아름답고 혁명적이라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유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말을 속삭였다. 하지만 바르다는 영화 바깥에서도 프레임 부수기를 즐기는 아티스트였다. 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2019)로 올해 2월에 열린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찾았고, 명예황금카메라상을 직접 수상했다. 그녀는 은빛과 자줏빛으로 물들인 특유의 투톤 헤어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미꽃이 그려진 실크 가운을 입은 채 연단에 올랐다. 전보다 쇠약한 인상이었지만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듯한 유쾌한 ‘퍼포머’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9일(현지시각), 겨울과 함께 바르다는 홀연히 떠났다. 향년 90살. 암 합병증으로 파리의 자택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 타계하기 한달 전쯤에 카타르의 DFI(Doha Film Institute)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스터클래스를 건강 문제로 취소했지만, 작고하기 며칠 전인 3월 23일에는 프랑스 쇼몽성에서 열린 전시에 들러 자신의 설치미술 <행복의 온실>을 감상했을 정도로 삶의 의지를 보였다. 요란 떠는 법 없던 당신 영화의 엔딩처럼, 그녀의 죽음은 예고된 동시에 불현듯 다가왔다. 컷, 페이드아웃, 그리고 다시 시작될 것만 같은 바르다의 궤적. 이는 아마도 90살이 되도록 끊임없이 현실과 허구를 재배열한 바르다 영화의 강력한 자장 때문이리라. 여기, 60여년간 지속된 길고 거대한 아녜스 바르다의 물결 앞에서 그에 비하면 한참 미약한 추모의 글을 띄운다. 작고하기 직전까지 일하며 24편의 장편영화를 남긴 바르다의 작품 세계를 정리하고, 파리의 통신을 종합한 김나희 평론가가 아녜스 바르다의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글을 보탰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25살의 나이에 약 2만달러의 제작비로 완성한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으로 프랑스영화계에 등장했다. 프랑스의 영화사가 조르주 사둘이 “인간의 의식과 감정, 현실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고 극찬하며 “진정한 첫 번째 누벨바그 영화”라고 말한 덕분에, 그녀는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위대하지만 지루한 수사를 견디는 중이다. 바르다의 부고 기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누벨바그의 대모’라는 칭송은 그녀의 데뷔작부터 진즉 거머쥐었으며, 이후로 평생 잃은 적 없던 실험과 혁신의 태도를 일컫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잘 알려진 대로, 열렬한 영화광도 비평가도 아니었던 바르다가 데뷔작으로 이론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바탕에는 문학, 심리학, 예술사학을 두루 공부하면서 “책처럼 읽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명민한 작가의식이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고향인 섬마을을 찾은 파리의 연인과 생업을 위협받는 어부들의 고기잡이를 나란히 보여주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야생 종려나무>의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챕터별로 병치시키는 스타일에 영향을 받았다. 암 진단 결과를 기다리는 여성가수가 곧 죽음을 맞을 거라는 점괘를 받고 불안에 잠기는 내용의 두 번째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주인공 클레오가 파리 곳곳을 배회하는 시간의 흐름을 실제 러닝타임과 거의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전자는 연관성 없는 두 이미지가 끝까지 병렬을 이루고, 후자는 일반적인 영화에서 잘라냈을 만한 상황이 생략 없이 담긴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공존, 혹은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것들의 지속이 바르다의 영화가 낯선 느낌과 인식을 생산해내는 순간이다. 이렇듯 초창기 극영화에서 아녜스 바르다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엄격한 구조와 리얼리티를 고수하는 스타일로 드러난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나와 타자, 현실과 허구의 공명

바르다의 필모그래피는 어떤 영화를 만드는 시기에 그녀가 어디 있었는지,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지와 비교적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1960년대 말에 남편인 자크 드미 감독의 영화 <모델 숍>(1969) 촬영을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거처를 옮겼을 때, 바르다는 즉각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옴니버스영화 <머나먼 베트남>(1967)에 참여하고 미국 흑인 운동 단체를 촬영한 단편 <블랙 팬서>(1968)를 발표했다. 할리우드에 모여 사는 젊은이들을 몽상적으로 그린 <라이온의 사랑> 또한 히피 운동의 분위기, 앤디 워홀을 비롯한 미국 아티스트와 교류한 흔적 등을 담고 있다. 스튜디오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은 채, 당도하는 사건을 자신만의 언어로 수렴한 것이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탐구하고(<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1990년대에 자크 드미 감독의 죽음을 애도하는(<낭트의 자코> <자크 드미의 세계>) 과정도 같은 시기의 영화에 솔직하게 투영돼 있다. <낭트의 자코>는 자크 드미의 유년 시절을 재현한 장면과 실제 모습을 담은 푸티지 그리고 자크 드미가 만든 영화의 장면을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감을 강조한 형태로 편집한 작품. 현실과 허구의 모자이크로 완성된 남편의 초상은 이 영화에서 부부가 그토록 사랑했던 영화(픽션, 다큐)와 일체를 이룬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 영화로 자화상을 그리려는 의지는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자신이 직접 화면에 등장하거나 내레이션의 화자가 되고, 실제 상황과 각종 자료화면, 극영화의 푸티지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현실과 기억을 넘나든다.

영화를 ‘쓰다’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시선이 병렬, 순환, 봉합되는 놀라운 영화적 과정을 바르다는 영화 쓰기(cine′criture, cinewriting)라는 자신만의 언어로 정의했다. 미학적으로 자유연상, 콜라주, 미장아빔(액자) 기법 등으로 요악되는 바르다의 영화 쓰기는 초현실주의 문학에 대한 관심 그리고 사진작가로 활동한 오랜 경력이 만들어낸 산물처럼 보인다. 아녜스 바르다는 감독 데뷔 전에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서 사진을 배우고 연극제, 미술 축제 등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에서 “처음엔 영화가 언어와 이미지의 결합이 아닐까 하고 간단하게 생각했다”라고 말한 것처럼 ‘작가의 눈, 사진가의 손’을 가졌다는 사실은 그의 핵심적인 정체성 중 하나다. 2000년대 이후로 값싸고 성능 좋은 디지털카메라가 쏟아져 나올 때 바르다가 이를 재빨리 수용할 수 있었던 것도 기계가 그녀에게는 무척 편안한 놀이 도구였던 덕분이다. 즉흥성, 기동성을 자랑하는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해 바르다는 자신의 연상작용에 맞춰 더욱 자유롭게 카메라를 들이댔고,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했다. 바르다의 후기 다큐멘터리 작업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기술의 진보와 창작자의 성숙이 찬란한 조화를 이룬 경우다. 만년필로 정교하게 써나가던 영화를 성능 좋은 볼펜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가볍고 유연하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70대에 접어든 감독은 “가벼움에 대한 관심”을 말하면서 의식적으로 유머와 서정을 견지했고, 이는 미학적으로 심오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바르다의 작품이 따뜻하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로 자리 잡았다. 2001년 제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바르다는 파리의 시장과 수확이 끝난 밭에서 버려진 것을 줍는 사람들을 담은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설명하면서 “나 자신도 사람과 만남과 감정을 ‘줍는’ 여자”라고 했다. 21세기와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노년의 도래 앞에서 바르다는 언뜻 자신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을 찍고 거기에 ‘나’를 오려 붙였다. 그러자 어느새 주변 사람들의 이미지가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거울이 되고, 작가의 내면을 거쳐 사회적 현상이 새롭게 보인다. 분리된 것들이 엉키고 어우러지는 것은 바르다의 초기 극영화에서부터 꾸준히 지속된 테마지만 이 시기에 이르면 더욱 뛰어난 변증법적 성취를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음에도 감상이나 노스탤지어에 함몰되지 않고 보편성을 확보한다는 사실이다. 기억과 재현 사이에 약간의 간극을 두고, 자신의 초상 안에서 모순이나 이중성을 발견하는 태도가 주효했다. 그래서 바르다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삶과 예술을 하나로 바느질하고 있는 일상 노동자와 쉴 새 없이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바르다는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에서 자신은 지금 “수다스럽고 통통한 여자를 연기하고 있다”라고 말한다)이 들곤 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아녜스 바르다와 페미니즘

바르다의 영화에는 독특하고 탁월한 여성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는 성향이 다른 두명의 여성 친구를 통해 1960~70년대 여성 인권 운동의 불씨를 포착했고,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방랑자>에서는 야생에 가까운 극단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여성이 죽음을 맞는 과정을 그렸다. 프랑스판의 원제 ‘집도 없이, 법도 없이’가 선언하는 것처럼 사회적 관습과 불화하는 여성 캐릭터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패션 아이콘이던 제인 버킨을 등장시킨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에서도 제인 버킨의 얼굴은 바르다와 마주보는 상대로서 집중될 뿐, 대중에게 기쁨을 주는 방식으로 재단돼 있지 않다. 같은 해 제인 버킨은 <쿵후 마스터!>에서 어린 소년을 흠모하는 중년 여성의 욕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5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명예황금종려상을, 2017년 미국아카데미 위원회가 주관하는 거버너스 어워드에서 명예오스카상을 받은 아녜스 바르다는 뒤늦은 공로상 수여가 무색하게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편다큐멘터리 경쟁부문 후보로 올렸다. 30살 무렵부터 누벨바그의 대모로 불렸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자기 길을 걸어간 아티스트. 그녀는 자신이 여성감독으로 과소평가받았다거나 간과되었다는 시선 또한 맹목적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랐다. 예술가로서 언제나 너르고 복잡한 진실성의 가치를 우선하며, 투쟁에서도 표현의 독창성을 고민했다. 명예오스카상 수상 당시, 바르다는 영화에 대한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고 싶다면서 무대 위에서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손을 잡고 재즈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췄다.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새로운 댓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이 영상은 여느 구호만큼이나 즐겁고 호기롭게 동시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영화가 살아 있는 한, 기억할 것

벨기에 태생인 아녜스 바르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가족과 함께 프랑스의 항구도시 세트로 이주했고, 한동안 보트 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여러 개의 거울을 설치하면서 시작되는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은 그런 의미에서 바르다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중 가장 깊고 회고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감독의 생애와 작품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아녜스 바르다에게 보내는 고별사를 대신하고 싶다. 영화의 말미, 바르다의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데 손님들 모두 선물 대신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온다. 행복한 파티가 끝나고 이튿날, 바르다는 집 뒷마당에 앉아 자기 나이보다도 더 많이 모인 빗자루들을 바라본다. 꽃이 풍성한 봄날의 정원 곳곳에 풀과 나무처럼 심어진 빗자루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사진적 구성이 돋보이는 장면 연출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설치예술처럼 보인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가운데 앉은 바르다는 액자를 들고 있는데 액자 속에는 액자 바깥에 있는 바르다의 모습이 중첩돼 있다. 카메라가 서서히 줌아웃을 시작하면, 화면은 넓어지고 액자 속 이미지도 확장된다. “모두 어제 일어난 일이지. 맞아, 모두 과거가 됐어.” 바르다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그래도 이미지와 결부된 이 순간의 감각만큼은 끝까지 남을 거야.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기억할 거야.”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에선 바르다의 지난 영화들의 제목이, 친밀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차례로 떠오른다. 언어, 이미지 그리고 사람과의 여러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설치하고 해체했던 예술가. 아녜스 바르다는 갔고, 이제 기억의 주체는 우리가 됐다. 인간과 달리 영화는 죽지 않을 것이므로, 그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 사실에 안도한다.

● 필모그래피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2019)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2008) <시네바르다포토>(2004)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년 후>(2002)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 <자크 드미의 세계>(1995) <시몽 시네마의 101의 밤>(1995) <레 데무와젤르 런트 우 25언스>(1993) <낭트의 자코>(1991) <쿵후 마스터!>(1988)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1988) <아무도 모르게>(1987) <방랑자>(1985) <도큐멘추어>(1981) <벽, 벽들>(1981)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 <다게레오타입>(1976) <나우시카>(1970) <라이온의 사랑>(1969) <창조물들>(1966) <행복>(1965)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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