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기자, 배우 이학주, 강예원, 김성기 감독, 장영엽 기자(왼쪽부터).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 영화를 찍었던 순간들이 계속 생각난다.” 배우 이학주의 말대로 4월 10일 밤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용씨네 <왓칭> 관객과의 대화(GV) 시사회는 감독, 배우에게는 촬영현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관객에게는 영화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장영엽, 김성훈 <씨네21> 기자가 진행한 ‘용씨네 PICK’은 <왓칭>을 연출한 김성기 감독, 배우 강예원, 이학주 세 사람이 게스트로 참석했다. 김성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왓칭>은 워킹맘 영우(강예원)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기 위해 회사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원인 모를 사고를 당한 뒤 누군가에게 납치당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스릴러다. 그를 납치한 범인은 회사 경비원 준호(이학주)다. 영우는 준호의 감시를 뚫고 폐쇄된 지하 주차장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고 한다. 장영엽 기자는 “도시괴담 같기도 하고, 지하 주차장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스릴러라 더욱 오싹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는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영우를 납치한 범인의 정체도, 납치 동기도 드러내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대담하고, 영우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과정을 집요하게 그려낸 영화”라는 감상을 내놓았다.
<왓칭>은 김성기 감독이 평소 지하 주차장에서 느낀 공포를 영화로 만들면 무섭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가끔씩 휑한 주차장에 혼자 있으면 공포감이 몰려든다. 마침 지하 주차장을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영화 <P2>(감독 프랑스 칼포운, 2007)를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그 이야기를 한국적으로 새롭게 만들고 싶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영엽 기자는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공포가 누군가가 내 삶을 엿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나온다”라며 “CCTV를 지하 주차장이라는 공간과 결합시킨 소재가 시의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기 감독은 “보통 CCTV는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가 발생했을 때 범인을 잡기 위해 설치한 도구이지 않나. 그게 범죄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며 “블랙박스니 홈비디오니 일상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돼 녹화되고 있다. 단 하루라도 그것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 생각을 지하 주차장과 엮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구체적으로 대답했다. 장영엽 기자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참고한 실제 사건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김 감독은 “민희(임지현)가 지하 주차장에서 납치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산의 모 백화점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한 장면”이라며 “관객 여러분도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탈 때 차 키로 멀리서 문을 열면 안 된다.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강예원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평소 지하 주차장을 오가며 느낀 감정과 기시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지하 주차장을 걸을 때 그곳에서 나는 소리에 매우 예민한 편”이라며 “혹여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지 않을까? 누군가가 차 안에 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하는데 그때 느낀 불안감과 공포감이 시나리오에 잘 정리되어 있더라”고 말했다. 또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누군가가 CCTV를 통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다. 평소 느낀 감정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우와 준호의 숨가쁜 숨바꼭질과 추격전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까닭에 두 역할을 각각 연기한 강예원과 이학주의 호흡이 중요하다. 김성훈 기자는 강예원을 두고 “<해운대>(2009), <퀵>(2011), <날, 보러와요>(2015) 등 전작에서 유독 고생을 많이 하는 역할을 맡았고, 열과 성을 다해 그런 역할을 소화해내는 배우”라고 소개했다. 강예원은 “고생하는 팔자인가 보다. (웃음) 실제로는 편한 게 좋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인데 유독 영화에서는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다”며 “<날, 보러와요> 때 맡은 역할은 피해자고, 이 영화에선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주체적인 여성이다. 어떤 작품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연기가 잘 나오면 된다는 욕심 때문에 고생을 자초한 면도 없지 않은데 내 욕심이 그렇게 많나. (웃음)”라고 말했다.
영우가 준호의 감시를 벗어나 지하 주차장에서 탈출하는 게 서사의 목표라면 영우를 납치한 준호는 시종일관 극에 서스펜스와 공포감을 불어넣는 역할이다. 장영엽 기자는 “준호가 흥미로웠던 건 말투가 공손하고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며, 심지어 도망치는 영우를 잡기 위해 쫓아가지도 않는다”며 “악역으로서 액션이 많지 않은데도 목소리나 제스처만으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준호에 어떻게 접근하려고 했나”라고 물었다. 이학주는 “처음에는 보통 사람과 많이 달라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촬영 전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를 구축한 것도 그래서”라고 대답했다. 김성훈 기자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준호가 영우를 납치하는 행동이 이해되던가”라고 질문하자, 이학주는 “준호는 납치라고 생각지 않고 영우를 초대해 식사를 같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일동 폭소)”며 농을 던지면서 “사실 공감 능력이 전혀 없고 자신의 감정이 전부인 준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재치 있게 대답했다.
두 배우만큼 지하 주차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이 영화의 관건 중 하나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지하 주차장은 인천 송도에 있는 한 주차장으로, 이곳에서만 50일 가까이 촬영이 진행됐다. 장영엽 기자는 “층마다 각기 다른 역할이 있는 것 같다. 공간을 설계하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김성기 감독은 “공간이 제한되어 있는 까닭에 배경(주차장 벽)이 늘 비슷해 공간적으로 분리해야겠다 싶었다”며 “준호가 일하는 경비원 사무실은 그곳에 직접 지은 세트고, 준호가 최 실장(주석태)과 민희를 납치한 지하 5층은 다른 공간과 색감을 다르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가 “한달 넘게 대부분의 장면을 지하 주차장에서 찍다 보니 햇빛을 보지 못해 우울했을 것 같다”고 얘기하자, 김 감독은 “비가 와도 해가 떨어져도 찍을 수 있어 예산을 많이 절약했지만 단점도 많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촬영하기 위해 아침에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면 지옥문 같은 느낌이 들더라. (웃음)”며 “2월에 촬영했는데 지하 주차장 안은 뼈가 시릴 만큼 으슬으슬했다. 강예원씨가 그곳을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어 누구도 그 앞에서 춥다고 얘기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영우와 준호의 비하인드 스토리, 강예원, 이학주 두 배우가 꼽은 카타르시스를 느낀 순간 등 다양한 촬영 뒷이야기들이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씨네21>과 CGV용산아이파크몰의 용씨네 PICK은 앞으로도 매달 진행되며, <씨네21> 독자 인스타그램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