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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런 키스>가 보여주는 첫사랑의 매력
김현수 2019-04-04

순정 만화 클래식은 영원하다

미세먼지는 잠시 잊자.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한편의 청춘영화가 있다. <나의 소녀시대>(2015)로 전국 4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만 청춘 멜로영화의 저력을 보여줬던 배우 왕대륙프랭키 첸 감독이 다시 뭉쳐 만든 영화 <장난스런 키스>다. 우선 제목이 눈에 익은 이유가 있다. 일본과 대만, 한국에서 여러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진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대만에서만 이미 두 차례 드라마화된 작품을 다시 영화화한 이유는 아마도 닳고 닳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특별한 재미 때문이리라. 하늘 아래 더이상 새로울 것 없다는 학창 시절 첫사랑 사수 스토리는 보고 또 봐도 왜 지루하지 않은 걸까. 대만 청춘 스타로 떠오른 왕대륙, 그리고 주성치 감독이 <미인어>(2016)로 발굴한 신예 임윤의 통통 튀는 매력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지 모른다. 그때 그 시절의 연애가 그러했듯, 뻔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러브 스토리와 두 배우의 무한 매력을 미리 짚어봤다.

만국 공통의 신분 격차 로맨스

새 학기 등교 첫날, 한 소녀가 교정에서 우연히 잘생기고 똑똑해서 인기가 많은 남학생과 입술이 닿는 사고를 겪는다. 각자 자기 갈 길을 가다가 미끄러져 부딪쳤는데 하필 입술이 부딪치고 만 것. 그길로 그녀는 남학생을 흠모하기 시작해 고백하기에 이르지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보기 좋게 거절당해 웃음거리가 된다.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학업과 달리 연애에서만큼은 저돌적인 위안샹친(임윤)은 사랑에 무감할 것 같은 모범생 장즈수(왕대륙)에게 “사랑에 성공할 날은 반드시 온다”라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선언한다. 말 못할 사연도 있고 할 일도 많은 즈수는 그런 샹친이 귀찮지만 적극적인 그녀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점점 빠져든다. 프랭키 첸 감독의 <장난스런 키스>는 지난 10여년간 대만, 청춘, 로맨스라는 키워드를 앞세워 성공했던 거의 모든 영화들의 장점을 한데 모아놓는 시도를 한 작품이다. 구김살 없는 소년, 소녀의 러브 스토리란 뻔할 수밖에 없는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이를 앞선다. 최근 트렌드인 ‘복고’적인 설정, 로맨틱 코믹물의 단골 아이템인 신분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스토리의 골격을 이룬다. 우리가 그동안 좋아했던 대만 청춘영화의 모든 요소들, 여기에 물 흐르듯, 순서에 맞춰 등장한다. 영화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 속 그곳’ 테마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대만의 관광명소 지룽 강변, 똥이엔샨 삼림공원의 아름다운 모습도 포함된다.

소년 소녀의 사랑에는 힘이 있다

두난 고등학교의 거의 꼴찌 샹친과 만년 1등 즈수의 이루어질 듯 말 듯한 사랑 이야기는 둘 사이의 신분과 성격의 확연한 차이로 긴장감을 형성한다. 학교 최악의 낙제생들만 모인 F반의 샹친은 즈수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리고 그전에 적어도 즈수에게는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 전교 100등 안에 들겠다고 선언한다. 전교생 모두가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관객은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며 성장해나갈 것을 잘 알고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원작 만화와 드라마의 스토리 라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난한 샹친의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빠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신세질 그곳이 하필 즈수의 집이라는 점, 그리고 즈수의 부모가 성공한 사업가이기에 집이 거대한 저택이라는 점도 신분 차이를 모티브로 한 로맨틱 코믹물에서 예상 가능한 범주 안의 설정이다. 즈수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모범생이었지만 꼴찌 주제에 100등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하듯 덤비는 샹친으로 인해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급기야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계획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너무나도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은 사실 서로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보완할 수 있는 사이지만 아직 그걸 알아차리진 못한다. 샹친과 즈수의 고등학교 시절이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면, 영화의 중반부 이후에는 두 사람의 대학 시절 이야기가 펼쳐진다. 수학능력시험이라는 거사를 앞두고 벌어졌던 어떤 위급한 상황이 하나의 독자적인 에피소드처럼 등장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힘주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들의 대학 시절과 중요한 진로 결정을 하는 시기다. 두 사람은 각자 태어난 집의 크기가 달라 삶의 방향도 다르다고, 즉 신분차이 때문에 살아가는 방향도 다를 거라 예상하지만 그로 인한 갈등과 화해의 과정은 ‘장난스런’ 연애 이상의 감정을 선사한다. 이는 10대는 물론 20, 30대 관객층까지 둘의 연애담에 공감하고, 자신의 감정을 대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이 배우들을 주목하라

주성치 감독의 <미인어>로 얼굴을 알린 배우 임윤은 <장난스런 키스>의 원작 만화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와 연극 등에서 변주되었던 이 시대 최고의 흙수저 출신 학생 샹친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낸다. 고교시절에는 연애에 있어서는 철벽 수비를 자랑하는 즈수에게 다가가기 위해 온갖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고, 대학에 가서는 즈수 주변을 맴돌며 외롭게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는 감정이 풍부한 멜로드라마의 연기까지 해야 하는 다채로운 역할. 임윤은 기존의 다른 드라마 주인공들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매력을 선사한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임윤의 씩씩함은 극의 활력을 배 이상 상승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왕대륙. 그는 2016년 <나의 소녀시대>에서 쉬타이위를 연기하며 모든 여성들의 ‘첫사랑 연인’이자 스타로 등극했다. 싸움은 잘하는데 사랑에는 서툴고, 매사에 건들대지만 여자에게 물리적인 해를 가하지는 않는 ‘츤데레’ 남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민소매 티셔츠와 오토바이를 적당히, 느끼하게 소화할 줄 아는 ‘복고적인’ 남자였다. 마치 1990년대 유덕화가 연기했던 나쁜 남자의 순한 버전 같기도 했던 왕대륙은 <장난스런 키스>에서는 이전의 그와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반항아 이미지보다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그러나 뒤에서는 뭐든 챙겨주고 있는 듯한, 전형적인 ‘실장님’ 스타일이랄까. 어쩌면 그에게 반항아 이상의 변화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데뷔작 이후 줄곧 맡아온 역할이 오토바이 모는 거리의 반항아(장이머우 감독의 딸 장모 감독의 데뷔작 <28세 미성년>), 홍콩영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주윤발의 마크(딩성 감독의 <영웅본색4>(2017))와 같은 캐릭터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번 영화는 그가 이십대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풋풋한 캐릭터를 마지막으로 쏟아낸 느낌이다.

더불어 이 영화는 프랭키 첸 감독 자신이 직접 전편 <나의 소녀시대>에서 창조한 청춘물의 에너지를 그대로 옮겨놓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두 주연배우를 비롯해 영화 곳곳에 <나의 소녀시대> 시절의 배우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나의 소녀시대>에서 학생회장 역을 맡았던 배우 이옥새는 <장난스런 키스> 리메이크 버전 드라마에서 즈수를 연기했던 인물. 린전신(송운화)의 친구로 출연했던 간정예, 곽문이, 채이진, 정인성, 허진영 등의 또래 배우들이 샹친과 즈수 주변에서 이들을 응원하는 역할을 소화하니, 전작의 팬이라면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길 바란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신스틸러는 이연걸의 <보디가드>(1994), <주성치의 파괴지왕>(1994) 등에 출연했던 배우 종려시의 활약이다. 그녀는 극중 즈수의 어머니로 등장해 두 사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프랭키 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서 원작 만화와 드라마가 지니고 있는 디테일한 요소를 거의 살리되 배우들이 온전히 만들어갈 수 있는 상황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때문에 허술한 장면도 적지 않다. 가령 고등학교에서 시작해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까지의 기나긴 러브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지 않다거나, 때로는 성급하게 다음 에피소드로 건너뛰는 장면도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대만 청춘영화’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또 하나의 재밌는 시도라는 점에서, 이 장르의 팬들에게는 건너뛸 수 없는 작품이다. 뭣보다 임윤과 왕대륙 두 배우가 지닌 매력을 어찌 거부하리!

● 무한 리메이크 중인 <장난스런 키스>의 계보

<장난스런 키스>의 원작인 일본 만화 <장난스런 키스>는 여러 차례 다양한 매체에서 영상화됐기에 그 계보가 꽤 복잡하다. 먼저 다다 가오루 작가가 1990년 6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잡지 <별책 마가렛>에 연재했던 만화는 작가가 완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미완결 상태(23권까지 연재)로 남아 있다. 원작은 당시 일본에서 약 3500만부가 발행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여러 차례 드라마로 제작됐는데, 첫작품은 1996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아사히TV>에서 가시와바라 다카시와 사토 아이코 주연의 9부작 드라마로 방영됐다. 이후 만들어진 여러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드라마는 2005년 대만에서 <악작극지문>(惡作劇之吻)이란 제목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당시 대만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시즌2까지 이어 제작됐다. 총 30화 분량으로 만들어졌는데, 팬들 사이에서 원작 만화를 가장 충실하게 각색한 각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 즈수와 샹친을 연기한 배우 정원창, 임의신은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대만 버전의 오프닝 주제가 Lara(양심이)&Jason(왕위등)의 <Say U Love Me>도 큰 인기를 모았다. 2008년 4월부터 9월까지 <주부닛폰방송>과 <TBS>에서 만화를 바탕으로 방영된 동명의 TV애니메이션도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생전에 남긴 자료를 토대로 엔딩을 보완해 완결시킨 작품이라 의미를 더한다. 이후 한 차례 연극으로 만들어졌으며 2010년에는 한국에서 동명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주연 김현중, 정소민). 2013년에는 일본에서 원작과 다른 오리지널 스토리를 창작해 <장난스런 키스 Love in TOKYO>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키 호노카와 후루카와 유키가 주연을 맡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방대한 역사를 품고 있어, 고교시절에 이어 직장생활을 하는 부분이 시즌2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극장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미조구치 미노루 감독의 연출로 <장난스런 키스 더 무비1: 하이스쿨 편> <장난스런 키스 더 무비2: 캠퍼스 편> <장난스런 키스 더 무비3: 프러포즈 편>이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차례차례 시리즈로 공개됐다. 최근에 제작된 작품은 2017년 대만에서 리메이크한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 Miss in Kiss>다. 이렇게 수많은 판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캐릭터와 관계는 원작에서 거의 변함이 없다. 매사에 서툴고 나사가 빠진 듯 행동하지만 근성만큼은 타고난 코토코와 명석한 두뇌뿐만 아니라 운동까지 잘하는 완벽한 나오키는 극과 극의 성격 탓에 온갖 갈등을 빚지만 결국 결혼을 하고 이후 간호사와 의사로서 멋진 삶을 꾸려나간다. 이들 작품 중 애니메이션 버전은 두 사람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는 에피소드까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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