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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픽처스]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 어떤 이야기를 퍼뜨릴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9-03-22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두 주인공 장혜영 감독과 동생 장혜정씨는 함께 노래를 부른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한살 터울의 자매는 최근에야 함께 무사한 미래를 꿈꾸게 됐다. 장혜영 감독은 2017년 6월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같이 생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하는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를 통해 공개했다. <어른이 되면>은 다양한 매체에서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을 이야기해온 장혜영 감독의 첫 영화다. “동생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다니!” 동생을 ‘덕질’하다 최근 한국 YWCA에서 수여하는 ‘젊은지도자상’까지 받게 된 장혜영 감독을 만났다.

-동생 장혜정씨는 자신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좋아하나.

=관객과의 대화(GV)가 있을 때 혜정이한테 “GV만 참석할래? 영화도 볼래?” 하고 물으면 늘 영화를 보겠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등장하는 영상을 보는 걸 좋아한다. 영화 개봉 이후 나르시시즘이 더 심해졌다. (웃음) 최근 유은정 감독님이 찍은 발달장애인의 영화관람에 대한 단편에도 참여했다. 혜정이가 극장에서 영화 보는 모습을 찍었는데, 그때 극장에서 상영한 영화도 <어른이 되면>이다. 영화를 보는 혜정이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처음엔 유튜브에 동생과의 생활을 공개했다. 이후 책과 영화 등 다양한 매체로 두 자매의 동거기를 기록했다.

=장애가 있는 동생을 시설로 보내면서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사적인 불행이자 비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단순히 사적인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인 불평등의 답습이고 재생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는 안개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그릇에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역시 내겐 그릇 중 하나다. 이야기를 어디에 어떻게 담아서 보여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가능한 플랫폼은 다 활용해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면 좋겠다는 명확한 생각이 있었고, 할 수 있는 한 시끄럽게 떠들기로 했다. (웃음)

-일상을 가볍게 보여주는 유튜브와 달리 영화 <어른이 되면>을 만들 때는 보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을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놓치지 않으려고 한 건 이 영화가 장애인영화가 아니라 삶에 관한 영화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가 주제지만 또한 장애가 주제가 아닐 수도 있는 영화, 장애보다 삶이 부각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동생이 시설에서 보낸 시간은 언급하지 않는다. 장애인 보호 시설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을 텐데.

=시설 이야기가 등장하는 순간 시설과 지역사회, 시설에서의 삶과 바깥에서의 삶이라는 대비가 부각될 것 같았고, 시설에 대한 이야기의 스펙터클에 다른 이야기가 묻힐 것 같았다. 인권침해 역시 중요한 주제지만 무엇에 더 집중할지 선택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시설 밖에서 살며 우리가 맞닥뜨리는 문제가 뭔지,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이에 관한 얘기를 경쾌하게 전하는 거였다.

-동생의 탈시설은 감독 본인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일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동생의 자립을 돕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

=동생의 존재는 우리 가족의 숙제였다. 우리의 삶과 다른 곳에 있는 혜정이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 동생이 있던 시설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가 해결되는 양상을 보면서 시설이 전문적이고 인간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호자들 역시 시설의 문제가 공론화되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와 한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동생의 삶이 내 삶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이 원칙에 위배되는 현실을 목격했다. 보호의 이름으로 행하는 인권침해에 대해 알고 난 뒤엔 선택해야 했다. 알고도 행동하지 않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할 것인지. 이건 어떤 가치를 좇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충분히 비겁했기 때문에. 동생을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물론 그 사랑은 실제로 존재했지만, 동시에 나는 엄청난 차별을 하고 있었다. 내 삶을 바라보는 눈과 동생의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랐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딴곳에서 남이 정해주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건 명백한 학대인데, 그걸 보호라 믿고 18년이나 지냈다. 가족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게 탈시설을 하고, 이 모든 작업을 하게 된 가장 큰 힘이다.

-영화에 “아직 우리에겐 해본 것보다 해보지 않은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동생과 같이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지 않는 세계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혜정이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라는 세계관을 가지면 좋겠다. 혜정이가 원한다면 그게 뭐든 일단 한번 해보려 한다.

-앞으로도 여러 매체를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할 생각인가.

=내겐 형태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퍼뜨릴 것인가가 중요하다.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노래를 만든다기보다 전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노래로 만드는 것과 같다.

● Review_ <어른이 되면>의 주인공은 13살 때 가족 곁을 떠나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생활해온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 장혜정, 그런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온 언니 장혜영이다. 혜정의 둘째 언니이자 연출자인 장혜영 감독은 18년 동안 떨어져 지낸 동생과 함께 살며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했고,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들었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서야 동생의 삶을 동생 스스로 선택한 적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장혜영 감독은 발달장애인의 가족이자 누구나 평등하게 인간적 존엄을 누려야 한다고 믿는 시민이자 인간으로서 성찰하고 질문한다. “왜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야 하는지.” 주제는 묵직하지만 영화는 경쾌하다. 커피와 노래와 춤추는 걸 좋아하는 예측 불가능한 혜정, 혜정에게 사회적 규칙을 가르치고 세상의 재미를 맛보게 해주는 속 깊은 언니 혜영. 두 사람이 빚어내는 하모니가 아름답다.

● 추천평_ 김소미 별것 아닌 당연한 행복을 위한, 긴 여행의 첫 번째 기록 ★★★★ / 박평식 생각도 온정도 많은 둘째 언니 ★★★ / 이용철 아름다운 자매 일기 ★★★ / 장영엽 함께 살아간다는 건 서로의 시간을 나눈다는 것 ★★★ / 황진미 결코 녹록지 않은,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함께 사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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