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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의 밤과 안개> 정성일 감독, "거울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는 과정에 관한 영화이므로"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8-11-29

소거법으로 접근한다면 한국의 영화평론가 중 최후에 남을 이름은 정성일이 아닐까 싶다. 비평의 덕목이 영화를 새롭게 보고, 다시 보고, 그 안에서 창작자조차 간과했던 미지의 언어를 발굴하는 것이라면 한국영화계에서 평론가 정성일이 지나온 걸음을 따라잡을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분석은 성실하고, 언어는 꼼꼼하며, 통찰은 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평론가로서 그가 지닌 최상의 미덕은 거의 광적이라고 해도 좋을 호기심에 있다. 정성일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질문으로 영화의 심연을 마주하며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왔다. 그러나 영화를 잘 보고 제대로 말하는 것과 잘 찍는 것은 때때로 다른 영역의 재능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백하자면 감독 정성일의 첫 영화 <카페 느와르>(2009)를 봤을 때 나는 평론가와 감독 사이 불투명한 거리에 대해 고민했다. 다시 고백하자면 두 번째 영화 <천당의 밤과 안개>(2015)를 본 뒤 의심의 안개는 깔끔하게 갰다. 정성일이라는 이름 앞에 감독, 평론가 어떤 직함을 붙인다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정언명령. 정성일은 영화를 사랑한다. 그의 질문과 분석, 심지어 영화를 찍는 과정까지 실은 영화를 향한 탐구이자 애정고백이다. 질문과 탐색 끝에 결국은 스스로 카메라를 든 사람. 왕빙 감독의 촬영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천당의 밤과 안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영화란 무엇인가.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과정을 감독 정성일은 235분의 영화에 담았다. <천당의 밤과 안개>의 개봉을 핑계 삼아 구태의연하고 쑥스러워 입에 올리기도 힘들었던 그 질문을 3시간 가량의 인터뷰로 풀어 전했다.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영화는 무엇일까요.

-<천당의 밤과 안개>가 드디어 개봉한다. 2012년에 촬영했고 2015년에 영화제를 통해 공개됐으니 참 오래 걸렸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극장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첫 영화에서 이미 배웠다. 영화는 완성되고 나면 자기의 운명이 있기 때문에 그 운명에 맡겨야 한다. 그걸 경험으로 알면서도 이렇게 오래 미뤄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 ‘아, 정말 극장 개봉을 할 수 있을까.’ 그 이야기를 왕빙 감독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의 영화는 중국에서 한편도 개봉한 적이 없다고 나를 위로하더라. (웃음) 지금 개봉이 결정나서 기분이 좋다. 개봉일이 결정되니 오랜만에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다시 봤다.

-어떤 영화는 어느 시점에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2015년 <천당의 밤과 안개>를 봤을 때와 지금 다시 봤을 때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연출한 임권택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 <녹차의 중력>과 <백두 번째 구름>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니 세편의 영화가 같은 시기 관객과 만나는 셈이다.

=과정을 설명하면 좋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천당의 밤과 안개>가 다 끝나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들어간 게 아니다. 임권택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먼저 시작했고 그때는 <천당의 밤과 안개>를 찍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임권택 감독에 관한 영화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님을 찾아뵙고 감독님 영화 현장을 찍고 싶다고 했을 때 금방 시작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영화가 엎어지고, 다음 영화 엎어지고.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위해 팀은 꾸린 상태였다. 일상생활을 찍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진전이 없었다. 그때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CINDI)를 하고 있었는데 왕빙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왔다. 왔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왕빙 감독과 한여름 날의 구름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문득 이 사람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신 영화의 현장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돌아가면 연락하겠다고 말했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더라. 그해 겨울에 베이징에서 답장이 왔다. 베이징에 일주일 안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준비해서 갔다. 그렇게 <천당의 밤과 안개>를 끝내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돌아갔다. 그런 의미에선 현재진행형의 영화라고 해도 좋겠다.

-문득 이 사람을 찍고 싶다는 느낌이 어떤 걸까.

=왕빙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뭔가 기적처럼 보인 것이 있었다. 카메라 혹은 영화가 한 사람과 동행하는 느낌. 그건 완성된 영화를 본다고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찍이 경험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물론 큰 기대는 없었다. 왕빙 감독의 영화가 중국에서 금지된 영화이고 공식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공안들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 현장에 중국인도 아닌 한국 사람이 간다는 것, 더군다나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누가 옆에 있다는 것은 굉장히 성가신 일이다. 그런데 한여름에 무심코 앉아 있는 이 사람에게, ‘지금’ 부탁하면 왠지 들어줄 것 같았다. 부탁을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2013)의 현장에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절반 이상은 전작 <세 자매>(2012)의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중국 전역을 떠돈다.

=왕빙 감독은 자신이 무엇을 진행하는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중국에 가서 알게 된 것인데, 왕빙 감독은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는다. 영화감독은 한편의 영화가 끝나야 다른 영화로 들어가지 않나. 나는 영화의 방법론에만 너무 익숙했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여러 편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베이징으로 떠날 때나 만났을 때 왕빙 감독에게 물어도 그는 대답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서울에서는 베이징으로 바로 가는 것보다 쿤밍공항으로 가는 게 빠르다. 그런데 계획을 모르니까 나는 베이징을 우회해서 쿤밍으로 갔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왕빙 감독이 “우리는 정신병원으로 간다”라고 말하더라. 정신병원을 찍는 줄 알았다. 그런데 쫓겨났다. (웃음) 그는 병원에서 줄곧 기다리면 언젠가 영화를 찍겠지만 나는 돌아와야 했으므로 ‘망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감독이 “정신병원에서 기다리는 건 계속 진행하고 우리는 <세 자매>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자”고 하더라. 물론 <세 자매> 어머니를 만나는 중에도 한쪽에선 계속 정신병원 섭외를 했다. 좀더 머물러 있었더라면 <비터 머니>(2016)까지 따라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천당의 밤과 안개>는 왕빙 감독의 특정 작품이 아니라 그의 영화 현장 전체의 중간에 들어가서 중간에 나온 것이다.

-왕빙 영화의 중간에 들어가는 시작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마무리를 결정하고 현장을 빠져나온 건 감독 정성일의 선택이었다.

=왕빙 감독이 정신병원에서 영화를 찍던 어느 순간 우리가 왕빙 감독의 영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원칙은 어떤 경우라도 영화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이 영화를 포기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떠났다. 정신병원에 들어갔을 때 카메라 두대만 허락되었다. 찍고 있는 장면을 또 뒤에서 찍고 있으니까 정신병원 간호장이 어느 순간 우리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때 미련 없이 빠져나왔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정신병원을 찍으러 간 것이 아니라 왕빙 감독, 왕빙의 영화 현장을 찍으러 간 것이고 충분히 원하는 걸 발견했다고 판단했다.

-<천당의 밤과 안개>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제목을 먼저 결정하지 않는다. 제목을 먼저 결정하면 제목이 주는 힘이 너무 세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봐. 시작할 때는 그냥 “왕빙 프로젝트”, “임권택 프로젝트”라고 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온천이 유명한 중국 윈난성의 한 지역을 지나갈 때 표지판에 한자로 “열대천당”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천당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나. 그 말이 오래도록 내게 남아 있었다. <천당의 밤과 안개>는 두 군데를 오가는 영화다. 정신병원이라는 정신의 ‘밤’과 ‘안개’가 자욱한 윈난 지역. 그래서 두개를 한데 합쳐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제목을 가진 두편의 영화가 있지 않나.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1955)와 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의 밤과 안개>(1960). <천당의 밤과 안개>라는 제목을 떠올렸다가 문득 ‘이미 존재하는 두개의 영화로부터 제목을 가져왔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영화가 나한테 그렇게 대답을 했으니. 나는 영화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걸 받아들일 따름이다.

-<카페 느와르>부터 <천당의 밤과 안개>, 임권택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녹차의 중력>과 <백두 번째 구름>까지 공교롭게 모두 다른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분명한 건 원래 있는 영화들과 연결지어 제목을 지은 건 아니라는 거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 제목에서 가져와서 내 영화의 제목을 짓는다면 자기가 만든 영화를 너무 한정짓는 꼴이 될 것 같다. 다만 내가 알고, 자주 쓰고, 익숙한 단어들이 수많은 영화 제목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 있을 것이다. 세계를 보고 느낀 걸 표현하는 문장들의 익숙함이랄까.

-<천당의 밤과 안개>는 다큐멘터리라고 한정짓기 힘든 측면이 있다. 소설의 문을 여는 듯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덕분에 영상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편집을 끝내고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내가 중국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래서 촬영이 끝난 1년 뒤 두 장면을 추가로 찍어 앞뒤를 구성하기로 했다. 현장의 순간들이 내게 영화처럼 기억에 남아 있던 터라 이 영화 자체를 ‘영화를 보러 가는 이야기’처럼 담고 싶었다. <천당의 밤과 안개>도 그렇고 <녹차의 중력>과 <백두 번째 구름>을 찍으면서 다큐멘터리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다. 사실 <카페 느와르> 찍을 때도 극영화라는 인식은 없었다. 고맙게도 21세기에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가 미묘해지는 영화들이 나타나지 않았나. 그런 영화들이 나에게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라는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아마 다음 영화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섞여 있을 것이다. 이미 촬영은 끝나 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천당의 밤과 안개>를 “내가 왕빙 감독의 세계로 떠나는 어드벤처 활극”이라고 표현했다. 활극이라는 표현이 참 와닿았다.

=모험 활극이라는 자막은 영화에도 직접 등장한다. 쿤밍공항에 내려서 11시간 반 동안 시속 110km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받은 느낌. 쏜살같이 가는 수많은 차들,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 본 적 없는 이상한 풍경들,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나는 이제부터 미지의 행성에서 카메라를 칼처럼 들고 모험 활극을 벌이겠구나 하는 상상들. 심지어 처음에는 영화 제목에 ‘활극’을 넣을 생각도 있었다. 거칠게 얘기하면 나는 영화가 느끼는 걸 '보고 싶어서' 영화를 찍는 사람이다. 내가 느낀 걸 영화로 찍어보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럴 생각은 없다. 그건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다. 나는 영화가 대상과 시간과 장소를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을 따름이다.

<천당의 밤과 안개>

-<천당의 밤과 안개>는 의외로 매우 리드미컬하다. 마치 여러 편의 다른 호흡의 영화가 붙어 있는 것 같다. 어떤 장면은 왕빙 영화처럼 길게 늘려 찍기도 하고, 어떤 시퀀스는 실험영화처럼 사운드의 충돌을 활용하기도 한다. 4시간에 가까운 영화라서 사실 걱정하면서 봤는데 지루하지 않아서 놀랐다. (웃음) 영화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기쁜 이야기다. (웃음) 내가 영화 현장을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비밀을 훔치기 위해서다. 물론 쉽게 훔쳐지지 않는다. 뛰어난 소매치기는 그것을 훔쳐가기 위해서 훔칠 대상과 거리를 수시로 바꾼다. 카메라로 거리를 부수고 들어가고 나오는 걸 보는 과정에서 나도 흉내내보고 싶었다. 감독을 대상으로 찍으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상대가 영화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왕빙 감독은 우리를 힐끗 보면서 바로 우리가 무얼 찍고 있는지 그냥 알았다. 심지어 불러서 그건 그렇게 찍지 말고 이렇게 찍어라, 하고 구도를 잡아서 찍은 장면도 있다. 왕빙 감독이 잡아준 장면을 잘라서 그대로 쓰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님 역시 내가 뭘 찍을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들을 뒤에서 훔쳐보며 상대가 누군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거리가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책에서 본 어설픈 지식이 현장과 어떻게 다른지 하나씩 깨달아가는 작업이었다.

-왕빙 감독의 결과물을 보는 것과 그에 이르는 과정을 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었나.

=왕빙 감독 영화를 볼 때는 그 자리에 오직 영화가 있지만 현장에 가면 방법론을 발견한다. 현장에서 매 순간 왕빙 감독의 결단, 접근의 전술, 태도를 목격했다. 왕빙 감독은 한번도 미학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아니 미학적인 태도를 취하는 순간 촬영을 포기하는 사람이다. 왕빙 감독의 태도를 요약한다면 카메라가 대상을 착취할 권리가 없다고 믿는 쪽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는 걸 스펙터클화하는 대신 카메라를 멈추고 아름답게 포장된 화면으로부터 최대한 도망치고자 한다. 왕빙 감독의 현장은 나에게 교실이었고 선생님이었다. 무엇을 찍는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찍지 않는가, 어떤 순간 촬영을 멈추는가, 어떤 순간 그 장소를 떠나야 하는가에 대해 배웠다.

-왕빙 감독의 태도, 영화에 대한 거리, 영화를 향한 윤리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이번에 임권택 감독님에 대한 영상을 찍을 때 채령 여사님이 감정에 복받쳐 갑자기 우신 일이 있다. 그 순간 촬영을 멈추고 나중에 자막으로 썼다. 여사님이 우셨다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왕빙 감독이 눈물을 찍었다는 죄책감에 가득 차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뒷모습을 본 사람이다. <천당의 밤과 안개>를 예로 들면 정신병원인 데다 정글 속의 낯선 마을인데 흥미진진한 장면이 왜 없었겠나. 아주 많았다. 그래서 이걸 보여주면 다들 아! 하고 탄성을 지를 만한 장면부터 먼저 버렸다. 왜냐하면 이번 영화의 유일한 원칙은 오직 왕빙 감독을 찍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의 정신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찍으러 간 게 아니었다. 우리는 어떤 구도도 잡지 않고, 거기에 뭐가 끼어들어도 개의치 않았으며 인상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단 1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왕빙 감독이 영화를 찍는 순간과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만 찍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 노이즈, 긴장감들이 때론 화면의 기본적인 구도를 완전히 망치곤 했는데, 바로 그렇게 망쳐지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영화의 기술적 한계를 벗어나게 만드는 순간들, 말하자면 영화가 느끼는 것을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영화의 존재론이라고 해도 좋겠다. 존재는 비가시적인 것이므로 영화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을 통해 영화를 느끼는 것이다.

-<천당의 밤과 안개>를 포함하여 감독님의 영화는 문자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자막을 풍성하게 활용한다.

=나는 문자에 매혹된 사람이다. <카페 느와르> 때도 그랬고 <녹차의 중력>과 <백두 번째 구름>에서도 문자를 마음껏 사용했다. 문자는 하나의 이미지다. 문자가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떠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문자와 이미지 사이에 어떤 위계를 세우려는 건 아니다. 만약 하나의 이미지를 볼 때 하나의 개념으로 등치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가능성을 차단하는 습관일 것이다. 텍스트로서 문자의 의미와 이미지로서 문자가 주는 감흥이 머릿속에서 충돌할 때, 영화가 그걸 끌어안을 수 있다면 그 운동이야말로 영화의 사유활동이 아닐까 싶다.

-<천당의 밤과 안개>에는 세 가지 타입의 문자가 나온다. 우선 왕빙 감독 인터뷰 전에 ‘왕빙’이라는 거대한 글자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처음엔 그게 제목인 줄 알았다.

=내 마음의 표현이다. (웃음) 왕빙 감독은 우리 앞에 앉아서 자기를 설명한다. 이후 영화는 왕빙 감독이 스스로 했던 말 그대로 영화를 찍는지를 지켜본다. 비평가의 습관 중 하나가 의심하고 반문하는 것이다. 나는 왕빙 감독이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실행하는지 지켜보기 위해 쫓아간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왕빙입니다. 지금부터 왕빙을 봐주십시오’라는 신호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이후 진짜 타이틀이 화면을 장식할 때 화려한 색과 다양한 폰트를 활용한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영화에 개입하고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들은 하얀색 바탕 위에 검은 글씨로 쓰여진다.

=타이틀의 폰트와 색깔은 어지러운 내 마음을 담은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꽉 찬 내 마음. 그런 다음 상황이 진행되면 하얀 바탕 위에 자막을 깔았다. 까만색은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힘, 하얀색은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얀 화면 위의 자막은 영화와 관객의 거리를 위해서 사용했다. 관객이 영화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치 않았고 계속 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자막이 필요하지 않은 때에도 일부러 자막을 넣은 순간도 있다. 내 뜻대로 되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하얀 화면에 흡수되거나 몰입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가주세요’라는 자막을 띄울 수는 없는 일이니. (웃음)

-‘길다’와 ‘느리다’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235분이라는 상영시간은 사실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매우 리드미컬하고 결코 느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소위 슬로 시네마의 연장선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관객으로서는 2시간이 넘는 영화를 좋아한다. 짧은 영화가 적절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90분, 최대 2시간 미만으로 설정해놓고 거기에 맞추도록 관객의 리듬을 학습시켜왔다. 그래서 그걸 넘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영화가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을 때의 해방감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문화원에서 아벨 강스의 <나폴레옹>(1927)을 3시간50분 버전으로 처음 봤을 때, 영화도 물론 굉장했지만 시간을 넘어서면서 내가 가지는 자유의 맛을 잊지 못한다. 제도가 학습시켜놓은, 자본의 학습을 넘어서 가져보는 해방과 자유. 물론 모든 관객이 꼭 이걸 좋아하는 것 같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웃음) <천당의 밤과 안개>의 경우엔 처음부터 가이드가 있었다. 어쨌든 이 영화는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보다 늦게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영화의 길이에 맞춰서 편집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만약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가 2시간 분량이었다면 이 영화도 2시간으로 편집했을 것이다. 영화를 찍는 과정에 관한 영화이므로 거울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왕빙 감독과 상의한 건 아니고 혼자 마음속으로. (웃음)

-제작 순서대로 말하자면 <녹차의 중력> <천당의 밤과 안개> <백두 번째 구름> 순이다. <녹차의 중력>과 <백두 번째 구름>은 어떻게 나뉘나.

=<녹차의 중력>은 임권택 감독님의 일상생활에 관한 영화다. 일상생활을 찍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고민이 많았다. 이걸 다 버릴 것인가.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감독의 삶은 두 종류다. 하나는 기다리는 시간. 하나는 영화를 찍는 시간. 무한 반복이다. 대부분의 감독에 관한 영화들은 찍는 시간을 찍는다.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되게 궁금하긴 했는데 이상하게 인터뷰 할 때도 결례인 것 같아 잘 안 물어보게 되더라.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에도 감독의 머릿속에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가 상영되는 중이다. 일상의 리듬,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까. 데뷔 감독이라면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대는 영화를 101편 찍은 사람이다. 평생을 그 사이클로 살아온 사람에겐 그 과정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백두 번째 구름>의 경우 <화장>(2014)의 첫 테이크가 이 영화의 첫 테이크이고, <화장>의 마지막 촬영이 이 영화의 마지막 테이크다. 임권택 감독님은 종종 “나는 영화를 찍다가 길거리에서 죽을 운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날 <화장> 촬영 현장에서 문득 구름을 봤을 때 구름 하나하나가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처럼 느껴졌다. ‘백두 번째 구름’이란 제목은 임권택 감독님이 정해주신 셈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너무 멋부린 것 아닌가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보고 나면 직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제목이라 생각한다.

-<녹차의 중력>이라는 제목은 중의적으로 다가온다. 평론가로서 임권택을 설명할 때 그의 영화 세계를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임권택 감독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궁금하다고 표현해왔는데.

=임권택 감독님 자택을 방문하면 환대의 의미로 일단 녹차를 끓여주신다. 처음 임권택 감독님 댁을 드나들기 시작한 게 28살 때였다. 30년 동안 녹차를 계속 마셨다. 감독님은 늘 그 자리에 계셨다. 마치 하나의 중력이었던 것처럼. 처음에는 그냥 <녹차>로 갈 생각이었는데 녹차를 주시는 이분의 무게는 어떤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중력이라는 단어에 매료되어왔던 것 같다. 벗어나지 못하는 일종의 운명 같은 힘. 언젠가부턴 자기 자리에 묵묵히 버티고 선 사람들을 보면 중력이라는 단어가 연상됐다. 특별한 상징이나 수사라기보다는 내게는 한 사람을 향한 최대의 찬사와 존경의 의미에 가깝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겠다. 왜 영화를 찍는가.

=내가 영화를 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영화를 배우기 위해서다. 나의 20대는 구조주의, 정신분석, 마르크시즘, 페미니즘 등 이론에 완전히 쏟아붓던 시절이었다. 그땐 원서를 통으로 번역하고 서로의 판본을 교환해서 보기도 했다. 그런데 만족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답이 없었다. 그래서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걸 묻기 위해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임권택 감독님이었고, 허우샤오시엔이었고, 왕가위였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인터뷰를 시작한 시기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됐고 아시아 영화가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직접 만나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직접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만드는 과정 속에 대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목표는 단순하다. 영화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보고 싶고 그 과정에서 배움을 구하고 싶다. 나는 영화를 계속 찾아갈 것이고 영화가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보고 싶다.

-오늘날 영화를 접하는 경로는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감독으로서 <천당의 밤과 안개>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나.

=물론 제작단위에서 표준화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극장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이 영화를 아이맥스로 보여주고 싶다. (웃음) 다만 오늘날 관객의 체험은 연출자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남은 건 오직 관객의 선택이다. 장 뤽 고다르의 <이미지 북>(2018)을 일반 영화관에서 봤을 때와 조건이 갖춰진 영화관에서 봤을 때 두 영화를 본 관객은 같은 영화를 본 것인가. 오늘날 영화들은 그렇게 수많은, 각기 다른 방식의 체험으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런 미디어로서의 체험을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 혹은 확장이라 말할 것이다. 글쎄, 여기엔 긴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현재 ‘영화적인 것’이란 표현은 향수와 예언 사이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 중심주의 비평이 여전히 유효할 것인지 한번 돌아볼 필요도 있다.

-차기작 편집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어떤 영화인지.

=편집이 끝나기 전까지는 금기사항이다. 뭔가 말하고 정리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갈 길이 정해져버린다. 그건 그 영화의 운명에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일단 앞선 두 영화가 관객과 제대로 만났으면 좋겠다. 아니 <천당의 밤과 안개>가 관객과 제대로 만나는 게 먼저인가. (웃음) 언젠가 차이밍량이 이렇게 말했다. 영화와 만난다는 건 인연이라고. 보는 것도 찍는 것도 인연이다. <천당과 밤과 안개>와 인연이 닿은 관객에게 부디 좋은 인연이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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