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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스웨덴영화제③] 스톡홀름대학교 영화학과 루이스 발렌베리 교수 - 의상을 통해 읽는 베리만 영화 속 여성들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18-11-22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속 의상에 관해 오랜 시간 연구해왔다. 베리만 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기에 특히 흥미롭다.

=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 영국에서 비슷한 시도가 있었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나는 2007년부터 스톡홀름대학에서 영화 미장센, 특히 의상에 집중하는 수업과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화산업과 패션산업의 오랜 연결고리를 들여다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트랜스 학문은 전세계적 유행이 되었고, 특히 영화와 패션 스터디의 접목은 굉장히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의상분야를 다루자면, 시대적인 상황상 자연스럽게 여성 인력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될 것 같다.

=대다수의 여성 스탭들은 익명으로 남겨지기 마련이었다. 베리만과 함께 작업한 스탭 중에서 의상 디자이너인 마릭 보스를 소개하고 싶다. 베리만과 4편의 영화를 함께했고, <처녀의 샘>(1960)에서 보여준 뛰어난 중세시대 의상으로 제3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흑백영화 의상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흑백영화였음에도 마릭 보스의 코스튬은 믿을 수 없이 컬러풀하다. 특히 그는 직물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뛰어나서, 흑백 화면에서도 드레스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잉마르 베리만은 의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 클로즈업 카메라가 특징적인 감독인데.

=그래서 수작업에 열과 성을 다한 디자이너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웃음) 아주 화려하고 정교한 의상을 요구해놓고는, 정작 영화에선 얼굴 클로즈업만 찍어버리는 식이었다.

-지난 연구들을 통해 베리만이 남성보다는 오히려 여성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고 동일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베리만 영화에서 여성들이 언제나 더 흥미롭고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여성을 더 현명하고 복잡하며 감정이 풍성한 존재로 그렸다. 반면 남성은 대체로 단순하고 어리석거나 이기적인 형태다. 그는 남성성에 대해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어린 소년 같은 상태”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이런 인식은 영화에서 일종의 성대결로 이어진다. 베리만 영화 속 남녀 관계는 늘 파국으로 종결된다.

-의상을 통해 성역할의 경계를 모호하게 지워가는 과정 또한 발견된다.

=<겨울 빛>(1963)은 의상에서 드러나는 성별의 차이가 완전히 소거된 작품처럼 보인다. 모든 인물이 비슷한 의상과 톤 다운된 메이크업을 하고 나온다. <수치>(1968)는 젠더에 관한 논의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성평등을 갈구하던 1960년대의 분위기가 명백히 반영된 작품이다. 의상이 성별의 구분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시대극에서조차 베리만은 남성복에 러플 같은 페미닌한 요소를 더했다. 특히 희극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 정세가 냉혹하던 시절에도 형이상학적 사유만을 고집하는 베리만에게 가해지는 비판도 있었다.

=그래서 딱 한번 정치적인 색깔을 더한 베리만의 영화가 <수치>인데, 안타깝게도 혹평을 받아야만 했다. 리브 울만(<페르소나>로 데뷔해 <수치> <외침과 속삭임> 등을 함께 했고, 베리만과 오랜 기간 동거했던 스웨덴의 배우다.-편집자)에 의하면 베리만은 “비평 앞에 한없이 무너지는” 예술가였다고 한다. 사실 <페르소나>의 서로 다른 두 여성이 겹쳐지는 이미지에서도 냉전시대의 영향이 감지된다.

-페미니즘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오늘날, 다시 첨예하게 해부해볼 만한 베리만의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 속에서 전혀 행복하지 않은 여성을 꾸준히 비췄다는 점에서 잉마르 베리만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굉장한 페미니스트다. <페르소나>와 <침묵>은 페미니즘, 그리고 퀴어적 관점에서 여전히 흥미롭다. <마리오네트의 생>(1980)은 독일에서 찍은 영화인데, 이 작품 역시 퀴어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베리만의 자전적 작품인 <화니와 알렉산더> 속 유대인 이삭의 조카는, 트랜스젠더-트랜스 섹슈얼의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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