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정치적 사건에는 좋은 쪽과 나쁜 쪽의 편가름만 남고, 주역만이 기억된다. 하지만 그 뒤엔 상처의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무수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얽혀들어 있기 마련이다. 전주영화제의 개막작이자, 1973년 도쿄 김대중 납치사건을 배경으로 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케이티>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 영화는 가해자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 중앙정보부원인 김차운(김갑수)과 일 자위대 소령 도미타(사토 고우이치)를 쫓아가며, 거대한 조직이 희생시킨 개인들의 내면을 파고든 지적 스릴러물이다. 도미타는 자위대 방위청내 한국통. 군대지만, 한 나라의 군대에 걸맞은 결정권도 작전권도 없는 자위대에 회의를 느끼고 그만두려던 그에게 어느날 직속상관(박정희와 일본육사 동기)은 흥신소를 차려 한국의 작전을 도울 것을 명령한다. 도쿄의 한국 안가에선 김차운을 비롯한 몇명이 참가한 극비회의가 벌어진다. 이어 8월8일 도쿄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김대중은 납치되고, 미국 정부의 개입 속에 금룡호 배 위에선 숨막히는 대결이 벌어진다. 도미타 소령은 “이런 일본이 싫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가 단순히 `우익적 인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말이 언제나 모호한 정치적 태도를 취해오기만 한 일본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느끼는 고민을 적잖이 함축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미타는 조직에 의해 희생된다. 도미타에 비해 좀 설득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디제이)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김차운 역시 학맥·인맥으로 연결된 복잡한 한국사회의 희생자이자 패배자다. 그렇다고 영화가 허무적이거나 냉소적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고, 한국과 일본 관객들은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과 깊이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 속 개인의 운명이라는 영화의 주제는 호소력이 크다. <사무라이 픽션>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록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의 비장감 넘치는 음악도 인상적이다. 5월3일 개봉.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