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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거꾸로 쓰기
김혜리 2018-08-29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과 <맘마미아!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아남은 아이>

살아남은 자들은 사랑하는 타인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규정함으로써 가까스로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남은 아이>의 부부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에게는 그 과정조차 남달리 길고 험하다. 작은 인테리어 가게를 함께 꾸려가는 부부의 아들 은찬은 물놀이를 갔다가 동급생 기현(성유빈)을 구하고 희생된다. 우연히 괴롭힘당하는 기현을 마주친 성철은 기댈 곳 없는 기현을 돕고 일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반발하던 미숙도 본인의 방식으로 소년에게 다가선다. 말수 적은 사제지간인 성철과 기현은 낡은 집의 내부를 말없이 보수하며 가까워지는데, 이 광경은 마치 공통의 상처를 천천히 씻어내고 덮는 노력처럼 보인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정신적 소생을 벽지를 바르는 행위를 통해 그린 김애란 작가의 단편 <입동>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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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스토리텔링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관객은 별로 없겠지만, 재미삼아 몇 가지 규칙은 적어볼 수 있다. 소소한 것으로 루소(빙 레임스)는 웬만해선 절대 달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또 남의 얼굴을 감쪽같이 뒤집어쓸 수 있는 가면 트릭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소문이 났을 법도 한데 22년째 잘 통한다. 심지어 같은 미국의 CIA도 극중에서는 아직 이 테크놀로지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핵무기를 비롯해 세상을 날려버릴 폭발물을 해체하는 카운트다운은 항상 1초가량 남겨두고 멈춘다. 급기야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하 <폴아웃>)에서는 “몇초 남겨놓고 도화선 잘라야 해?” “전과 동(同)!”이라는 자의식적 농담도 나온다. 대개 하나의 스위치를 내리면 해결되지 않고 두세곳에서 동시에 해체에 성공해야 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에단 헌트(톰 크루즈)가 이끄는 끈끈한 팀워크가 에단 개인의 활약만큼이나 이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각종 인터뷰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막대한 예산이 투여된 영화치고 크리스토퍼 매쿼리 감독의 시나리오 작법은 놀랄 만큼 즉흥적이다. 시작은 당연히 톰 크루즈가 신작에서 도전하고 싶은 액션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이를테면 “전번에 비행기 날개에 올라탔으니 이번에는 잠수함에 매달리는 건 어떨까?” 같은 식의 대화를 상상해볼 수 있다. 주요 액션 세트 피스를 먼저 정하고, 에단 헌트가 어쩌다 누구를 쫓아서 거기서 싸우고 있는지 우여곡절을 나중에 채워넣는다. <폴아웃>의 경우 이야기의 발단은 3구의 플루토늄인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지막 액션 시퀀스에는 2구밖에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쿼리 감독은 영화 초반 테러리스트가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의 세 성지를 공격한다는 설정을 타협할 수 없었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촬영에 돌입했다. 결국 무기 브로커 화이트 위도우가 선금으로 플루토늄 한구를 치른다는 묘안이 떠올라 만사형통이 되었다. 우연의 힘을 믿기로는 크리스토퍼 매쿼리도 홍상수에 지지 않는다. 에단 헌트의 극중 모토인 “가면서 해결하면 돼”(I wil figure it out) 정신을 감독이 실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네댓 세트의 액션 스펙터클을 텐트 봉처럼 미리 박아놓고 이야기를 짜는 역(逆)설계 작법이다 보니 당연히 플롯에 과부하가 걸린다. 크리스토퍼 매쿼리의 돌파책은, 이 시리즈에 관객이 베푸는 불신의 유예를 믿고 도리어 뻔뻔하게 유희를 벌이는 것이다. <폴아웃>에는 심지어 에단 헌트가 헌리 국장(알렉 볼드윈)을, CIA 국장이 어거스트 워커(헨리 카빌)를, 솔로몬 레인(숀 해리스)이 어거스트의 뒤통수를 치는 등 약 예닐곱 차례의 배신이 연타로 쏟아지는 장면도 있다. 따져볼수록 어처구니없는 플롯은 에단 헌트가 전 부인 줄리아(미셸 모나한)와 카슈미르에서 재회하기까지다. 일단 악당은 의사 줄리아를 거기까지 오게 하기 위해 천연두를 퍼뜨려 무수한 인명을 희생시키고 스폰서를 자처해 의료봉사단을 초청하고 핵무기를 거기 심어 에단 헌트를 오게 만든다. 단지 에단에게 보란 듯 복수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감행한다. 하필 카슈미르인 이유는 톰 크루즈의 헬기 직접 액션 촬영을 허용한 유일한 로케이션이 뉴질랜드였는데 뉴질랜드는 국제정치 관점에서 너무 고요한 지역이므로 풍광이 비슷하면서 테러리스트와 결투가 벌어질 법한(?) 카슈미르가 낙점된 것이라 한다. 크리스토퍼 매쿼리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감독으로서 적임인 또 하나의 이유는, 이와 같은 변수에 휘둘리는 작업을 감독으로서 체면 깎이는 일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자리에서 토로했듯 매쿼리는 본인이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는 게 아니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이상형이 있고 관건은 자신이 얼마나 그 목표를 충족 시키느냐라고 여긴다. 행복한 결혼인 셈이다. 그렇다고 매쿼리가 단순한 서비스맨은 아니다. <폴아웃>은 매편 독립된 이야기에 가까웠던 연작의 전통에서 벗어나 매쿼리가 연출한 전편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으로부터 중요한 스토리 요소를 이어받는다. 뿐만 아니라 영화 초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연출한 1편의 첫 장면에 쓰였던 가짜 방 세트의 트릭을 반복해 프랜차이즈의 전통을 재확인하기까지 한다. 나는 <폴아웃>이 캐릭터 궤적과 스토리 면에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피날레가 돼도 아쉽지 않지만, 7편의 제작이 확정되면 크리스토퍼 매쿼리의 참여 여부부터 궁금할 것 같다.

08/08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한 영화의 속편이 의외로 늦게 나올 경우 제작진은 흔히 “전작의 후광을 입기는 싫었다. 좋은 스토리를 만날 때까지 기다렸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맘마미아!2>의 이야기를 1편 이후 10년 내내 고안한 결과라고 보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이 영화에서는 사건이라 할 만한 새로운 일은 거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신규 인물들은 전편 주역들의 젊은 시절이다. 등장하는 아바의 노래는 상당수가 1편에도 쓰였던 곡들이다. 뭐 어차피 <맘마미아!>의 관객은 아바의 명곡을 가장 흥겹게 즐기기 위해 표를 살 테니 치명적 흠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내내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1편의 도나를 그리워했는데, 도나는 그사이 고인이 된 것으로 설정됐지만 여전히 영화의 보이지 않는 중심이다. 영화의 절반은 릴리 제임스가 분한 젊은 도나가 어떻게 작은 섬을 사랑하고 삶을 일궜는지 보여주는 데에 투여됐다.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유지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영화에 최소한의 동력을 제공하고 세대를 뛰어넘은 모성을 예찬하는 엔딩도 메릴 스트립의 도나를 소환해 완성된다. <폴아웃>으로 치면 액션 세트 피스 자리에 노래와 춤이 있고 뮤지컬 시퀀스들은 1편보다 훨씬 촬영과 편집을 음악과 공들여 결합해낸다. 이야기는 오직 거들뿐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태생적 한계인 의무방어적 내러티브를 타박하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소피의 할머니 셰어가 호텔 지배인 앤디 가르시아에게 “아니, 당신이 어떻게 여기!”를 외치는 순간 자책하고 말았다. 가르시아의 캐릭터 이름이 무려 페르난도(아바의 노래 제목)인데 나는 무슨 다른 가능성을 꿈꿨단 말인가! 그래도 남는 아쉬움은 소피의 운명이다. 이 독립적이고 유능한 여성은 엄마의 후신(後身) 외에 대체 어떤 인물인가. 호텔을 재개장하는 중차대한 시점에도 전편에 나온 소피의 친구들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엄마의 옛 연인과 친구들만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3편의 가능성에 들뜨지 않는 이유다.

<호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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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드라이버

<호스틸>은 인간형 식인 괴물의 창궐로 멸망하다시피 한 세계에서 시작한다. 홀로 물자를 구하러 다니는 줄리엣(브리트니 애시워스)은 전복된 트럭에 갇혀 괴물의 위협과 싸우면서 종말 이전의 삶을 회상한다. 멜로와 호러의 대담한 이종 결합을 꾀한 <호스틸>에서 과거와 현재의 줄리엣은 캐릭터가 판이한데 후자가 훨씬 매력적이고 배우의 연기도 더 좋다. 편집이 과거로 건너갈 때마다 맥이 끊겨 아쉬울 지경이다. 폐쇄 공간 스릴러로서 세부 플롯은 그리 기발한 편이 아니지만, 부러진 다리를 셀프 접골하고 기지를 발휘해 괴물을 방어하는 브리타니 애시워스의 1인극 신체 연기는 어쩔 수 없는 몰입을 부른다. 물론 줄리엣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통증과 공포가 아니라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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