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아들3>을 찍던 시기와 맞물려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제작됐어. 박 감독은 89년 <구로 아리랑>으로 데뷔했지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었어. 보통 첫 작품이 훌륭할수록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지게 마련이잖아. 게다가 3년 만에 만들어지는 작품이라 감독의 기대와 야심이 대단했지.
그래도 대본에 없는 장면을 찍자고 나올 땐 스탭들도 배우들도 조금 고달팠지.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영화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장례식 신이야.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엄석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비쳐지는 장례식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거든. 그걸 갑자기 만들어서 찍겠다는 통에 부랴부랴 배경으로 쓰일 집 구하고, 엑스트라랑 음식이랑 마련하느라 진땀을 뺐지. 하나 더 있어.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는데 운동장 조회 신이 빠질 수 없다고 촬영이 다 끝난 마당에 조회 신을 따로 찍었어. 덕분에 주인공들을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의 교복을 또 다 만들었지.
내게 한복과 군복 다음으로 인연있는 의상이 교복일 거야. 나중에 곽경택 감독의 <친구>에서도 아들과 함께 교복을 지었고, 얼마 전 촬영이 끝난 에서도 허진호며 이창훈에게 교복을 입혔지. 교복은 군복과 마찬가지로 시대별 특징이 아주 분명하거든. 지금의 교복은 자유로운 분위기에 개성까지 덧입었지만, 50∼60년대 교복은 제2의 군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 모양도 거의 비슷해서 학교를 식별할 수 있는 표시란 단추나 명찰, 모자에 붙이는 모표 정도랄까. 따라서 단추의 경우 주물 공장에서 특별 주문으로 모양을 새겨서 쓰고, 명찰도 고증을 받아 만들곤 했어. 그렇게 갖은 장면을 다 집어넣고, 몸부림을 쳐서 영화사 사장도 질리게 한 박 감독이지만, 그 노력의 대가를 고스란히 받은 셈이지. 예산이 초과되고, 생각지도 않은 장면에 의상 작업이 늘었어도 나중에 영화가 빛을 보니 모든 게 덮어지는 기분이었지.
일도 많고 그래서 고생도 많던 92년의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하얀 전쟁>이었어. 그해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했던 정지영 감독의 이 영화는 베트남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됐어. 그래서 난생처음 베트남에 갔지. 떠나기 전 혹시 물자가 부족할까 대부분의 의상(거의 군복)은 만들어서 갔거든, 거기다 실이랑 미싱이랑 단단히 챙기니 마음이 든든했어. 근데 막상 도착하면서부터 일이 서서히 꼬이기 시작하는 거야. 시발은 미군복에서 시작됐어. 감독이 준비해간 미군복에서 작업복이 빠졌다는 거야. 촬영장에 의상부라곤 나밖에 없고, 촬영을 지체할 수는 없고, 어떻게든 일손부터 구해야 할 판국이었어. 그래서 일단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으로 갔지. 가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어. 근데 아무리 가도 사이공 시장이 안 나타나는 거야. 아마 한나절은 꼬박 달렸을 거야. 시장이라도 부르기도 뭣한 작은 사람들의 무리가 나타났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거기 모인 사람들 중 반은 거지거나 도둑이었어. 다행히 현지 여성들을 소개해주는 사람을 만나 일손을 대충 구했지. 의사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옷이 잘 만들어질 리가 없지. 나중에 옷을 입은 배우들이 잘 맞지 않는다고 투덜댈 땐 고만 마음이 팍 상하기도 했어. 고생한 만큼 일이 잘 안 풀릴 때의 심정을 그들은 알까 하고. 날씨도 덥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지만, 다행히 배우들이나 스탭들의 몸에 큰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어.
뒤에 김호선 감독과 멕시코에서 찍었던 <애니깽>을 생각하면 날씨나 배우들의 컨디션 모두 하늘이 도와준다고 여길 정도였어. 무엇보다 안성기나 이경영 등 배우들의 성격이 점잖아서 크게 불평을 하는 스타일들은 아니었거든. 그저 주는 대로 입고, 먹고 묵묵히 견뎠지만, 사실 많이 힘들었을 거야. 안성기 하니까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는데, 얼마 전 분장한다던 한 여자아이가 내 앞에서 “안성기 선배님 같은 분과 일하게 돼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 거야. 그 말이 어찌나 내 귀에 거슬리는지, 분장이나 의상장이에게 배우란 단지 옷을 입히는 마네킹이나 도구인 거지. 그런 정신이야말로 프로 정신인 거야. 배우가 유명하면 영광이고, 아니면 뭐라는 소리야. 그냥 배우는 배우일 뿐이고, 동료고, 작품세계를 연출하는 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을 한시도 놓쳐선 안 돼. 의상하는 사람의 기본 자세야.
공사다망한 92년이 지나고 93년이 왔지. 그해 가장 마지막으로 내게 온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송화의 붉은 저고리를 잊을 수 없어. 임 감독이 두고두고 칭찬하던 팥색 저고리는 실은 두루마기를 뜯어, 반질반질한 비단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방망이로 종일 다듬어서 만든 거야. 옛것을 좋아하는 감독이라면 그 색깔과 질감에 호감을 나타낼 수밖에.
구술 이해윤/ 1925년생·<단종애사> <성춘향> <사의 찬미> <하얀 전쟁> <서편제> <친구> 의상 제작 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