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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 ‘나답게 살고 싶다’
김소미 2018-06-27

1971년, ‘거룩한 분노’와 어울리는 재니스 조플린의 목소리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도 희미하게 들리고 있었다. 가사 노동을 여성의 신성한 권리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노라(마리 루엔베르게르)는 남편과 시아버지, 두 아들의 수발을 드는 일에 염증을 느낀다. 미국인들이 거리로 나와 평화, 평등을 향한 저항과 축제로 들썩이던 시기였다. 영화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여성 투표권이 인정된 당대 스위스의 분위기를 담는 방법론으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독일의 사회운동가 패트릭 켈리의 말을 따른다. 취리히가 아닌 도심에서 꽤 떨어진 시골마을을 배경 삼은 이유다.

남편의 허락 없이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노라는 조카 한나가 자유로운 연애관으로 비난받는 모습 등을 지켜보며 전에 없던 의문들을 품기 시작한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노라를 마이크 앞에 세우고, 졸렬한 비난과 조롱은 숨어 있던 동료들을 불러모은다. 노라의 서사를 역사적 패러다임의 변화로 환원시키는 연결 지점은 빈약하지만, 연결될수록 강해지는 여성 인물들의 연대를 지켜보는 것은 뿌듯하고 벅찬 일이다. 작은 마을의 변화는 보수적인 성 관념에서 해방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오르가슴을 연구하는 호기심으로 대표된다.<거룩한 분노>는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의 험난한 자취를 좇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전달 방식은 오히려 달콤하고 유머러스한 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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