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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유전>의 매혹
임수연 2018-06-21

가족에서 유전한 공포, 고전적이며 새로운 오컬트 무비

※ <유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전>은 <컨저링> <애나벨> 시리즈로 이어진 하우스 호러물이나 최근 <곤지암> 같은 공포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다소 당혹스러운 작품일 수 있다. 장르적으로는 1960~70년대 오컬트 무비와 더 가까우면서, 가족 유대의 붕괴를 공포의 진짜 근원으로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전>은 고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를 매혹적으로 21세기에 계승하는 법을 찾는 데 성공해냈다. 영화사에서 중요한 오컬트 무비의 계보에 마땅히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이 작품의 매력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더불어 아리 애스터 감독이 “인물이 중심이 된 정교한 구성의 영화로, 천천히 전개가 된다”는 점에서 창조적 영감을 준 작품으로 언급한, <유전>과 맥을 함께하는 작품도 정리해보았다.

<유전>은 정말 무서운 영화인가?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그다지 무섭지 않을 수 있다. 컷을 점프시키며 갑자기 관객을 놀라게 하는, 익숙하지만 타율은 높은 편인 기술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공포영화에 기대할 법한 잔혹한 이미지과 갑작스러운 등장 컷이 후반 10분 정도에 몰아서 나오기 전에는, 이따금 애니(토니 콜레트)나 찰리(밀리 샤피로)가 엘렌의 환영을 보는 식으로 미스터리의 ‘냄새’만 풍길 뿐이다. 주공간인 애니의 집 역시 클리셰를 피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에 따라 “삐걱거리는 바닥이라든지 비바람에 망가진 벽 또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딕 건축 양식의 주택 같은 이미지”에서 일부러 벗어나 있다. 이것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아리 애스터 감독에게 앞서 설명한 요소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토론토의 <나우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나를 화나게 하는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갖고 맞서려고 했는데, 그것은 어린 시절 날 괴롭히던 것들이었다. 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어둠 속에서 가만히 서서 날 바라보는 것에 겁을 먹었다”고 말했다.

대신 <유전>에서 가장 섬뜩한 것은 가족이란 굴레가 주는 지긋지긋한 고통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미국인에 대한 노먼 록웰의 접근은 가족을 조화롭게 바라보는 이상화된 시각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는 거짓됐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때때로 서로의 삶을 침범해 힘들게 만든다”(<뉴스위크>)고 말했다. <유전>은 애니의 엄마 엘렌의 죽음 및 장례식 일정을 알리는 글로 막을 여는데, 엘렌은 말수가 적고 비밀이 많으며 본인만 아는 의식과 친구들이 있다고 전해진다. 애니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 어려웠다고, 그래서인지 엄마의 장례식 날에도 생각보다 본인이 덜 슬퍼한다고 생각한다. 애니가 진심으로 비통해하는 것은 그의 딸 찰리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이후인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한 후 자신의 가족사를 토해내듯 고백한다. 아빠는 굶어 죽고, 조현병을 앓은 오빠는 엘렌이 자신의 몸에 이상한 것을 넣으려고 했다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자살했다. 본능적으로 엘렌이 가족을 망치고 있다고 감지한 애니는 아들 피터(알렉스 볼프)를 낳은 뒤 자신의 엄마가 그를 보지 못하게 했으나, 대신 엘렌은 이후 태어난 애니의 딸 찰리를 직접 키우며 유독 아꼈다. 직접 영화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찰리가 새의 목을 자르는 취미가 있다거나 학교 시험 시간에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등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로 성장한 이유를 애니는 분명 자신의 엄마에게서 찾았을 것이다.

애증의 모자 관계

하지만 애니 역시 아들 피터에게는 절단되지 않는 응어리를 남긴 애증의 엄마다. 피터는 몇년 전 엄마가 몽유병 상태로 페인트 시너를 뒤집어쓰고 침대 옆에 나타나 불을 붙이려고 하는 모습을 목격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이후 피터와 애니 사이는 어색해지고 피터는 마리화나를 하는 등 삐뚤어지게 된다. 친구들과 마약을 하느라 동생에게 소홀했던 피터의 부주의가 찰리의 죽음으로 귀결된 후 부녀의 갈등은 극중 대사처럼 “이미 벌어졌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피터와 애니가 식사 중 크게 싸우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장면은 <유전>의 어떤 잔혹한 장면보다 일상에 대입 가능한 실질적인 공포다. “생생한 가족 드라마로 작용하는 슬픔과 트라우마에 대한 진지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재앙이 닥쳤을 때 악몽처럼 느껴지는 삶과 같은 방식으로, 악몽에 빠져드는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다”(미국 IT 매체 <더 버지>)는 감독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미 벌어진 참사에 대해 부녀는 각자의 책임 대신 서로의 잘못을 강조하며 생채기를 낸다. 가족이기에 갖는 가까운 유대는 오히려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말을 던지며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가족 사이에 벌어진 갈등은 쉽게 해결된다는 환상과 달리 그 상흔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지독한 죄책감으로 이어지기에 더 치명적이다. 찰리의 머리에 꼬이는 개미떼가 피터의 얼굴을 뒤덮는 환영을 애니가 보는 장면은 엄마가 자식을 미워하면서도 그런 스스로를 자책하는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불쌍하게 죽은 동생이 받은 고통을 아들 피터 또한 받으며 대가를 치르는 것을 상상하고, “난 널 낳을 생각이 없었다”는 속내를 드러내며 상처를 주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아리 애스터 감독이 <유전>에 영향을 줬노라고 거론한 리스트는 마이크 리 감독의 <전부 아니면 무>(2002)와 <비밀과 거짓말>(1996), <45년 후>(2015), <아이스스톰>(1998), <침실에서>(2001) 등 하나같이 무너진 가족을 묘사한 작품들이다.

한편 감독은 이전 단편에서도 가족 때문에 일어나는 재앙을 꾸준히 다뤄왔다. <존슨 가족에 대한 이상한 것>(2011)은 성적 학대의 망령을 다루는 가족에 관한 멜로드라마이며, <문하우젠>(2013)은 자신의 자식이 결혼하고 집을 떠나는 것을 막으려는 이상한 집착을 가진 엄마가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아리 애스터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를 호러로 준비한 적은 없었다. 10편의 시나리오 중에 호러는 한편도 없었기 때문이다. 호러영화가 제작비를 조달하기에 가장 수월했기에 선택한 것뿐. 하지만 첫 장편영화에서 이 장르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감독의 차기작 <미드서머> 역시 호러물이며, 역시 A24에서 제작한다. 스칸디나비아 토속 공포에 기여한 작품으로, 오는 8월 헝가리에서 촬영에 들어간다.

가족에게서 도망갈 수 없다

문제는 가족 때문에 겪는 고통을 피할 선택권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피터의 수업 시간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의 비극이나 1929년 경제 대공황,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에 관한 이야기는 불가항력적으로 비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공통점을 가지는데, 이는 유전자의 불변성과도 이어진다. <유전>의 엘렌은 자식까지도 희생시키며 파이몬교에 헌신하는 ‘맹신 유전자’를 갖고 있다. 어떻게든 운명을 피하고픈 애니는 이따금 몽유병 형태로 본색을 드러내고, 거의 애니의 시점에서 진행되던 영화는 막판에 피터에게 시점을 넘기며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었던 속성이 완벽하게 세습됐음을 보여준다. 임신과 출산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자식이 물려받는 유전자를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거세하고픈 단점, 당연하게도 내 부모의 싫은 점까지도 담겨 있을 유전자를 굳이 또 물려받는 존재를 만들고, 혈연관계를 맺은 자식이 일으키는 문제로부터 부모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엘렌으로부터 어떤 유전자도 물려받지 않은 애니의 남편 스티브(가브리엘 번)가 근본적인 갈등에 대해 개입하지 않으며 미묘하게 극에서 배제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모의 숙명을 외면하듯 애니는 그의 가족에게 고통을 줬던 사건까지도 직접 축소 모형으로 재현하며 자신의 두려움을 어떻게든 달랜다. 이것은 그가 피터에게 “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만 막을 수 있다”며 자신했던 심리와 이어지지만, 결국 애니는 자신의 손으로 미니어처를 모두 부순다. 애니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안겨주는 축소 모형 아트는 사실 오프닝에서도 알 수 있듯 일종의 절대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공포에 더 가깝다. 찰리의 끔찍한 사고가 벌어지기 직전 땅콩 알레르기 때문에 차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미지나 피터를 비롯한 인물의 공허한 표정을 꽉 찬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방식 역시 이 끔찍한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빙의자가 되는 것은 누구인가

엘렌의 유품에서 발견된 책에 따르면 파이몬 왕은 가장 약한 숙주에게 빙의되고, 그는 남성의 몸을 갈망한다. 여성인 애니가 어릴 때 선머슴처럼 자란 것 역시 자식을 빙의자로 만들고 싶은 엘렌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엘렌과 애니 등 여성들은 악령을 소환하거나, 찰리의 오두막이 결국 새로운 몸을 찾은 파이몬 왕을 환영하는 의식을 치르는 장소가 된 것처럼 공간을 제공한다. 아마도 애니의 아빠와 오빠는 파이몬 왕을 빙의시키려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파이몬교의 또 다른 추종자 조안(앤 도드) 역시 소환자로서 집 안의 남자들에게 빙의를 시키려다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파이몬 왕에 대한 ‘맹신 유전자’를 임신과 출산을 통해 세습시켰던 이들이 직접 악령을 소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가장 약한 남자’는 악령을 받아들인다. 악마의 추종자들과 거래를 한 남편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아내를 이용해 악마를 잉태시키려고 했던 <악마의 씨>(1968)가 흥미롭게 비틀어졌다. <악마의 씨>의 미아 패로나 <엑소시스트>(1973)의 린다 블레어처럼 악령을 몸에 키우거나 받아들이는 여성의 이중·삼중 수난 대신 별다른 의욕 없이 살고 있느라 빙의 조건에 딱 맞게 된 피터가 고통의 대가를 분담하는 것. 여전히 감상하기에는 괴롭지만 여성의 지나친 학대를 경계하는 21세기의 상황에 걸맞은 오컬트 무비의 모습일 것이다.

파이몬 왕은 누구?

죽은 엘렌이 걸고 있던 목걸이 모양, 찰리와 피터가 차를 타고 파티에 갈 때 나무에 새겨져 있던 문양. 이들은 모두 다락방에서 엘렌의 목 없는 시체를 봤을 때 함께 발견되기도 하는 파이몬 왕의 문양으로, 이 모든 일이 수상쩍은 미신 때문에 벌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단서다. 파이몬 왕은 오래전부터 마술서에서 전해진 솔로몬 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72명의 타락천사 중 서열 9위에 해당하는 악마다. 타락천사 루시펠의 충실한 부하로 서쪽을 수호하고, 낙타의 등을 타고 보석이 박힌 왕관을 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진리를 묻는 모든 질문에 정확하게 답할 수 있고, 어떤 인간도 복종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 엘렌 그리고 애니를 교령회에 끌어들이는 조안은 파이몬 왕이 갖고 있다고 믿는 이러한 능력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것으로 보인다. 엘렌의 유품에 있던 엽서에는 우리의 희생이 큰 상으로 돌아올 것이며, 내가 했던 행동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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