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18년은 앙드레 바쟁 탄생 100주년이다. ‘영화이론의 선구자’라 불러도 될 만큼 그는 리얼리즘 이론의 기초를 마련했고, 이후 많은 비평가들이 그의 유산 아래 자신의 언어와 화법을 발전 시켜나갔다. 최근 기념비적인 저작 <영화란 무엇인가?> 개정 영문판이 출간되고(물론 앙드레 바쟁이 쓴 글은 2616편에 달하고 <영화란 무엇인가?>는 그중 일부만을 모은 것이다), 앙드레 바쟁이 텔레비전과 3D, 시네마스코프에 대해 쓴 글을 영역한 <앙드레 바쟁의 뉴 미디어>가 출간되는 등 2000년대 후반부터 바쟁을 재조명하는 연구들이 서구 영화학계에서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생일로 따지면 4월 18일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긴 하다. 김지훈 교수가 그의 비평을 재조명하는 소중한 원고를 보내왔다. (논문 제목은 괄호안에 작은따옴표로 표시했다. (예: ‘존제론’))
2000년대 후반부터 앙드레 바쟁을 재조명하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벌어졌는데 그가 텔레비전, 시네마스코프, 시네라마, 3D 등 새로운 기술들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앙드레 바쟁의 뉴 미디어>라는 책이 2014년 영역 출간되기도 했다.
앙드레 바쟁은 누구인가. 많은 이들은 두 가지 교과서적인 바쟁을 떠올릴 것이다. 오슨 웰스, 윌리엄 와일러, 장 르누아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지지하고 심도와 시퀀스숏, 롱테이크의 사용을 유성영화 이후 ‘영화언어의 진화’로 평가함으로써 현실의 기록과 재현을 영화매체의 본질로 간주하는 리얼리즘 영화이론의 기초를 마련한 바쟁이 있다. 또한 현대적 영화저널리즘은 물론 이러한 저널리즘이 지향하는 비평적 관점이자 방법론으로서의 작가주의를 후원한 바쟁도 있다. 1958년 너무나 이르게 세상의 스크린을 떠난 바쟁의 두 얼굴은 68혁명기 정치적 모더니즘 성향의 영화비평과 이러한 노선의 토대 위에 과학적 방법론을 구축한 1970년대 현대영화이론에서 탈신화화의 대상이 되었다. 관객에게 심층적 퇴행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생생한 스펙터클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장치(apparatus)로서 영화 일반을 개념화하고자 했던 이 시기의 스크린 이론(Screen Theory)은 감독의 개인적 비전을 영화예술의 원천으로 평가했던 작가주의를 배격했다. 이러한 현대영화 이론의 기획에서 바쟁은 영화의 충실한 현실 반영을 믿는 나이브한 본질주의자로 기각되었다. 리얼리즘과 작가주의는 바쟁의 유산이기도 했지만 현대영화이론은 이를 계승하는 과정에서 바쟁의 비평에 고정관념적인 주형을 입혔다.
2000년대 이후 유럽과 북미 영화학계는 바쟁이 생전에 <카이에 뒤 시네마>는 물론 <시네마 누오보> <에스프리> 등 수십개 매체에 기고한 2616편의 비평문을 아카이빙하고 다시 읽고, 이들 중의 일부를 영역 출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4권으로 이루어진 원본 <영화란 무엇인가?>(1958∼62) 중 26편의 글만이 1967년 두권의 책으로 영역되어 오랫동안 참조되어왔다는 기존 번역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2009년 대규모의 국제학회를 기반으로 바쟁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을 모아 <바쟁을 열기: 2차대전 후 영화이론과 그 내세>(Opening Bazin: Postwar Film Theory & Its Afterlife, 2011)를 출간한 영화학자 더들리 앤드루에 따르면 바쟁은 “예술과 역사 사이에서의 자신의 특별한 자리를 직감했고 자신의 위치를 스크린을 통해 영사되는 세계와 그 세계의 거주자들의 철학적 관찰자로 여겼으며, (영화예술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파리에서 상영되는 수백편의 영화를 다룬 일상적 비평가이자 전투적 시네필”이었다. 이러한 다면적 성격을 입증하듯, 바쟁의 타자기는 일반적으로 작가주의 혹은 전후 유럽 모더니즘 영화로 분류되는 특정 작품들만을 대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장르영화, 탐험다큐멘터리, 예술다큐멘터리는 물론 현실의 기록을 영화예술의 본질로 삼았던 그가 반대했던 것으로 통상 알려진 아방가르드 영화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고, 스타와 에로티시즘,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 텔레비전과 같은 영화의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차원도 성찰했다.
2000년대 이후 유럽과 북미 영화학계는 앙드레 바쟁의 기념비적인 저작 <영화란 무엇인가?>(1958∼62)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시기 비평문을 아카이빙하고 다시 읽으며, 이들 중 일부를 영역 출간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나가 아닌 여러 리얼리즘, 모더니스트로서의 바쟁
바쟁을 리얼리즘 영화이론의 개념적 인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한 글은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이하 ‘존재론’)이다. 기존 리얼리즘 영화이론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바쟁에 따르면 조형예술은 “죽은 자를 방부처리”하고 시간의 흐름에 맞서 과거를 보존하는 ‘미라 콤플렉스’(mummy complex)의 욕망을 추구해왔으며, 중세와 근대의 회화는 실물과 유사한 “복제를 통해 외부 세계를 대신하는” 기법들을 개발해왔다. 화가의 주관성이 개입되는 회화와 달리 카메라의 자동기법(automatism)으로 인간의 개입이 감소된 채 피사체를 기록하는 사진의 발명은 실물과의 유사성을 추구하는 조형예술의 역사와 결정적으로 단절했다. 바쟁은 사진의 자동기법이 약속하는 “객관성으로 인해 (사진은) 모든 회화에서 있을 수 없던 강한 신뢰성”을 획득하고 “시간을 방부처리”하는 조형예술의 오랜 욕망을 실현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속 피사체의 실존은 마치 지문처럼 그 모델의 실존을 공유한다. 그때문에 사진은 자연의 창조를 대체한다기보다는 그 창조에 실제적 역할을 맡는다.”(‘존재론’) 사진 이미지를 실물로서의 모델 대한 모방적 재현이 아니라 “모델 자체”로 보는 바쟁의 관점은 그의 다른 글들에도 산포되어 있다. “초상화가 정당화되는 이유는 유사성”인 반면, 사진은 “사물이나 존재의 이미지가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해 그 흔적이다…사진사는 렌즈를 활용하여 빛의 진정한 인상을 촬영한다. 말하자면 주형(mould)인 셈이다. 사진은 그 자체로 유사성 이상, 말하자면 일종의 동일성이다.”(‘연극과 영화’) 피터 울른은 기호학자 C. S. 퍼스의 지표 개념을 활용하여 바쟁의 견해를 지표적 리얼리즘(indexical realism), 즉 카메라 앞에 과거에 존재했던 피사체와 사진적 이미지간의 실존적, 인과적 관계에 근거한 리얼리즘으로 정식화하는 데 기여했다. “바쟁은 기호와 대상간의 결정적인 실존적 유대를 거듭 강조하는데 퍼스는 이를 지표적 기호의 결정적 특성으로 여겼다.”(<영화의 기호와 의미>)
지표적 리얼리즘은 바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독해가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부터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스테픈 프린스는 지표적 리얼리즘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컴퓨터그래픽과 디지털 합성 이미지의 현실감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각적 리얼리즘’(perceptual realism)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 용어는 비록 이미지가 물리적 현실에는 부재하는 존재나 사건을 전달하더라도 그것이 현실감을 지각하는 관객의 도식과 호응한다면 사실적으로 간주할 수 있음을 뜻한다. 톰 거닝은 지표적 리얼리즘을 고수할 경우 필름 기반의 사진과 영화를 현실의 충실한 흔적으로 여기고 디지털 사진과 영화를 현실의 조작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지표는 영화적 리얼리즘이란 문제에 접근하는 최고의 방식이 아닐 수도 있고 유일한 방식이어서도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바쟁의 리얼리즘과 관련된 주요 저작을 가장 꼼꼼히 독해한 논문에서 다니엘 모건은 지표성 개념이 바쟁이 리얼리즘의 관념으로 비평하는 영화들의 스타일적 다양성, 이러한 영화들이 다루는 물리적 현실의 다양성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모건이 이러한 지적과 더불어 환기시키는 바쟁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나의 리얼리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리얼리즘이 있다. 각각의 시대는 자신의 리얼리즘을, 말하자면 우리가 현실에서 원하는 것을 가장 잘 포착하고 유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법과 미학을 추구한다”(‘윌리엄 와일러, 또는 영화의 장세니즘’).
2009년 대규모 국제학회를 기반으로 앙드레 바쟁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을 모아 더들리 앤드루는 <바쟁을 열기: 2차대전 후 영화이론과 그 내세>를 출간했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독해는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차원으로 수렴된다. 즉 지표적 리얼리즘은 영화의 사실성 또는 영화 이미지와 세계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유일하고도 선험적인 기준일 필요가 없다는 점, 또한 바쟁의 비평은 지표적 리얼리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러 리얼리즘 개념들을 던지고 그 사이를 횡단했다는 점이다. ‘존재론’에서 바쟁은 “정신적인 사실성을 표현하려는 순수 미학적 열망”과 “복제를 통해 외부 세계를 대신하려는 심리학적 욕망”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 정신적 리얼리즘이라 말할 수 있는 전자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를 “순수 사진처럼 객관적인 동시에 순수 의식처럼 주관적인 정신적 풍경”(‘로셀리니에 대한 옹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때 반영된다. 환영주의(illusionism)를 함축하는 심리적 리얼리즘이라 말할 수 있는 후자는 ‘완전영화의 신화’에서 “세상을 이미지로 재창조함으로써 완벽한 리얼리즘을 완성하려는 욕망을” 영화의 발명을 추동한 관념으로 소환할 때 입증된다.
또한 스타일로서의 리얼리즘이 있다. 물론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파편화를 근거로 미리 상정된 관념적 현실 아래 숏들을 배열하는 몽타주와는 다른 데쿠파주(d coupage) 또는 미장센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의 개정 영역본을 2009년 출간한 티모시 버나드는 기존 영미권 영화연구가 데쿠파주를 고전적 할리우드의 ‘분석적 편집’과 동일시하면서 그 의미의 풍부함을 희석시켰으며, 바쟁이 웰스와 와일러, 르누아르와 관련된 비평을 고려할 때 데쿠파주는 각본과 촬영 과정에서 어우러져 작용하는 장면 구성, 카메라 배치와 이동, 배우 연기의 연출 모두를 포함함을 입증한 바 있다. 195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이 ‘미장센 비평’으로 계승한 데쿠파주의 중요성은 일례로 와일러의 공적을 “조명, 카메라 앵글, 배우의 연출을 포함하는 ‘미장센의 기예(art)에 가져온 결정적 변화”(‘윌리엄 와일러’)로 규정할 때 드러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의 대상은 데쿠파주 또는 미장센, 혹은 이를 구성하는 특정 기법의 역할이다. 이것들은 현실의 흔적과 지속을 충실하게 보존하는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관련된 일련의 글들에서 바쟁은 현실과 관련하여 ‘공간적 밀도’나 ‘모호성’과 같은 표현을 쓰면서 이를 사실(fact/fait)이라는 용어와 구분한다. “그 자체로 다양하고 모호성으로 가득 찬 구체적 현실의 조각이 갖는 의미는 사실 이후에, 다른 주어진 사실들의 도움으로 드러난다. 정신은 이 사실들간의 어떤 관계를 수립한다”(‘현실의 미학: 영화에서의 리얼리즘과 해방 이후의 이탈리아 학파’). 즉 여기서 ‘사실’이란 농밀하고도 모호한 현실의 부분이며, 카메라의 기록과 데쿠파주는 “현실을 선험적 관점의 노예로 만들지 않고”(‘연출가 데 시카’) 그러한 현실로부터 ‘사실’을 구성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쟁이 딥포커스와 롱테이크의 기능을 “시간과 공간의 연속체”(‘영화언어의 진화’)의 보존으로 간주한 이유는 현실을 존중하면서 관객의 심리적 리얼리즘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며, 데쿠파주가 구성하는 ‘사실’은 물리적 현실의 보존에만 한정되지 않는 정신적 리얼리즘의 영역, 즉 “추상적인 스타일과 추상화를 통해”(‘로셀리니에 대한 옹호’) 도달하는 “정신적 풍경”의 영역이기도 하다.
결국 바쟁의 비평은 지표적 리얼리즘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리얼리즘들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갔다. 그의 글쓰기는 이러한 리얼리즘들을 활성화하면서 현실로부터 ‘사실’을 구성하는 데쿠파주의 유형과 미학적 효과에 대한 계통학적, 지질학적 탐사였다(그의 비평이 진화생물학과 지질학을 연상시키는 많은 비유들을 썼다는 점을 상기하자). 이처럼 “(영화)매체의 재료와 미학적 가능성들간의 복잡한 협상”(다니엘 모건)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바쟁을 리얼리스트인 동시에 모더니스트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그는 크리스 마르케의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1957)의 일차적 재료를 ‘지성’으로 규정함으로써 모더니즘적 영화로서의 에세이영화를 선구적으로 식별하기도 했다).
앙드레 바쟁이 모더니즘적 영화로서의 에세이영화로 식별했던 크리스 마르케의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1957).
철학자이자 예술사가, 플랫폼 비평가로서의 바쟁
리얼리스트이자 모더니스트로서의 바쟁이 갖는 철학적 면모는 일찍이 알려졌다. 지속의 철학에 대한 베르그송의 교훈,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과의 대면, 그를 신비주의자로 오해하게 했던 가톨릭주의 등 바쟁에게 영향을 준 철학적 전통은 물론 그가 질 들뢰즈의 ‘시간-이미지’ 개념에 미친 영향이 이러한 면모를 말해준다. 이들의 영향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는 아니지만, 그가 영화의 심리적 또는 정신적 리얼리즘을 말하면서 이미지의 현실에 대한 관객의 태도라는 문제에 매달렸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 점은 섹스와 죽음과 같은 “근본적으로 의식의 영역을 벗어난”(‘매일 오후의 죽음’) 현실이 스크린에 반복될 때, 또는 탐험다큐멘터리 <콘-티키>(1950)에서 물에 언뜻 보이고 사라지는 상어를 기록한 불완전한 장면을 두고 “그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상어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위험을 보여주기 때문”(‘영화와 탐험’)이라고 말할 때 반영된다. 결국 바쟁이 자신의 비평에서 강조했던 ‘현실의 모호성’은 그 현실에서 사실을 구축하는 영화 이미지의 모호성, 이러한 이미지와 조우하는 주체의 인식론적 모호성이기도 하다. 필립 로젠이 적절히 지적하듯, 바쟁의 비평에서 영화적 리얼리즘의 문제는 비이성적인 것(미라 콤플렉스)과 상상적인 것(‘존재론’에서 그는 사진 이미지의 효과를 초현실주의와 연결시키기도 했다)을 포함하는 믿음(belief/croyance)의 문제이기도 하다.
바쟁은 또한 예술비평가의 태도로 영화이론의 고전적 문제인 영화와 인접 예술과의 관계를 탐구했다. <피카소의 미스터리>(1956)와 같은 회화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기울였고, 영화가 연극 및 문학의 유산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전용하는가의 문제를 성찰했다.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0)에서 로베르 브레송이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원작을 각색하면서 적용한 생략법과 간결한 몽타주를 옹호하며 바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치 있는 각색은 문학작품의 각색을 진정한 영화, ‘순수 영화’가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것으로 보는 비평적 오해를 반박한다”(‘비순수 영화를 위하여: 각색에 대한 옹호’). 바쟁은 원작과 구별되는 영화적 표현을 추구하면서도 원작의 화법과 주제에 등가적인 각색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리얼리즘의 효과가 내러티브의 차원에서도 구현된다고 보았으며, 미국 소설의 발달과 영화적 각색의 발달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가를 역사적으로 고찰했다. 이러한 작업을 근거로 바쟁이 제안한 ‘비순수 영화’(cin ma impure)라는 개념은 1920년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담론에 기원하고 영화의 본질을 시각성의 표현에서 찾는 ‘순수 영화’ 개념에 대항함은 물론,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을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질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영화매체의 특정성을 지탱하는 사진 이미지의 고유함은 영화가 포용하는 문학적, 회화적, 연극적 유산들의 혼종성과 협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울러 바쟁은 영화에서 대중과 산업의 관계를 중요시했고, 새로운 예술로서의 영화의 위상 또한 대중 및 산업과의 협상에 따라 변화한다고 믿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서부영화의 영향력을 미국을 뒷받침하는 신화와 도덕의 차원에서 찾았고(‘서부영화: 탁월한 미국영화’), 영화가 자극하는 에로티시즘의 근거를 “참여와 동일화를 요구하는 상상적 공간”(‘영화에서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난외주석’)에서 찾았으며, 장 가뱅과 채플린을 스타 이미지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했다.
조르주 베르나소스의 원작을 각색하면서 적용한 생략법과 간결한 몽타주를 옹호했던 로베르 브레송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0).
그러나 영화관에 근거한 영화적 경험과 영화의 산업적 경계라는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는 포스트-시네마 조건하에서 가장 중요한 재조명의 대상은 바쟁이 텔레비전, 시네마스코프, 시네라마, 3D 등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에 대해 쓴 글들이다(이 글들은 <앙드레 바쟁의 뉴 미디어>(Andr Bazin’s New Media)라는 제목의 모음집으로 2014년 영역 출간되었다). 이 글들 중 많은 것들은 바쟁이 르누아르나 로셀리니의 텔레비전영화에서 영화미학의 유산을 계승할 수 있는 텔레비전의 미학적 가능성을 찾았다는 통상적인 견해 이상의 풍부한 통찰과 생생한 관찰로 가득하다. 바쟁은 시네마스코프를 비롯한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가 텔레비전의 위협에 대한 대응임을 간파했는데, 이는 “영화는 산업의 이윤이 사라질 때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소멸에 매우 노출된 산업적 예술”(‘시네마스코프는 영화를 구할 것인가?’)라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도입과 대중화에 산업의 제작 분야 못지않게 상영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시네라마와 3D의 기술적 차원(시네라마의 화면비율, 3D 영화를 가능케 하는 양쪽 눈의 시각 차이 메커니즘)을 치밀하게 고려하면서 이것들의 생리학적 현실감을 관객의 입장에서 꼼꼼하게 기술했다. 더 나아가 이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가 몽타주 및 심도와 같은 미장센의 구성요소에 미치는 영향에도 예민하게 주목했다. 이러한 영향은 바쟁의 동시대 영화는 물론 오늘날의 영화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감독은 웰스와 와일러의 예를 따라 자신의 구성을 조직하기 위해 심도를 활용한다. 그런데 이들은 시네마스코프 스크린의 넓이를 활용하여 마찬가지의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시네마스코프와 네오리얼리즘’)라는 바쟁의 진단은 1960년대 이후 와이드스크린 포맷의 대중화를 예견했다. 또한 “몽타주는 그리피스의 유산으로부터 도달하는 근본적 법칙들을 깨뜨리지 않고도 새로운 시각적 상황들에 단순히 적응되고 있다”(‘3D 혁명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가?’)는 바쟁의 관찰은 70mm 아이맥스 포맷을 채택하면서도 평행편집의 표현적 잠재력을 확장한 <덩케르크>(2017)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텔레비전과 와이드스크린, 시네라마와 3D에 대한 바쟁의 비평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테크놀로지와 산업이 결정하고 변화시키는 영화적 경험(cinematic experience)의 문제임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영화 이미지의 존재론을 넘어 영화적 경험의 관점으로 사유하는 바쟁의 문제의식이 다양한 종류의 작은 디지털 스크린들, 그리고 넷플릭스처럼 기존 영화산업의 프로토콜을 위반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도전을 고려할 때 동시대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바쟁을 영화 스타일과 테크놀로지의 전환기에 활동했고 21세기에 재조명되는 플랫폼 비평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바쟁의 세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