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의 시작은 서울 도심, 대기업이 개발을 이유로 자영업자들을 내몰고 있는 강제철거 현장이다. 상인들은 철거용역의 무력에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채 의식을 잃은 한 중년 여성의 죽음. 영화는 이렇게 강렬하고, 혹독하고, 참담하게 운을 뗀다.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 철거현장에서 팔을 걷어붙인 루미(심은경)와 상인들의 투쟁 속으로 오래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던 루미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석헌(류승룡)은 때마침 손 안 대고 물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염력을 갖게 된 상태다. 석헌은 영문도 모른 채 얻은 초능력을 그간 아버지 역할에 소홀했던 데 대한 속죄의 의미로 사용한다. 루미를 돕다보니 결과적으로는 길거리에 내몰린 시장 상인들의 투쟁에 가담하는 식이다. 무장한 용역 깡패들이 맨손의 상인들을 위협할 때 그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가 하면 자본과 결탁한 경찰 병력이 망루에서 상인들을 위협할 때 추락의 위험에서 이들을 구출해낸다. 구체적 지명이 언급되지 않지만 ‘용산참사’라는 비극의 현장은 거의 영화의 모델처럼 비친다. 공권력 앞에서 무력했던 당시의 시민들과 달리 <염력>의 석헌은 힘없는 시민들에게 초능력 파워로 도움을 준다. 어찌보면 이건 무력한 국가 시스템으로 인한 좀비의 창궐에 맨몸으로 대적했던 <부산행>(2016)과 같은 결기지만 초반부의 충격적인 죽음의 전개로 인해 장르적 카타르시스는 그렇게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2018년. 재개발과 세입자들의 문제가 현실인 시점에서, 장르적 초능력의 위안은 미약한 울림일지 모른다. 류승룡 특유의 코믹 연기로 단단히 무장한 석헌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나 재개발의 주체인 악당 홍 상무를 연기한 정유미의 시선을 사로잡는 등장은 이 영화의 코믹 펀치라인이지만, 관객이 어디까지 이 상황을 웃어넘길지 판단을 요한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부산행>과 <서울역>(2016)의 주요 공간인 서울역, 회현 일대와 그리 멀지 않은 영화적 무대를 공유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장르적인 코드를 빌려와 가장 첨예한 대한민국의 문제를 접목시키는, 연상호의 작가적 시도의 한 과정으로서 <염력>의 색깔은 진하고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