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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의 <에드 우드> 최대한 괴상하게 만들기
김중혁(작가) 2018-01-31

감독 팀 버튼 / 출연 조니 뎁, 마틴 랜도, 사라 제시카 파커, 퍼트리샤 아퀘트, 제프리 존스 / 제작연도 1994년

작가는 두 가지 꿈을 동시에 꾼다.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고 싶은 꿈과 소수의 사람들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괴상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꿈. 모든 작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렇다. 두 꿈의 출발 지점은 전혀 다르다. 걸작을 만들려다가 실패한 작품이 괴상해지는 것이 아니다. 괴상한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괴상하게 출발해야 한다. 완성도와 관련된 부분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스스로를 조금 파괴하는 심정으로 심장 한구석을 도려내면서, 아픈 상태로도 낄낄낄 웃다보면 괴상한 작품이 탄생하게 마련이다. 언젠가 정말 괴상한 작품을 한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

팀 버튼의 <에드 우드>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본보기 같은 작품이다. 영화를 너무 못 만들어서 전설이 되어버린 감독 ‘에드 우드’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는, 최대한 괴상하게 만들기 위한 팀 버튼의 노력이 가상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괴상해서 어리둥절하고, 허접해서 소름끼치지만, 망측해서 감동적이기도 하다. 괴상망측한 만듦새는 팀 버튼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영화 역사상 최악의 감독 에드 우드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만드는 사람 역시 정신을 놓아버려야 한다.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중얼거린다. 나는 과연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연극 연출을 하던 에드 우드는 비평가들의 혹평에 괴로워하다 자신의 재능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오슨 웰스는 26살에 <시민 케인>을 만들었다고. 침대에 누워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난 벌써 서른이야. 평생 이렇게 살게 될까봐 두려워.” 팀 버튼은 어째서 에드 우드를 모델로 영화를 찍은 것일까. 에드 우드의 어떤 점이 그를 매혹시킨 것일까. 팀 버튼은 에드 우드가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 상세하게 묘사한다. 에드 우드는 최대한 빨리, 마구잡이로, 영화를 찍어댔다. 어지간하면 ‘오케이’를 외쳤고, 사소한 실수가 발생해도 개의치 않았다. 영화 제작자들이 그에게 와서 다그쳤다. “당신, 영화 제작에 대해 알기나 하는 거야? 종이 비석이 넘어갔잖소. 누가 봐도 가짜 티가 풀풀 나요.” 에드 우드는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영화란 거대한 작업이에요. 그렇게 사소한 건 괜찮아요.” 완성도에 집착하다보면 때로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말하기의 기술에 몰두하다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게 되고, 선의 굵기에 집중하다보면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의 덩어리, 세계의 질감, 관계의 뉘앙스를 흘리지 않고 전달하는 일이다.

요즘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머릿속에 있는 어떤 인물, 이야기, 배경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이 덩어리를 통째로 꺼내서 소설에 반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드 우드처럼 날것 그대로인 채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그러지 못할 것이고, 나는 또 다듬고 고치고 깎아내고 정리하여 문장을 쓸 것이다. <에드 우드> 속 두 인물, 팀 버튼과 에드 우드를 나는 여전히 선망하고 있다.

김중혁 소설가. <펭귄뉴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나는 농담이다> 등을 썼다. 소설, 에세이 등 글쓰기뿐 아니라 영화 해설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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