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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진선규 배우, "역시 나보다는 영화가 더 잘되는 게 좋더라"

흑룡파 두목 장첸으로 <범죄도시>(2017)에서 윤계상이 전무후무한 악역 연기를 펼치는 동안, 스크린에서 지속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끄는 또 한명의 배우가 있었다. 장첸의 오른팔 위성락은, 정말이지 한시도 쉬지 않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민머리의 험상궂은 마스크로 흑룡파의 잔악함을 드러내고, 어필한다. 낯이 익지만 영화 속 모습이 사뭇 달라서 신선했고, 그래서 이제는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각인됐다. 위성락 역의 진선규는 늘 악당이 아닌, 순하고 선한 역할로 얼굴을 알려온 배우고, 이번엔 그간의 연기를 ‘판돈’으로 걸고 필사의 도전을 감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범죄도시>가 680만 관객몰이로 흥행하기까지, 진선규를 모르고 극장을 찾았던 이들은, 이제 진선규와 조연배우들의 활약 덕분에 이 영화가 매력적이었다고 입모아 말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최근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닥터스> 등 무대, 브라운관, 스크린을 오가며 지난 15년간 묵묵히 자신을 단련해온 배우, 이제 영화 팬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배우 목록에 오른 진선규의 행적을 좇아보았다.

-<해빙> 김대명,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김희원, <더 킹> 배성우, <택시운전사> 유해진과 함께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인터뷰는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열린 11월 25일 이전에 진행됐다.-편집자). 올해의 성과가 실감나는 소식일 것 같다.

=1일 1팩으로 대비하고 있다. (웃음) 시상식에 가게 되다니, 꿈만 같고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생긴거다.

-수상에 앞서 가장 큰 변화는 캐스팅 제안이 아닐까. 어느 정도 변화를 체감 중인가.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오디션이 아니라 ‘시나리오 한번 읽어볼래요’ 하는 제안이 오더라. 무명배우들에게 오디션을 보지 않고 감독님을 만나서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 나누고 이런 건 정말 꿈이다. 그 꿈에 내가 믿기지 않지만 한발 다가서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중이다. 지금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제안이 들어오는 역할들 중 <범죄도시>의 위성락 같은 험악한 캐릭터가 많을 것 같다.

=<범죄도시> 속 캐릭터와 약간 비슷한 느낌을 찾는 편이다. 내 생각엔 위성락보다 더 셀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같은 악역이라고 해도 다 다른 느낌이라 즐겁게 검토하고 있다. 기능적인 면에 그치는 악역이라면 고사하려고 하지만 영화의 맥락 안에서 그 존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악역이라면 몇번이고 반복해서 할 수 있다.

-<범죄도시>는 업계 관계자들이 지금 정도의 흥행을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라 성과가 주는 만족도가 더 클 것 같다.

=개봉 당시 <남한산성> <킹스맨: 골든 서클> 같은 대작이 포진해 있었던 때라, 우리 모두 “지금 개봉해도 돼요?” 하고 걱정이 컸다. 우리 영화는 감독님도 주연도, 투자사도 모두가 다 약체였다. 첫 상영 때 너무 궁금해서 몰래 극장 맨 뒷좌석을 끊어서 보는데, 관객 호응이 하나하나 느껴지더라. ‘와, 저 장면에서 저렇게 반응해주시네. 이 장면에서 웃어주시네.’ 우리가 고민하며 만든 것들이 그렇게 맞아떨어지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벅차오르더라. 뒤에 앉아서 울었다.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주축이지만 신흥 범죄세력과 그에 맞서는 형사팀의 각각의 캐릭터의 존재감이 고르게 표현됐고, 결국 그게 <범죄도시>의 흥행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유형의 악역이 탄생하기까지 배우들간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환상적인 팀플레이였다. 가령 장첸을 중심으로 한 흑룡파도 ‘이 악의 세계를 가져가야 할 힘은 우리 셋이다’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장첸이 두목이고, 나와 양태(김성규)는 떨거지다, 이런 것과는 조금 달랐다. 각자가 이 안에서 뭘 해보고자 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으로 설정했다. (윤)계상이의 도움이 컸다. 원래 장첸 역에 할당된 것을, ‘잔인한 건 형이 하는 게 나아. 구질구질한 건 양태가 하는 걸로 하자’ 이렇게 역할별로 표현할 것들을 조금씩 배분했다. 물론 전체 흐름 안에서 보면 작은 부분이지만 그걸 감독님과 맞춰가면서 발전시켜나갔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이 존재할 수 있겠다 싶은 좋은 협업이자 시도였다.

-장첸을 중심으로 한 흑룡파의 악함은 이른바 듣도 보도 못한 잔혹함이어야 했다. 그런 악의 축의 심복으로 캐스팅됐는데, 기존 이미지로 보자면 마석도가 주축인 형사팀에 들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의외의 캐스팅이 준 효과였다.

=지금 와서 말하는 건데, 제작사 대표님이 사실 처음에는 “더 악한 이미지에 연기 잘하는 배우도 많은데 꼭 진선규가 해야겠냐”고 감독님께 말했다더라. 정말 그래서 못했으면 어쩔 뻔했나. (웃음) 사실 처음 오디션에서는 떨어졌다. 연기는 좋은데 이미지가 너무 선하다고 안 되겠다 하시더라. 그래서 “선한 사람이 악역을 하면 더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이야기도 드렸지만 안 통하더라. 너무 하고 싶어 다시 이야기를 전했더니 감독님이 그럼 다른 역할로 오디션을 한번 보자고 하시더라. 그런데 한참 후에 다시 위성락을 한번 해보자 하시더라. 이미지가 선하니 좀 변화를 주자했는데, 뭔가 잡히는 게 없더라. 그때 내가 “그러면 머리를 한번 깎아볼까요” 한 거다.

-윤계상씨는 머리를 길러서 장첸의 악랄함을 더 형상화했고, 당신은 머리를 밀어서 그 악의 세계를 보충했다. 구성원이 대비되는 스타일로 서로 돋보인 결과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의 파마가 캐릭터에 영향을 준 것처럼 민머리 헤어스타일이 연기에 준 영향이 절대적이었을 텐데.

=그전에는 피팅해도 그렇게 어색하던 의상이 머리를 자르자마자 다 오케이가 되더라. 머리를 자르는 순간 내가 가진 이미지에서의 탈피이자 전환점이 됐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스펙트럼이 달라졌다기보다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 내가 변화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를 막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됐다. 감독님도 그날 처음에 “떨어뜨리고 다시 한번 안 봤으면 어쩔 뻔했나”라고 말씀해주시더라. (웃음)

-연변 사투리는 직접 그 지역 출신 선생님에게 교육받으며 익혔다고 들었다.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던데, 원래는 어떤가.

=경남 진해 출신이고, 사투리가 심했는데 연기하면서 표준어를 익혔다. 연기하려면 서울말을 써야 한다, 사투리 쓰면 무시당한다, 는 말을 듣고 한달 정도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하고, 말을 안 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9시 뉴스>만 따라했다. (웃음) 그랬더니 익혀지더라. 이후에 송강호 선배를 필두로 사투리가 연기의 무기가 되는 작품들이 등장했지만, 그땐 완벽하게 사투리를 고치는 게 목표였다.

-체육교사가 꿈이었다고 들었는데, 연기는 어떻게 접하게 된 건가.

=체육을 좋아했다. 성격이 워낙 소심했는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밝아졌다. 역도, 태권도, 합기도 그런 운동을 연마했었다. 그런데 1996년, 그때가 고3 때였는데 우연히 친구 따라 진해의 작은 극단에 놀라가면서 내 꿈이 바뀌었다. 골방 같은 데 모여서 서로 연습하는 걸 보면서 정말 짧은 순간에 연기에 매료됐다. 왜 그랬을까 하고 지금 와 되돌아보면, ‘선규는 착해’ 이런 평가들이 내게 주입되었고 나는 늘 그림자처럼 소심하게 지냈는데, 그곳에서 서로 자유롭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접하니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빠져들고 싶더라. 무대 위에서 내가 아닌 사람을 연기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희열이 느껴지더라.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기과에 입학하고 본격적으로 연기수업을 받았다. 그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온 건가.

=고향에 가면 ‘개그맨 한다더니 요즘 뭐하냐’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 같은 얼굴이 연기한다고 하면 그땐 개그맨 하는 줄 아는 거다. 연기가 하고 싶어 한예종에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만류하시더라. 집안 형편도 안 좋은데 장남이니 취직하라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이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등록금이 싼데 가면 안 되겠느냐”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입학금 120만원을 빌려와서 몰래 그렇게 학교에 다니게 됐다.

-한예종 초창기 학생이다. 말 그대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다 모여드는 곳인데. 당시 다른 동기들을 보면서 어떤점을 느꼈나.

=학교에 유명한 배우가 당시에는 장동건 선배밖에 없었다. 가서 보니 나는 연기를 말도 안 되게 못하더라. 돈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고, 일을 하고 오니 학교에서는 엎드려서 졸고, 그러다 군 입대를 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려면 학교를 그만두라는 말씀을 할 정도였다. 운동 소질을 살려 학교에서 팀을 만들고, 졸업한 뒤 그 팀이 이어져서 공연을 하면서, 그제야 ‘진선규 연기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에서 활동하며 연극계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입지를 다져왔다. 그때 의기투합해 만든 팀이었나.

=2004년에 졸업하면서 친구들과 팀을 만들었다. 이 팀의 모토가 ‘선규가 연기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자’였다. 베스트 프렌드이자 나의 지지자 민준호(현재 극단 대표)가, 자기가 보기에는 내가 몸도 잘 쓰고 연기도 잘하는데 너무 인정을 못 받는다며 그런 됨을 만들다. 그렇게 당시 학교에서 워크숍하던 방식으로, 메소드 연기를 하면서 공연을 올렸는데 10년 뒤 대학로에서 유명한 극단이 됐다. 우리끼리는 노닥거리고, 유치원 방식인데. 정말 20년 전 출발 당시의 따뜻한 분위기가 지금도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이희준, 김민재 배우 모두 우리 극단 소속인데 이 방식으로 연기를 한다. <범죄도시>를 하면서도 즐거웠던 게 공연 때처럼 이렇게 협업을 해서였다. 이곳은 정말 나를 끊임없이 머무르게 해주는 단 한 장소다. 민준호 대표가 “이번에 잘했어. 그래도 다음 단계를 위해서 공부해야 해” 하고 늘 자극을 준다.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할 팀이다.

-근 15년의 무명 생활 끝에 주목받았다고 하지만 연기하면서 지낸 과정을 들어보니 배우로는 늘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지 않았나 싶다.

=나에겐 그게 다였다. 이번에 주목받으면서 ‘너 잘됐다’ 하지만 나는 돈이 조금 없었다뿐이지 정말 재밌게 잘 살았다. 늘 밥은 먹고 살았고,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그래서 좋지만, 역시 이것도 내 연기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린 활동을 돌아보자. 배역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것은 <사냥>(2016)의 김중현 역이 처음이었다. 영화 출연은 꾸준히 해왔던 건가.

=(곽)도원이 형도 그렇고, 예전에 얼굴도 안 나오는 역할을 하려고 계속 현장에서 대기만 하다가 집에 오는 일도 숱하게 많았다. 영화에 첫 출연한 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귀사장 패거리로 출연하면서다. 이후 <풍산개>(2011), <화차>(2012), <도리화가>(2015), <터널>(2016) 등에서 단역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오디션을 정말이지 엄청 보러 다녔다. 영화나 드라마 감독님들이 연극 보러 오셨다가 영화 하자고 해주신 거다. 내가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 연기 베이스는 연극이니 순발력도 좀 떨어지고, 그래서 발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드라마보다는 한번 등장하더라도 영화를 하자 판단했다.

-올해 <특별시민>(2016)의 3선의원 변종구의 측근 길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의 보안계장, <남한산성>(2017)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초관 이두갑 등 <범죄도시> 이전의 작품들에서 짧지만 인상적인 역할로 캐스팅돼왔다. 이미 충무로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셈이다.

=짧은 등장이지만, 내 캐릭터가 보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흥행이 아쉽긴 하지만 역시 나보다는 영화가 더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다행히 <범죄도시>가 주목받으면서 전 작품들도 찾아봐주시고, 주목받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

-지금의 위성락을 연결짓자면 독립영화 <개들의 전쟁>(2012)이 떠오른다. 양아치 패거리 중 2인자이며 상근(김무열)의 오른팔로, 순박한 사랑을 꿈꾸는 마음 약한 양아치 충모를 연기했다.

=저예산 작품이었는데. 인지도 없는 배우가 오디션 보고 그렇게 큰 역할을 따냈을 때는 정말 그 희열이 크다. 그때만 해도 메이저니 독립영화니 이런 것도 잘 몰랐다. 소박하게 모여서 연극하는 것처럼 배우와 스탭이 같이 만들었다. ‘이렇게 분위기 좋게 만들어도 영화가 완성되는구나’라고 느낀 참 즐거운 현장이었다.

-<특별시민>에서 변종구에게 목이 막히도록 상추를 받아 먹는 길수 역할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권력을 위해 모든걸 불사하는 변종구 캐릭터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장면으로, 최민식 배우와 일대일 연기를 펼쳐야 했던, 중요한 순간이다. 진선규라는 이름을 몰라도, 배우로서 각인되는 장면이었다.

=그때를 돌아보면 정말 무서웠다. 첫 번째 상추쌈이 들어올 때 이걸 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다가, 두 번째 들어올 때 내가 이걸 어떻게 움직이려 하면 정말 죽겠구나 싶더라. 두 테이크째 씹다가 기도가 막혀서다 토했다. 그때는 표정 연기를 하나도 신경 안 써도 그 자체로 공포의 심리가 나왔다. 동작 하나 하나 (최)민식 선배의 배려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다.

-<암수살인>(감독 김태균), <사바하>(감독 장재현) 등 차기작도 이미 진행 중이다.

=<암수살인>은 <범죄도시> 개봉 전에 PD님이 공연 보러 오셔서, 사투리 연기 때문에 불러주셨다. 김윤석 선배와 같이 살인범 주지훈의 뒤를 캐는 형사 역할을 맡았다. <사바하>는 신흥종교단체를 파헤치는 영화로 스님 역할이라 <범죄도시> 개봉 전에 머리 깎은 모습을 보고 장재현 감독님이 미팅 한번 해보자 하셨다. 그사이에 <범죄도시>가 개봉했고, 바로 캐스팅됐다. 그 덕을 좀 본 것 같다. (웃음) 그래서 민머리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어느덧 연말이다. 찬찬히 한 해를 정리해 본다면.

=사실 개인적으로는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 같은 판타지영화 팬인데, 그런 연기도 너무 해보고 싶다. (웃음) 그리고 학교 다닐 때부터 설경구 선배가 롤모델이었는데, 그렇게 표출하는 연기도 한 번 해보고 싶다. 물론 지금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나는 정말 행운아다. 집에 가면 딸, 아들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큰아이가 5살인데, 아빠가 촬영하는 사람,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찍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일 하는 사람이 배우인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 내년에는 제대로 알게 될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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