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녹고 머리 없는 여자 시체가 떠 오르자,
살인의 악몽이 다시 살아난다
병원 도산 후 이혼, 선배 병원에 취직한 내과의사 승훈(조진웅)은
치매아버지 정노인(신구)을 모시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의 건물 원룸에 세를 든다.
어느 날, 정노인이 수면내시경 중 가수면 상태에서 흘린
살인 고백 같은 말을 들은 승훈은 부자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된다.
한동안 조용했던 이 도시에 다시 살인사건이 시작되고 승훈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승훈을 만나러 왔던 전처가 실종되었다며 경찰이 찾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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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 한강에는 가장 많은 시체가 떠 오르고
사람들은 수면내시경 도중, 비밀을 고백한다
수면 위로, 의식 위로 떠오르는 미스터리. 심리스릴러 <해빙>
몇 년 전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수면내시경 도중 가수면 상태에서 평소와는 다른 온갖 행태를 보이고 말을 내뱉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수면내시경을 하면 안 되는 이유’ 라는 동영상. 그리고 한강의 얼음이 본격적으로 녹는 4월에 한강 수난구조대가 가장 많은 시체를 건져 낸다는 기사.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요소에서 이수연 감독은 <해빙>을 처음 떠올렸다. 사방에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 한강 위로 시체가 떠오른다면? 그리고 누군가 수면내시경 도중, 살인을 고백하는 듯한 말을 털어 놓는다면? 시체를 둘러싼 살인의 비밀과 무의식 저 아래 봉인되어 있었던 살인 행각의 비밀이 맞물리면서 <해빙>은 이중적인 미스터리의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한강에 머리 없는 여자 시체가 떠오른 그 때, 천진할 정도로 무해해 보이는 치매 노인이 수면내시경 도중 ‘팔 다리는 한남대교에, 몸통은 동호대교에’ 라는 섬뜩한 말을 뱉는다. 그리고 무대는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지역에 들어선 신도시의 병원이다. 혼자 들었기에 증거도 기록도 없고, 깨어난 노인은 태연하다. 게다가 이 노인은 자신이 세 든 건물 집주인의 아버지다. 수면내시경을 한 의사 승훈은 그 날부터 빠져나올 길 없는 의심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휴식의 공간이어야 할 집은 들어가기도 무서운 곳이 되고, 집주인 부자의 친절 또한 섬뜩하기만 하다. 남에게 이해시킬 수도 없고, 혼자서는 해결할 수도 없는 의혹과 공포의 한 가운데, 승훈의 시선과 심리를 쫓아가는 영화 <해빙>은 주인공이 절대악인 살인마를 찾고 추격하는 한국 스릴러의 패턴과는 다르다. 살인의 공포는 승훈과 함께 관객 또한 숨쉴 틈 없는 서스펜스로 조이며 심리스릴러의 새로운 재미를 선보이고 제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비밀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며 퍼즐처럼 맞춰져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는 미스터리 본연의 재미에 충실하다.
몰락한 의사, 연쇄살인사건의 메카에 세워진 신도시로 밀려나다
한국 사회에 드리운 불안의 징후를 스릴러적 접근으로 들여다 보는 <해빙>
<해빙>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15년 전 미제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경기도 북부의 한 신도시다. 논밭과 고층 아파트가 공존하고 원주민과 이주민의 주거 지역은 묘하게 구분되어 있다. 해결되지 않는 사건이 파묻혀 있는 땅 위에 올라가기 시작한 고층의 아파트는, 많은 것을 해결하지 않은 채 개발과 경제라는 욕망의 드라이브를 걸었던 한국 사회의 대표적 풍경이다. 그리고 주인공 승훈은 빚내서 서울 강남에 개업했던 병원이 망한 후, 계약직 의사로 전락해 자신이 속하고자 했던 곳과는 극과 극으로 다른 이 곳으로 오게 된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은 후, 한국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중산층을 대표해서 보여주는 듯한 인물인 승훈은 연쇄살인의 메카로 불렸던 신도시에서 살인사건의 비밀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승훈의 시선과 감정을 쫓아 드러나기 시작하는 비밀의 실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악을 끌어내는, 삶 자체가 서스펜스로 가득한 곳. 지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ABOUT MOVIE
강렬한 남성성의 배우 조진웅. 심리스릴러를 만나다
의혹, 공포, 불안. 예민하고 섬세한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의사로 완벽 변신!
조진웅이 달라졌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부터 <끝까지 간다>까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시그널]까지. 스크린과 TV를 통해 보여졌던 그의 모습은 강인한 의지와 행동력을 갖춘 강렬한 남성성으로 관객과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해빙>의 조진웅은 우리가 그와 등식으로 연결시켰던 남성성과 아드레날린이라는 이미지와는 180도 다르다. 의사라는 전문직도 처음이지만 단순히 직업의 설정을 넘어서는 변신을 통해 극을 끌고 간다. 시종일관 승훈의 시선과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 <해빙>에서 조진웅은 차차 드러나는 비밀에 맞닥뜨렸을 때의 그의 반응과 표정 변화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 의혹 속으로 관객들을 함께 데려간다. 바짝 곤두선 바이올린의 현처럼 팽팽하고 예민한 심리 상태, 누구도 믿을 수 없이 의심의 한가운데 놓인 인물의 시시각각 변해가는 감정과 의심, 그리고 나름의 반격까지. 조진웅은 정중동의 섬세한 연기와 신경질적인 날 선 이미지의 모습으로 기존의 그의 매력에 덧붙여 관객이 처음 접하는 다른 모습, 다른 인물을 만나는 조진웅표 연기의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재미를 약속한다.
심리스릴러의 서스펜스와 미스터리의 비밀을 완성하는 연기파 앙상블 <해빙>
살인 고백을 하는 신구, 지나치게 친절한 집주인 김대명
수상쩍은 행동의 간호조무사 이청아, 전직형사 송영창
<해빙>의 서스펜스와 공포는 제각각 감춰야 할 비밀이 있는 듯한 캐릭터들의 배치로 인해 치밀하게 완성된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다. 승훈의 눈에는 모두가 의심스럽다. 그리고 그 비밀과 의심의 진원지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연기력은 물론, 캐릭터에 뚜렷한 색깔을 덧입히는 개성을 가진 신구와 김대명. 그리고 이청아와 송영창이다. 인자하고 지혜로운 어른의 이미지가 강한 신구는 치매노인의 천진함과 살인 고백을 툭 내뱉는 극단적인 두 얼굴을 가진 정노인으로 <해빙>의 이야기가 점화되는 순간을 책임지고, 집주인이어서 그렇다고 하기엔 도가 넘는 친절을 베풀며 승훈에게 다가오는 정육점 사장 성근은, 심상찮은 목소리로 등장부터 기이한 기운을 불어넣는 김대명이 연기해 불안과 의심의 그림자를 극 전체에 드리운다. 그리고 승훈의 주변을 늘 맴돌며 눈웃음을 날리고, 명품백을 수시로 바꿔 드는 토박이 간호조무사 미연 역에는 발랄하고 고운 이미지의 이청아가 출연해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을 것 같은 이면을 궁금하게 만든다. 한편, 불쑥불쑥 시도 때도 없이 승훈 앞에 나타나는 전직형사 조경환 역의 송영창은 그가 전하는 신뢰감의 뒤편으로, 승훈 편인가 하는 안도감과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신구, 김대명, 이청아, 송영창. 고정관념처럼 그들에게 덧씌워져 있었던 이미지를 뒤집고 역으로 활용하는 이들의 연기는,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고, 이들이 가진 비밀이 도대체 무엇일지 실체를 궁금하게 하면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고 <해빙>의 재미를 완성한다.